우리, 오늘만이라도 부르짖어 기도하자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최근 강 대 강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은 마치 폭주 기관차가 같은 레일 위에서 서로 마주 보고 달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3년 전 촉발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여전한 가운데 다시 중동지역까지, 그야말로 지구촌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들의 그릇된 결정이 자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와 상처를 입히는지 우리는 두 전쟁을 통해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그들에게 애매하게 죽어 나가는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어 보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2차 대전 이후 자리 잡은 국제질서나 국제 규약, 규범 등이 이제는 그 효력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전후 국제질서의 버팀목이 되어왔던 미국 주도의 유엔과 나토체제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하고, 우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핵 도발의 위험성을 늘 안고 살아가는 우리나라에는 더욱 엄혹한 시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세기 초 급변하는 국제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반세기를 고통과 참화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계는 급변 정도가 아니라 지각변동 차원의 대변혁을 맞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가장 커다란 변혁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고, 파괴 수준의 국제질서는 새로운 질서의 재편을 위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비록 지난 세기 초에는 우리가 힘이 없어 제국주의 세력에 휘둘리며 비극의 역사를 살아야 했지만, 이제 오늘의 대한민국은 능동적으로 세계 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고,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숱한 오욕의 역사를 지나면서도 오늘의 자랑스러운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보호하신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여전히 극복해가야 할 난제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단이 지속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백성으로서 믿는 자들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요즘 유독 기도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난제들을 해결 받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에게 나와 부르짖어 기도해라. 그리하면 크고 놀라운 비밀의 길로 응답하리라(렘33:3)!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모세가 홍해 앞에서 부르짖어 기도했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넌 애를 가질 수 없어!’ 했던 한나가 부르짖어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유다 전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여 유다 전 민족을 구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죽을 준비나 하라는 하나님의 최후통첩을 받은 히스기야는 즉시로 면벽하고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하더니 생명이 15년이나 연장되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날마다 재판관을 찾아갔던 과부나 보리떡을 강청했던 자, 감옥에 갇힌 베드로 사도의 구명을 위해 부르짖어 합심기도했던 성도들, 모두가 크고 놀라운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어디 성경이 기록된 인물들 뿐이겠습니까? 내 목회 41년에 수많은 기사와 표적들, 심지어 간이 90%가 굳었다는 판정을 받았던 내가 오늘날 건강한 40대의 기력으로 뛰고 있는 것 역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하지 못하는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모릅니다.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요,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고, 가장 위대한 사람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이것만은 내가 목숨 걸고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습관 따라 기도하셨습니다. 나 역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습관 따라 기도해봅시다. 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육체가 강건해집니다. 우리, 오늘만이라도 부르짖어 기도해봅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