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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3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시작했으면 끝을 봐라

1343호 · 2026-02-01
오늘의 메시지

시작했으면 끝을 봐라

필자가 91년 2기생으로 신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학생 수는 수백에 달했다. 그들 모두가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 들고 불 속에라도 가겠다고 결심하고 자원하여 모인 자들이었다. 그러나 4년의 학업 끝에 사각모를 쓴 졸업자는 47명에 불과했다. 70~80%의 생도들이 낙엽 떨어지듯 모두 떨어져 나간 것이다.

새해가 되면 모두가 나름의 계획과 결심들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오와 결단들은 온데간데없이 작년과 똑같은 발전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보게 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시작은 거창하게 했으나 끝을 맺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니 맨날 반 토막 인생이다. 목사님은 교훈하신다. “바보들은 결단만 한다.” 이제 결단했으면 행동하는 천재들이 되어 성취함을 이루자. 성경은 증거한다.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4). 또한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권면한다(롬8:18).

욥은 극한 환난의 상황에서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했더니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한다.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고 당당히 증거한다(딤후4:7~8).

우리 이제 새로운 한 해를 허락받았으니 무엇을 작정하고 계획했을지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고 노력함으로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이 도우셔서 아름다운 결과를 이루게 하실 것이다.

김상욱 목사

동행하는 삶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얼마 전 둘째 아이가 독감으로 고열이 나고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왔다. 전염성이 강하다고 하여 조심했지만, 다음날 첫째 아이도 고열이 나타나 결국 독감 확진을 받고 수액을 맞았다. 혹시나 서로 전염될까 봐 마음 졸이며, 마스크를 쓰고 소독제를 뿌리며 계속 기도하며 지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삶은 원래 힘든 것이 기본값’이라는 이시대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위로를 받으며 버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도 하나님께서 치료하실 자녀라는 믿음이 있었다. 두 아이의 열이 잡히고 ‘이제 회복만 남았구나’ 생각했을 때, 갑자기 둘째 아이가 심하게 구토를 하여 입원까지 하게 되었고, 병원에서는 노로바이러스가 의심된다고 했다.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하루 만에 아이는 퇴원할 수 있었고,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과 통화하며 “3연타로 힘들었다.”고 안도하며 이야기했던 바로 그날 밤, 남편과 나는 동시에 시작된 구토와 설사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겪었다. 결국 새벽에 둘이서 급히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수액을 맞았다.

아이들이 입원한 적도 없었고, 부부가 동시에 아파본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연달아 모든 일이 몰아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픈 배를 붙잡고 “하나님, 제가 혹시 잘못한 게 있다면 용서해 주세요. 회개합니다.”라고 기도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도 “부부는 닮는다더니 나도 똑같이 회개했어.”라며 웃었다.

그리고 남편은 이렇게 덧붙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아프기를 원하시지 않아. 그러나 우리가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혼내서 깨닫게 하실 수는 있지. 마찬가지로 부모인 우리도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해서 아이들이 병드는 걸 바라진 않잖아. 그런데 악한 것들은 우리 죄로 인해 생긴 틈을 타서 공격할 수 있어. 그러니 회개로 그 가지를 잘라내고, 성령충만으로 다시 무장하자.”

남편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정리되었고, 오히려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야겠다는 결단을 주신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일상에 대한 감사였다. 매일 반복되는 상황, 내 마음 같지 않은 가족들, 때로는 지루하고 밋밋하다고 느껴졌던 하루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귀한지, 그 평범함이 얼마나 그리운지 아픈 시간을 지나며 분명히 알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 깨끗하게 씻고 편안한 침대에서 잘 수 있음에 감사, 그리고 무엇보다 피할 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문득 ‘도대체 어디서 전염됐을까?’ 생각하다가, 만약 우리 가족 넷이 동시에 토하고 설사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싶었다. 아픈 일이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발견했고, 회개의 기회를 얻었으며, 일상의 감사가 더 깊어졌다. 이번 일을 지나며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의 모든 순간을 지키고 계셨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아픔이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도, 무너질 것 같은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힘을 주셨고, 일상의 귀함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셨다.

그리고 되돌아보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이에도 하나님은 하나하나 보호의 손길을 놓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느껴졌다. 아이가 먼저 아프고, 우리가 그다음에 아프고, 다시 다른 아이가 아픈 그 순서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피할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은혜를 묵상하다가 문득 이 말씀이 떠올랐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121:7~8).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가정의 ‘출입을 지키시는 분’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아픔 속에서도 보호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이 주신 일상의 은혜를 더욱 소중히 붙들게 되었다.

“모든 것이 은혜!”

정효경 집사

치우치지 않는 저울

오래 참음

우리는 ‘축복의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다가 늘 잔잔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거친 풍랑을 만나고, 때로는 짙은 안개 속에서 멈춰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영적 자산은 바로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인 ‘오래 참음’입니다.

왜 항해에는 오래 참음이 필요할까요?

항해사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풍랑보다도 ‘기다림’이라고 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배가 나아가지 못할 때, 혹은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지날 때 조급함은 가장 큰 적이 됩니다.

‘오래 참음’은 단순히 억지로 견디는 고통이 아닙니다. ‘오래 참음’을 뜻하는 헬라어 ‘마크로디미아(Makrothumia, μακροθυμία)’는 ‘마음이 넓다’, ‘분노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도 오래 참음의 결핍 때문입니다. 축복은 순간의 선택으로 시작되지만, 완성은 인내의 시간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항해 중에 크게 세 가지 대상에 대해 오래 참아야 합니다.

첫째, 환경과 상황에 대해 참아야 합니다.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경제적 상황, 건강의 문제, 막막한 앞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때 조급하게 키를 돌리면 배는 암초에 부딪힙니다. 하나님의 때(Kairos)를 기다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둘째, 타인에 대해 참아야 합니다. 배 안에는 나 혼자 타지 않았습니다. 가족, 동료, 성도들이 함께 있습니다. 서로의 단점이 보이고 상처를 줄 때, 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첫 구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나 자신에 대해 참아야 합니다. 자꾸만 넘어지는 내 모습에 실망하여 항해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도 우리를 오래 참고 기다려주십니다. 우리 역시 성화의 과정을 걷는 자신을 인내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래 참을 수 있는가요? 내 의지만으로는 결코 오래 참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먼저 소망의 닻을 내리십시오. 히브리서 6장 19절은 소망이 ‘영혼의 닻’ 같다고 말합니다. 흔들리는 풍랑 속에서도 소망의 닻이 하나님께 내려져 있다면 배는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을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다려주신 그분의 인내를 묵상할 때, 비로소 우리도 참을 힘을 얻습니다.

그다음에 이미 주신 축복을 세어 보십시오. 항해 일지를 쓰듯, 일기를 쓰는 겁니다. 지난 시간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미래에도 함께하실 것을 믿는다면 오늘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인내 끝에는 예비된 항구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은 농부의 인내를 말합니다.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우리 삶의 항해도 결국 ‘완성된 축복’이라는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이번 2026년 항해 중에 안개가 자욱합니까? 배가 멈춘 것 같아 답답하십니까? 지금은 ‘오래 참음’이라는 엔진을 점검할 때입니다. 인내는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만듭니다(약1:4). 그리고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면류관이 여러분의 항해 끝에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최연식 목사

참된 깨달음

대표 상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4대 대기업은 각각의 대표 상품이 있기에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습니다. 삼성은 휴대폰, SK는 반도체, LG는 가전제품, 현대는 자동차가 주력 상품입니다. 한때 LG도 휴대폰을 생산했으나 경쟁에서 밀려 사업을 철수했습니다. 이처럼 대표 상품의 성공 여부에 따라 기업의 승패가 좌우됩니다. 기업은 가용한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반복 숙달하여, 불량 없는 세계 최고의 상품을 목표로 질주합니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경쟁에서 뒤처져 도태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에 따른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대표 상품은 무엇일까요?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일찍이 영적 존재에 대해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 천사, 사람이라는 세 영적 존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음부에 가두셨는데, 그 정체가 바로 마귀입니다. 그렇다면 귀신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의 영혼입니다. 귀신은 음부를 거쳐 지옥으로 갑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갇혀 있는 음부이자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 곳이며, 귀신이 사람의 몸에 들어가 각종 질병과 악한 행실을 유발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으셨듯, 우리도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면 그들은 나갈 수밖에 없고, 우리는 각색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영적 존재의 실체를 확실하게 선포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대표 상품이며, 목사님께서 41년 목회에 한결같이 전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자 세계 각국에서 목사님을 초청하고 있으며, 이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소금이 짠맛을 내야 가치가 있듯, 우리 교회도 ‘예수 이름으로 귀신 쫓는 교회’라는 정체성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가 서 있는 땅이 기름지게 되고, 새 성전에서 부흥의 불길이 더욱 뜨겁게 타오를 것이라 확신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송명국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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