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대지 말고 부지런히 준비하라(잠22:13)
“부지런히 찾고, 부지런히 연구하고, 부지런히 모으고, 부지런히 운동하고, 부지런히 배우고, 부지런히 연습하고, 부지런히 기도하라.”
제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늘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부지런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들을 한마디로 줄이면 ‘부지런히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기대할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 오늘의 준비가 내일의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찾아야 내일 길이 보이고, 오늘 연구해야 내일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오늘 모아야 내일이 풍요롭고, 오늘 운동해야 내일이 건강하고, 오늘 배워야 내일이 있고, 오늘 연습해야 내일은 능숙하게 되고, 오늘 기도해야 내일의 영혼이 튼튼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이 이 모양 이 꼴인 겁니다. 어제 운동하지 않아서 오늘 비실거리는 것이고, 어제 공부를 안 해서 오늘 아는 게 없으니 할 일이 없어 무직인 겁니다. 어제 기도하지 않아서 오늘 내 영·혼·육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고, 어제 모으지 않아서 오늘이 빈곤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이것만 깨닫는다면 인생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은 특별한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개미가 어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먹을 것을 저장했기에 오늘 음악 들으면서 편안하게 겨울을 나는 겁니다. 그러나 베짱이는 어제 기타 치며 노래나 부르면서 준비하지 않았기에 오늘 거지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래도 못 깨닫습니까? 화려하고, 멋지고, 풍부하고, 아름다운 미래는 절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준비 여하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도 시작을 준비로 하셨고, 준비로 마치십니다. 우리를 위해 우주 삼라만상을 준비하셨고, 마지막 세상을 위해 예수님이 처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물며 인생이겠습니까? 인생은 ‘준비’입니다.
그래도 준비하지 않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는 게으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핑계와 변명을 달고 산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돈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25:16)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마25:17)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둘 다 즉시 부지런히 장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것을 묻어뒀습니다. 안 움직인 겁니다. 게으름 피운 거지요. 그리고는 주인이 와서 회계하자 주절주절 핑계를 댑니다. 그런 그에게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을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으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게으른 자들은 핑계를 참 잘 댑니다. 오죽하면 잠언 22장 13절에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누가복음 19장에도 므나로 비유해서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게을러서 이익을 남기지 못한 자를,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19:27) 했습니다. 심각한 것 아닙니까?
게으름을 그저 좀 느린 성격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게으름은 악입니다. 내 현세의 인생을 망칠 뿐 아니라 내 영생까지도 망치게 하는 악한 놈입니다. 그놈이 즐겨하는 말이 ‘내일하지.’입니다. “내일 기도하지”,
“내일 공부하지.”, “내일부터 운동하지.”, “내일 연습하지.”
그러나 내일은 영원히 내일입니다. 오늘,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만이 우리가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오늘이 내일을 만들지, 내일은 기한 없는 목표일 뿐입니다. 과녁 없이 쏘는 화살과 같습니다. 노후요? 젊은 오늘 준비해야 합니다. 사후요? 살아있는 오늘 준비해야 합니다.
또 게으른 자들이 즐기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No. 그건 하나님을 잘못 안 겁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이 말씀은, 준비는 우리 몫이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은 더불어 말씀하십니다. “부지런히 구하고”(욥8:5),
“부지런히 살피며”
(잠27:23), “부지런히 찾고”(잠1:28),
“부지런히 가르치며”
(신6:7), “부지런히 배우고”(딤후3:14), “부지런히 기도하고”(엡6:18)….
여러분, 대나무 씨를 뿌린다고 대나무가 바로 나지는 않습니다. 1년을 기다려도, 3년을 기다려도 아무런 징조가 안 나타납니다. 그러나 5년이 되면 죽순이 올라오고 2달이면 30m가 넘게 자랍니다. 준비가 이와 같습니다. 오늘 만 원 저축하는 것이, 오늘 한 시간 운동하는 것이, 오늘 두 시간 기도하는 것이, 오늘 몇 시간 연습한 것이 바로 큰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적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목돈이 되어 노후를 대비할 정도가 되고, 어느 순간 마라톤 풀코스를 뛸 정도의 체력이 되고, 어느 순간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고, 어느 순간 귀신이 감히 얼씬거리지 못하는 권세와 능력을 가진 자가 됩니다. 이것이 늘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준비는 아주 철처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의 사태까지 감안해서 준비하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25장에 기름을 철저하게 준비한 다섯 처녀와 그렇지 않은 다섯 처녀가 나옵니다. 기름을 철저하게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늦게 오는 불상사가 있었음에도 혼인잔치에 들어갔지만,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못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제대로 준비했는데, 신랑이 늦게 와서 이렇게 됐어.”라고 핑계를 대겠지만, 그렇다고 “그랬니? 신랑이 잘못했네. 어서 들어와라.” 하고 혼인잔치의 문이 열릴 일은 없습니다. 그건 누구 때문도, 무슨 일 때문도 아니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기회는 철저히 준비한 자의 몫이거든요.
제게는 기도와 노력이라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목사가 된 후로 저는 정말 부지런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오늘날 세계를 교구화 했고, 큰 파도에도 꿈쩍하지 않는 예수중심교단이라는 항공모함을 띄울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부지런히 건강도 챙기고 있습니다. 건강이 없으면 그것은 발사대 없는 미사일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서울교회 성전 건축을 앞두고 철저히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저도 준비합니다. 저는 요즘 이 말씀을 자주 되뇝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눅14:28~30).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았다가는 하나님 망신, 내 망신, 공동 망신이 되겠구나.’ 늘 생각하고, 자금은 물론이요, 건축자재까지 열심히 준비하고,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거뜬하게 건축할 수 있었던 것은 어제 다윗이 철저하게 준비해놨기 때문이 아닙니까? 자잘한 것까지 철저하게 준비해놓았으니 완공이 쉬웠던 것입니다.
여러분, 미래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현재의 준비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사 철저하게 준비합시다. 내일 말고 오늘 준비합시다. 그것이 평안한 노후를 만들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이 준비한 처소에 안전하게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준비한 만큼 미래가 설계됩니다. 할렐루야!
게으름은 악이요
인생을 부식시킨다
준비하지 않는 자에겐
기회가 와도 그림의 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