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회 철학,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눅16:10)
“네가 예순가 야순가에 미쳤구나.”
지금도 그 음성이 귓가에 쟁쟁합니다. 재산을 무 자르듯 잘라가며 밤낮으로 주의 일만 하느라 세상일을 폐하고, 장손으로서 마땅한 의무였던 제사까지도 거부하는 아들이 너무 못마땅하셔서 우리 어머니가 펑펑 우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맞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고후5:13)라고 했는데, 저도 예수로 온전히 미쳤습니다. 예수 외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미쳤다는 말이 싫지 않습니다. 미쳤기에(狂) 미칠 수(及)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 역사의 획을 그은 사람들은 그 분야에 미쳤기에 위대한 과업을 이룬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 중 하나라고 자부합니다. 광명시 철산리에서 한 명의 성도로 시작하여 오늘날 예수중심교단과 땅끝예수전도단, 그리고 예수중심하나되기운동을 통해 세계 70여 개국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교회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미쳤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게는 지금까지 변치 않는 목회 철학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16:10),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충성의 다른 이름이 ‘최선’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최선을 다했는가’가 충성의 기준입니다. 성경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2:10)고 했지요? 이는 ‘최선을 다하라’, ‘사력을 다하라’, ‘그것에 미쳐라’라는 말씀입니다.
41년 세월을 돌아보니 정말 사력을 다해 달려온 것 같습니다. 눈 덮인 산야, 물 없는 사막을 건너는데 대충대충, 건성으로 걸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저는 정말 매사에 죽기 살기로 달렸습니다. 그래서 부모, 형제, 처자는 물론이고 친구들조차 외면하며 외롭던 시절을 이겨냈고, 교계로부터 제명되는 고통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물 설고 말도 선 외국 선교는 맨 땅에 헤딩하는 것 같이 힘들었지만 이제 복음의 활로가 넓어졌고, 서울성전 없이 달려온 세월도 이제 마침표를 찍을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선교하고, 최선을 다해 나누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대충은 인생의 암입니다. 대충은 순 우리말이지만, 저는 대충을 대신할 대(代), 벌레 충(蟲)으로 풀어 ‘벌레가 인생을 다 먹어치운다’라고 해석합니다. 배에 회충이 많으면 영양을 다 회충이 먹어버려 몸이 축나는 것처럼, 대충이란 균을 잡지 않으면 그것이 인생을 망하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고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이 말인즉 ‘이왕 달리기를 하면 으뜸이 되어 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려면 대충대충, 설렁설렁 달리지 말고 사력을 다해 뛰라’는 것입니다.
형 에서의 장자권을 탈취한 야곱이 삼촌 라반의 고향인 하란으로 도망갑니다. 그가 삼촌 집 가까이에 도달했을 때, 들판에서 삼촌 라반의 양치기들을 만나게 되는데, 야곱이 보니까 아직 해가 쨍쨍하여 짐승들이 더 풀을 뜯을 수 있는데도 목동들은 양을 모아놓고 노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야곱은 그들에게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창29:7)고 말합니다. ‘왜 일을 대충하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야곱의 말에 꼼짝도 안합니다. 이런 직원이 있으면 그 회사 망합니다. 이런 며느리나 사위가 집안에 들어오면 그 집안 장래는 없습니다.
야곱은 매사 최선을 다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그랬기에 삼촌 집안을 일으켰고, 자신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개 큰일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작은 일은 우습게 여겨 대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큰 코 다치지요. 자고로 큰 바위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경도 안 쓰는 작은 돌맹이에 걸려 넘어지지요. 여호수아가 아이성 전투에 패배한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여호수아가 큰 성인 여리고성을 함락하고는 작은 아이성을 공격했는데 그만 참패를 당했습니다. 왜? 아이성이 작은 성이라고 우습게 여기고 대충 준비하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대강했는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수7:3). 그러다 크게 참패를 한 겁니다. 그래서 두 번째 공격에는 여호수아가 최선을 다하기로 작정을 하고는 군사 3만 명을 뽑아 아이성 뒤쪽에 매복케 하고, 여호수아가 직접 다른 군사를 데리고 직접 아이성에 들어가 대승하게 됩니다(수8).
1원을 우습게 알면 1원 때문에 우는 날이 옵니다. ‘그까짓 거’ 하다가 그것 때문에 망신당하는 날이 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명 앞에서든 십만 명 앞에서든 똑같이 설교합니다. 사자가 토끼를 우습게 알고 대강대강 달리면 그날 굶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는 너무 잘 알거든요.
그러나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는 큰일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종의 신분으로 보디발의 집 살림을 맡아 할 때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모든 소유를 그의 손에 넘겼습니다
(창39). 그는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했기에 전옥의 신뢰를 받아 제반 사무를 다 처리했습니다. 그런 그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어땠습니까?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일해서 애굽을 부국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다윗도 볼까요? 다윗은 양 떼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양을 지키기 위해 물매를 던졌고, 사자와 곰이 와서 양의 새끼를 훔쳐 가면 쫓아가서 그 입을 찢어 새끼를 찾아올 만큼 사력을 다해 양 떼를 보호했습니다. 그 성실함으로 쌓은 실력으로 골리앗을 무찔렀고, 사울에 이어 왕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은 매사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엄청난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큰일도 맡기십니다(마25:21).
누가복음 16장 10절 말씀은 제 목회 철학인 동시에 인생철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 호텔을 이용할 때도 전기, 수도 및 자잘한 용품까지 아껴 쓰고, 방을 나올 때면 불을 끄고 침대도 정리하고 나오고, 일행들에게도 그리하라고 말합니다. 또 우리 직원들에게는 꼭 이면지를 쓰라고 당부합니다. 작은 것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 것도 맡기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일’에 ‘전심전력’에 하는 것이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보가 따르고, 그래야 성공하고, 그래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습니다.
우리 영·혼·육의 진보를 위해 매사 최선을 다합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12:30) 하셨으니,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합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전도에 최선을 다합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는 말씀대로 기도에 사력을 다합시다. 또한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6:7) 하셨으니 세상일에도 최선을 다합시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최선을 다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사력을 다해)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할렐루야!
대충은 인생의 암이요
내 인생의 암적인 존재다
차선은 없다
오직 최선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