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행복을 좀먹는 암적 존재다(막16:17~20)
2025년, 우리는 전대미문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바라던 서울성전 부지를 허락하셨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흥분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기도하고, 더욱 언행에 조심해야 합니다. 악한 마귀가 틈탈 수 있거든요.
마귀란 놈은 머리가 아주 뛰어난 놈인지라(겔28:12~15), 그놈의 전략은 아주 치밀하고 교묘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어라.”라고 강압적으로 명령했습니까? 아니요,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느냐?”라고 교묘하게 질문했을 뿐입니다. 마귀는 절대 직접 죄를 짓게 하지 않습니다. 의심을 심고, 욕망을 자극하고, 판단을 흐리게 해서 사람이 자기 손으로 열매를 따게 합니다.
이 방식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방법의 하나가 순간 분노하게 해서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게 하는 겁니다. 마귀가 다 된 밥을, 다 된 일을 엎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엎도록 유도합니다. 기도로 받아놓은 응답, 쌓아온 신뢰, 오랜 시간 준비한 사업과 과업을 단 한 번의 혈기로 무너뜨리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4:26~27).
여러분, 분을 내는 것은 추수를 앞두고 있는데 갑자기 강력한 태풍이 닥친 것과 같습니다. 1년 동안 수고해서 과일과 곡식이 잘 되고 이제 거두기만 하면 되는데, 강력한 태풍이 몰아친다면 그간의 수고와 꿈이 다 허사가 되는 것 아닙니까? 혈기는 바로 행복과 기쁨을 앗아가는 주범입니다. 모세를 보세요. 민수기 20장에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불평하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손에 쥔 모세는 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하여 그만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그 결과로 모세는 그렇게도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민20:24). 40년을 공들였는데, 40년을 고생고생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왔는데 한 번의 혈기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기가 막힌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16:32)라고 하신 것입니다.
화내는 것, 분노하는 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분노는 잔인해서 꼭 죄를 짓게 합니다(잠27:4). 가인이 왜 동생을 죽였습니까? 화를 못 이겨서 죽인 겁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어 땅의 저주를 받고, 떠도는 유랑자가 되었습니다(창4:4~8). 이처럼 분노는 행복과 평화를 빼앗고, 파멸을 몰고 옵니다.
요즘 가인 같은 자가 너무 많습니다. 홧김에 뭐 한다고, 애인이 헤어지자고 하니 화가 나서 죽이고, 위층에서 소음이 많이 난다고 화가 나 죽이고, 외벽 유리창을 닦는 사람이 노래 틀어서 시끄럽다고 생명줄을 잘라버려 죽이고, 내 주차 공간에 다른 사람이 차를 댔다고 죽이고….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 강력히 경고합니다.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34:15),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겔21:4~5)
콜라 같은 성격입니까? 조금만 흔들리면 바로 거품이 생겨 확 쏟아버리는 그런 성격입니까? 화가 나거든 잠시 그 상황을 벗어났다가 돌아오세요. 거품이 가라앉을 시간을 주세요. 거품이 잔뜩 찬 콜라병을 바로 따면 옷도 버리고, 주변도 더럽히고, 콜라도 다 쏟아져 먹을 게 없습니다. 살다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지요. 그럴 때 길게 숨을 쉬세요. 절대 홧김에 일을 벌이지는 마세요. 악한 것들이 “나가 싸워.”, “사표 던져.”, “이혼해버려.” 하며 부추길 것입니다. 이럴 때 콜라를 따면 큰일 납니다. 거품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금만 참으세요. 화가 가라앉은 다음에 다시 생각하면 좀 전의 일이 별것 아닌 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분노를 제어하는 최상의 방법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콜라를 비워내고 생수를 담는 것입니다. 생수는 흔들어도 거품이 생기지 않습니다. 생수는 누구나 좋아합니다. 사람만 좋아하나요? 식물도 좋아합니다.
생수로 거듭나는 방법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콜라를 다 버리고 생수를 담으면 콜라병도 생수병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혈기가 왕성했던 사도 바울은(행9:1) 성령의 능력으로 옛사람이 벗어지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매한 핍박과 환난과 모함을 참고 이겨냈고,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고,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참는 것도 사랑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칼 나간다 총 나간다’ 할 정도로 혈기가 많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니 혈기가 사라지고 온유한 자가 됩디다. 제 얼굴에서 사나움이 없어지고, 제 마음에 노가 사라집디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예수님의 본성은 ‘온유함’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가 열리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온유’요, ‘오래 참음’이기에 예수님 같은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갈5:22~23).
예수님을 잡으려고 유다가 대제사장을 비롯한 무리와 함께 다가와 입을 맞추자 베드로가 칼을 뽑아 들어 ‘말고’라 하는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잘라 떨어뜨리자 예수님이 그의 귀를 다시 만져 낫게 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눅22:51).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계셨고,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조차 맞받아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셨습니다(히12:2). 그래서 결국 승리하셨고,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욱해서 열두 영의 천사를 불러(마26:53) 그들을 처단하고 십자가에서 보란 듯이 내려오셨더라면 우리의 구원은 무산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목회 초기,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 마음도 식힐 겸 혼자 제주도에 갔습니다. 제주 바닷가에서 상념에 잠겨있는데, 거센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위에 부딪히니 파도가 자지러지게 소리를 내고 아파하며 물러가고, 받아친 바위도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반면에 눈을 돌려 넓은 모래사장을 보니 같은 세찬 파도가 몰려와도 모래는 그것을 다 안아 잠재우고 물방울을 만들며 방글방글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세상에 모래 같은 사람이 있을까? 예수님 외에 누가 모래 같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저는 ‘모래와 파도’를 ‘오 예수여’로 개사해서 찬양했습니다.
예수님께 배웁시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집시다. 온유한 자가 됩시다. 그것은 오직 성령충만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고(마5:5), 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온유한 자가 되어 축복의 주인공이 됩시다.
자갈밭은 잡초도 싫어합니다. 버럭버럭 화내는 자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분을 내면 친구도, 가족도 다 떠나갑니다. 우리, 온유한 자가 됩시다. 혈기를 내어 받아놓은 복을 발로 차버리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0~21). 할렐루야!
자갈밭 좋아하는 나무 없고
분내는 사람 좋아할 자도 없다
분노는 내 복을 앗아가는
귀신의 작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