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기도
눈물의 기도
성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 철학과 쾌락을 탐닉하고, 마니교에 빠지는 등 타락한 생활을 했다. 그때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날마다 성전에서 울며 기도하자 밀라노의 암브로스 주교는 ‘눈물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며 위로했다. 그 눈물의 기도가 탕자를 성자로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울면서 기도하던 한나는 사무엘을 낳아 위대한 선지자가 되게 하였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사38:1)는 말을 듣고 즉시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더니,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았다(사38:1~6). 베드로는 법정에 서신 예수를 세 번 부인했을 때 닭 울음소리가 나자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26:33~34)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며 회개했더니 능력의 사도로 쓰임 받게 되었다(마26:75).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모으고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하였고, 또한 애통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써서 고린도 교인들을 권면했으며
(고후2:4), 로마 감옥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빌립보 교인들을 권면하였다(빌3:18). 이런 바울의 겸손과 눈물이 신약 성경의 절반을 쓰게 하였고, 아시아와 유럽에 교회를 세우고,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예수님 역시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올려 구원 사역을 이루셨다고 증거하신다(히5:7).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앞당기는 길이다.
김상욱 목사
하나님의 관심을 끌어보자!
작년 목회자 세미나의 첫 시간은 뜨거운 통성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부터 단에서 눈물로 기도하시고, 모든 주의 종들이 다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제 앞에 앉은 한 전도사님은 두 손을 들고 발까지 구르면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문득 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여기에 수백 명의 주의 종들이 다 기도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셔야 한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제 기도를 들으셔야 합니다. 제 기도에 응답해주세요.’
총회장 목사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내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건강하고, 내가 풍족하고, 내가 실력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도 내 삶에 일어나야 합니다. 늘 남의 간증만 듣고 은혜만 받을 것이 아니라 내가 간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자신의 능력을 베푸실 자를 찾고 계시지만(대하16:9), 엘리야 시대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하나님의 역사를 맛본 자는 사렙다의 한 과부뿐이었고,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문둥이가 많았지만 깨끗함을 얻은 사람은 나아만 뿐이었습니다(눅4:25~27).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모든 이에게 허락되었지만, 그 은혜를 실제로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요? 늘 그렇듯 해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간절히 하나님을 찾은 자들이 하나님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소리친 끝에 예수님의 관심 끌기에 성공합니다. 중풍병자와 네 친구는 아예 지붕을 뚫고 내려가 예수님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한나는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는 나지 않을 정도로 통곡하는 기도로, 히스기야는 제비같이, 학같이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의 관심을 끌었고,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관심과 응답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관심을 끌었던 자들은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가지고 담대히 나간 자들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예를 지켰습니다. 다윗도 골리앗과 싸울 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명예를 의지하고 고백하여 제단에 불을 내리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총회장 목사님도 집회 때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다’라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명예를 앞세우고 당당히 승리하고 돌아오십니다.
우리도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어딜 가든지 하나님을 시인하여서 하나님의 관심을 끌어봅시다. 그리하여 내 삶부터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가득 넘치고, 남에게도 그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호민 전도사
인생을 다시 산다면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지나가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참 좋을 때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들을 보면 청춘의 꽃이 피어나는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내 부모님 세대의 분들이 나를 보면 또 다른 느낌이겠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으로, 마음에 사무치는 장면으로 다가오는지.
88체육관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성도님들 모두 목사님을 따라 뛰며 박수를 치고, 두 손을 흔들며 찬양하던 장면, 가족들과 집 근처에서 외식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서로 웃던 장면, 퇴근길 집에 가까워질 때 하늘에 붉은 노을이 펼쳐지던 장면, 문득문득 내 두 눈에 담아지는 평범한 일상이 감격적으로 다가온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아이일 때는 엄마와 아빠를 더 많이 꼭 안아드리리라. 사춘기를 지날 때는 애써 말을 예쁘게 해보리라. 학생 때는 지식에 좀 더 호기심을 갖고, 행동에 좀 더 용기를 가지지라. 청년 때엔 놀 생각보다 자산 형성과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리라. 일찍부터 운동을 하여 체력을 기르리라. 신혼 때로 돌아가면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 아이들 앞에서 아내와 다투지 않으리라. 시간을 돌려도 부모님께 더 나은 아들이 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부모님과 함께 산책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리라. 말씀을 더 가까이하고, 기도의 습관을 갖고, 찬양을 더 부르고, 하나님의 전에 더 많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품에, 하나님의 환경에 푹 파묻히리라.
그러나 돌아갈 수 없기에, 이제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리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박찬영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