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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기회 있을 때 주의 일 하자(눅14:16~24)

1328호 · 2025-10-19

10월 3일, 모두가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고 들떠 미리 계획한 대로 여행을 떠나고 고향을 찾을 때, 그들과 달리 군산으로 몰려든 이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군산 월명체육관 집회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군산 집회가 군산교회만의 일이 아니라 이는 예수중심교단의 일이고, 하나님이 베푼 잔치라고 생각하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참석한 것입니다. 더욱이 빈손으로 가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을 전도하여 버스까지 대절했으니 군산 월명체육관이 차고 넘치는 역사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월명체육관이 가득 찬 것을 보니 저는 몹시 기뻤습니다. 여러분도 기쁘고 감사했지요? 그러니 하나님은 어떠셨겠습니까?

집안에 큰 잔치가 있다고 합시다. 그때 자식들이 잔치 비용에 보태라고 돈도 내놓고, 회사에 월차를 내고 미리 와서 이것저것을 챙기고 돕는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흡족하고 든든할까요? 그런데 돕는 것은 고사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님은 섭섭함을 넘어 ‘괘씸한 놈’, 그럴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는 많은 사람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청한 자들이

‘나는 밭을 샀으매’,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나는 장가 들었으니’라며 못 가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에 주인은 격노했지요. “그래? 안 온다고?” 하고는 주인은 하인에게 이르기를,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눅14:21)고 했습니다. 그래도 자리가 남으면 길과 산울가로 나가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잔칫집을 채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번 군산 집회에도 초청했으나 안 온 사람도 있을 겁니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나 몰라라 한 자도 있을 것이고, ‘명절 첫날이라 차가 억수로 막혀. 너도 가지 마.’하며 자신도 안 갈뿐더러 가려는 사람도 못 가게 한 자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군산 집회가 무산됐습니까? 군산 집회가 실패했습니까? 아닙니다. 청한 자들이 안 와도 잔치가 성대히 끝난 것처럼, 당신이 안 와도 군산 집회는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안 온 당신만 손해인 겁니다.

여러분, 당부하건대 주인이 잔치를 베풀거들랑, 더욱이 천국 잔치가 열리거들랑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달려가세요. 달려갈뿐더러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무엇을 할까?’ 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안 믿던 자들을 전도해서 가고, 그것도 부족하다 싶으면 일당으로 사서라도 가야 합니다. 그게 잘못되었다고요? 잘못된 게 아닙니다. ‘강권하다’는 말은 강제로 끌고 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으니 돈을 주고라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돈으로 영혼을 건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요? 잘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런데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그때 어린양 예수가 아닌 심판주 되신 예수님과 대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넌 뭐하다 왔느냐?” 물으실 것인데 뭐라고 하실 것입니까? “저기~~ 음~~” 이렇게 우물쭈물하실 겁니까? 그러면 주님이 ‘악하고 게을렀구나.’ 하실 것 아닙니까? 그 결과는요?

주님이 물으실 때, “주님, 군산 집회 때 5명 전도해서 같이 갔습니다.”, “주님, 제가 버스 한 대 채웠습니다.”, “주님, 저는 기도원 집회 때 돼지 한 마리 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주차를 담당했습니다.”, “주님, 저는 늙어 기력도 없어서 기도만 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천국 잔치가 배설되었을 때, 기회가 왔을 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열심히 충성되이 기쁨으로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손을 내미실 때 인색해서도, 난색을 표해서도 안 됩니다. 인색한 자식은 부모도 싫어한답디다. 하나님이 손을 내미실 때가 우리에게는 상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니 그때 적극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내 육체를, 내 시간을, 내 물질을, 내 지식을 기쁨으로, 아낌없이 얹어드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게 손을 내밀어주심에 무한 감사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예수께서 열매를 달라하실 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다가 뿌리까지 말라 죽었습니다. 그러나 건넛마을 어린 나귀는 아직 사람을 태워보지 않았으나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자신을 내어놓아 나귀가 사람이 벗어 놓은 옷가지 위를 걸었고, ‘호산나’ 찬미 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실 때 내어놓는 것이 이렇듯 복입니다.

이 꿈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꿈에 제가 피곤해서 좀 누워있었더니 주님이 ‘너 아니면 사람이 없냐?’ 하시고 나가버리셨다고요. 맞습니다. 이초석이 없으면 지구촌에 복음 전할 사람이 없을까요? 천천만만입니다. 모세가 끝내 못하겠다고 했더라면 하나님은 아론을 들어서라도 출애굽의 대역사는 이루셨을 것이고, 하나님은 사울 대신 다윗을 통해서 일을 이루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드개도 에스더에게 ‘네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경고했지 않습니까

(에4:14)?

주만 위해 살면, 주님 위주로, 주님을 우선으로 살면 나는 없고, 내 생활을 없을 것 같지요?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셨습니다. 열심히 주를 위해 살면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디 이 땅의 것만이겠습니까. 사도 바울 말대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8)는 말씀이 내세에 꼭 이뤄집니다. 제가 샘플 아닙니까.

성경에는 ‘행한 대로’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행한 대로’가 하나님의 심판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롬2:6). 우리의 앉고 일어서는 것까지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기억할 뿐 아니라 다 기록해 두십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그랬다가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 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하늘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 하지 마세요. 어린 나귀도 다 쓸모가 있었고, 과부 두렙돈이 비록 보잘것없는 것이었지만 주님은 이를 무엇보다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일랑 묶어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그 해답은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주의 것으로 사는 인생이 가장 성공한 인생이요, 제일 잘 산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7~8)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천국 잔치를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이때 괜히 이리저리 겉돌지 말고, 적극적으로 준비하세요. 사람이 보든 안 보든, 목사님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열과 성과 목숨을 다해 준비하세요. 그날 ‘행한 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넉넉히 보상해주실 것이고, 하나님도 우리 삶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일할 수 없는 날이 곧 옵니다. 일할 수 있는 지금, 기회가 주어진 지금 열심히, 최선을 다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일합시다. 할렐루야!

그날 상을 받을 것인가

벌을 받을 것인가

지금이 기회요

지금이 은혜받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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