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위력을 아십시오
기도의 위력을 아십시오
중고등부 수련회 마지막 날,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사모님, 저 ㅇㅇ이에요! 제 동생 좀 살려주세요!”
울음 섞인 목소리, 다급한 외침. 순간 제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이 엄마랑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눈 위가 찢어져 피가 멈추질 않아요. 그런데 병원 응급실에서 받아주질 않아요.”
자매의 동생은 지적장애 1급이었습니다. 동생이 119 이송을 거부하자 자매는 직접 차를 몰고 응급실을 돌았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상처 봉합은 움직임이 없어야 가능한데, 몸부림을 치면 의료사고 위험이 크다는 것. 결국 진정제나 전신마취가 필요하지만, 장애가 있는 환자에게 따르는 위험과 인력 부족 때문에 부담을 감당하려는 병원은 없었습니다.
자매는 제가 외과 의사 친척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는 급히 사촌 오빠에게 연락했지만, 병원 사정상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가 소개해준 다른 두 곳 역시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제 어떡하죠? 피가 너무 많이 흘러요.”
“마지막으로 경북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보세요. 여기서 함께 기도할게요!”
저는 스탭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통성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하나님, 제발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세요!’ 절박한 기도가 이어졌고, 시간이 흘러 자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모님, 방금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고 나왔어요! 처음에는 여기서도 어렵다고 했지만, 제가 상황을 설명하자 응급실 선생님이 외과 선생님을 불러주셨어요. 기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기도는 모든 문제를 푸는 ‘마스터키’입니다.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하신 것도, 베드로를 옥에서 자유케 하신 것도, 모두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꿉니다.
지금 가정에 어려움이 있나요? 사업이 막혀 답답하신가요? 관계의 갈등으로 지쳐 있나요? 걱정 대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여 기적의 문을 활짝 엽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김진실 사모
있는 자를 더 있게 하시는 하나님
올해도 어김 없이 중고등부와 청년대학부 수련회가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마친 이 수련회 뒤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한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신학생이면서 중고등부 교사인 저에게도 여러 가지 일들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본부 사무실 이전이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사용하던 사무실의 짐을 정리해서 차량에 싣고, 점심식사를 한 후에는 새 사무실로 짐을 옮겨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식사 후에 갑자기 몸 상태가 이상했습니다. 이전까지 겪어보지 못한 두통이 더해져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먼저 귀가하겠다고 말씀드릴까 하다가 그날 오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짐을 옮기다가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예수님이 지금 오시면 좋겠다. 이렇게 더운 날, 주를 위해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오늘 예수님이 오시면 좋겠다.’ 그 생각을 하니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몸을 가누며 마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는 가운데도 몇 가지 다른 일들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미 한 번 마음을 지키고 나니
‘하나님께서 있는 자를 더 있게 하신다고 했는데, 내가 정말 풍성히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마25:14~29). 일이 끝나고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 하니 그가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천국에 집이 참 크시겠어요. 놀러 갈게요.” 저는 ‘아멘’으로 크게 화답했습니다.
앞으로도 살아가며 ‘왜 나한테만?’이라는 생각보다는 ‘나니까 더욱!’이라고 생각하면 같은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넘치리라 생각합니다.
윤에녹 생도
진짜 복
조용하지만 거룩하고 기쁜 장례를 잘 마치고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해주셨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정말 잘하였다.”
그동안의 신앙 여정이 떠올라 감격스러웠고, 감사한 마음이 한 번에 밀려왔다. 소천하신 집사님은 연세가 많으셨고, 젊은 나이에 남편분과 사별하고 홀로 키운 외아들을 캐나다로 이민 보낸 뒤 파킨슨병을 앓으며 혼자 살고 계신 분이었다.
우리 교회 전도사님이 오랜 인연으로 전도하셨고, 의정부에서 안양으로 이사하신 후 코로나로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계실 때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거동이 불편하신 집사님을 위해 매주 안양으로 모시러 갔다. 예배를 드리고 다시 댁에 모셔다드리며 복음을 전하고 신앙 이야기도 나누며 맛있는 간식도 함께 먹곤 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차량 운행을 하며 주일성수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거주하시던 안양의 집이 임대 기간 만기가 되어 문산교회 바로 앞으로 이사하실 수 있도록 새로 집을 구해드리고 이사를 도와드렸다. 그러자 수요예배와 주일예배에 참석하시고, 거동도 불편하시고 연세도 많으신 분이 걸어서 작정기도회에도 나오셨다. 매일 기도 생활을 하니 몰라볼 정도로 밝아지셨고, 발걸음도 아주 가벼워지셨다. 총회장목사님의 기도원 집회에도 참석하셔서 큰 은혜를 받으셨다.
집사님은 문산교회 앞으로 이사 오셔서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셨고, 성도님들과도 기쁨으로 교제를 잘 나누시던 어느 날 갑자기 소소한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그길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가셨다. 집사님은 입원하여 소천하기 전까지 매일 기도하셨고 정말이지 단아하고 깨끗한 삶을 사셨다.
나는 깨어서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없다고 생각한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다(시84:10)는 말씀처럼, 교회 가까이에 살면서 매일 밤낮으로 기도하는 삶보다 귀하고 복된 삶이 있을까.
나에겐 꿈이 있다! ‘세계를 교구 삼고 말리라’는 꿈을 꾸신 총회장 목사님을 따라 항상 복음 전하는 일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 집사님을 전도하신 전도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삶에 전도 말고 다른 게 뭐가 있나요?”
장순천 목사
coollee0817@naver.com
더 늦기 전에
늘 나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을 용서하지 않은 채로 이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진심이라고 받아들이실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용서를 구하지 않더라도 먼저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용서했던 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크게 기뻤는데,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언제든 결단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도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는 기도의 대상이었기에 그와도 화해해야 했지만, 매우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직 용서를 구하지 못한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사촌 여동생이었습니다. 그는 아픈 가정사가 있어 오랜 시간 동안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그와 마주쳤는데, 다른 사촌 동생들과 함께 놀고 있으면 그가 장난감을 부수기도 하고, 간식을 먹고 있으면 그가 전부 움켜쥐고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무엇을 하든 방해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촌 동생들을 대하는 것과 다르게 그를 받아주지 않고 차갑게 대하며 차별했습니다. 그때는 그에게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저와 그는 철든 나이가 되었고, 어느 날 어머니께서 그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순간 지난날 그를 냉대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 일 때문에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을 그가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께 죄송하고, 그에게 더 미안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했지만, 그에게도 사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와 마주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그가 결혼한 후에는 더욱 기회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선물을 보내보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누군가 복음을 전했을 때, 예수님을 믿는 저와의 일을 떠올리면서 예수님을 오해하지 말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그와 화목하게 되길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초보 운전자인 그의 과실로 교통사고가 났는데, 그 사고로 형사재판 1심에서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고,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탄원서를 정성스럽게 써서 보냈습니다. 탄원서에는 불우했던 가정사로 힘겹게 자랐지만, 부모를 원망하거나 세상을 비관하지 않고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기까지 고단했던 그의 인생과 아픈 어머니까지 돌봐야 하는 안타까운 형편을 전하며,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재판장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빨리 회복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여 재판에서도 그가 선처되길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제가 기도한 대로 그가 원하는 재판 결과가 나왔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탄원서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가 탄원서를 읽고, 고단했던 인생을 살아온 쓸쓸한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 어떤 사과의 말보다 큰 감동과 위로를 받고 마음이 녹았던 모양입니다. 그 시절에는 헤아리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던 어린 아이의 마음을 이제라도 보듬어주고 싶었던 저의 진심이 그에게 닿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그와 화목하게 되었고, 이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축복하며 그가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오래도록 기억하지만, 남에게 준 상처에는 둔감하거나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은 없나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찾아가서 화해하시고
(마5:23~24), 잊었거나 내가 모르는 일은 없는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정명관
v-777@naver.com
그럴 법하게 보이지 않아도
얼마 전 ‘킹 오브 킹스’라는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다.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예수님이 나오시는 매 장면마다 어찌나 울컥하던지. 예수님이 처음 나오시는 장면은 마구간에서의 탄생이었다.
출산이 임박한 마리아와 함께 요셉은 호적을 위해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다. 도착 후 늦은 밤이 되었으나 여관마다 방은 없었고, 묵을 곳을 내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요셉이 하룻밤 묵을 방을 사정하나 매번 거절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천사를 통해 마리아와 요셉에게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고, 그 계시가 이루어지는 첫 시작이었지만, 정작 현실은 하룻밤 묵을 곳을 사정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요셉과 마리아의 심정은 어땠을까? 왕 중의 왕이 태어난다고 하는데, 많은 귀인들이 모여있고,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멋있고 웅장한 탄생의 모습을 조금은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현실은 허름한 마구간이었고, 그곳엔 두 부부와 아이를 뉠만한 가축 사료통, 곧 말구유만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꿈, 비전, 계시, 예언, 약속의 말씀은 눈에 그럴 듯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일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작고 초라한 시작일지라도 하나님은 천사들의 노래와 동방 박사들의 선물, 목자들의 증거를 보내셔서 위로와 힘과 확신을 주신다. 그렇기에 기대와 정반대인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지 말고, 마음과 생각을 지키며 계속 전진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렇게 탄생하셨다. 세상의 눈에 현실이 그럴 법하게 보이지 않았어도.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1:45).
박찬영 집사
cross3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