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받을 면류관을 바라보고 함께 뛰자
“가렵니다 벧세메스로/ 가렵니다 벧세메스로/ 어린 송아지 울어대도 가렵니다 벧세메스로”
제가 작시한 찬양입니다.
저는 이 심정으로 엘살바도르 집회를 위해 떠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입니다. 엘살바도르는 여행이 불가할 만큼 정국이 불안정한 위험지구인데다가 집회를 준비하는 자들이 서로 물고 뜯는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선교 일행은 우리가 기도한 것을 믿고 떠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고, 기도는 절대 부도난 적이 없음을 경험했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명(使命)이 무엇입니까?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켜야 할 주군의 명령입니다. 그 명령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모든 족속’이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행1:8)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무려 하루 이상 꼬박 비행기를 타야 하는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겁니다. 사명에는 책임이 따르는 지라 이를
부도내면 문책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면 제가 어디든 달려가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딤후4:7~8)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저도 그날의 받을 상과 면류관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바울에게만 준 것이 아닙니다. 8절에 보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상과 특권이 놓여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면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2~5), 전도하면 면류관을 씌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일이 ‘전도’라는 것을요. 누가복음 15장에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애쓰는 주인의 모습이 주님의 모습이거든요. 그 한 마리를 찾았을 때 너무 기뻐서 이웃과 친구를 불러 함께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
그러니 전도하는 자에게 주는 상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전도로 맺은 영혼의 열매는 영원한 하늘의 면류관이 되니 전도에 더욱 매진해야겠지요.
저는 더 나아가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열두 지파를 심판하고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는 소망이 있기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눅22:30). 그것이 없다면 뭣 하러 멀미가 날 정도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빈대에 물리며 못 먹고 못 자면서 세계를 누비겠습니까? 백억, 천억을 줘도 안 갑니다.
사람들이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날에 받을 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어깨씨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모이면 기도요, 흩어지면 전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혹은 똑똑하고 많이 배운 자들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지만, 미련하고 연약하고 지혜롭지 못한 우리를 택하여 이 귀한 일을 하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상 받을 기회를 주시려고, 면류관을 주시려고 그러신 것입니다. 기회를 주셨는데도 못 잡는 자는 어리석은 자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은 해외에 나가서 전도하시니 그런 큰 상을 기대하지만, 저희는 그러지 못하지 않습니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나가서 전하는 자나 기도로 후원하는 자나 물질로 돕는 자나 다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보낸 선교 헌금을 두고, “이는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빌4:18)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무엘상 30장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일반일찌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삼상30:24) 한 것처럼, 하나님도 동일하게 갚으십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8).
화성탐사선 가는데 작은 부품도 같이 가듯, 제가 각국 대통령을 만날 때 우리 일행도 함께 가듯, 머리 가는 곳에 다리도 가고 팔도 가듯, 나가서 전하는 자나 나가서 전하는데 조력한 자나 똑같은 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든지 보내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경이 벼랑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건져내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자입니다. 후진하는 자동차 뒤에서 아이가 놀고 있다면 달려들어 건져내야 옳습니다. 세상 사람이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데 이를 막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찌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잠24:11~12). 그런데 전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으며 누가 믿겠습니까?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천사가 이르기를,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합니다.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님이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주님이 오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땅끝까지 전도해야 주님이 오실 길을 여는 겁니다. 사도 요한이 초림의 길을 열었다면, 우리가 주님의 재림의 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땅끝’은 지역적인 것뿐 아니라 원수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북한에도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지속적으로 평화통일 기도성회를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저의 동역자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헌금이 있기에 제가 마음껏 세계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날 저는 여러분을 자랑하고, 여러분은 저를 자랑합시다. 우리 교회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빌라델피아 교회와 같습니다. 적은 능력으로 큰일을 이뤘고, 핍박과 환난 중에도 꿋꿋하게 복음을 전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회입니다(계3:7~8). 그날에 교회대표상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 예수중심교회가 받을 겁니다.
여러분, 전도는 누굴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내 사후의 때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우리, 받아놓은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열심히 전도합시다(계3:11). 그날에 받을 면류관을 바라보고 함께 끝까지 뛰어봅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할렐루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천국 복음을 전파하라
행한 대로, 일한 대로
상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