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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 생각은 인생을 좀먹는 암이다(잠18:16)

1317호 · 2025-08-03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찰흙으로 만들기 해보셨을 겁니다. 어떤 아이는 진흙으로 고양이를 만들고, 어떤 아이는 강아지를 만들고, 어떤 아이는 호랑이도 만들었습니다. 왜 각기 다른 작품이 나왔느냐? 그것은 ‘무엇을 만들까?’ 각기 다르게 생각했기에 작품의 결과도 달라진 것입니다.

인생도 내가 만드는 작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은 운명이니 순응해야 한다고 하지만, No! 인생은 운명이 아닙니다. 인생은 ‘생각’이라는 재료가 만들어내는 작품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거죠. 즉 지금의 나는 과거 내 생각의 결과물이요, 미래는 지금 내 생각의 결과물이 될 것입니다.

40여 년 전, 저는 ‘세계교구(世界敎區)’라고 쓴 액자를 만들어 사무실에 걸어놓고

‘나는 세계를 교구화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광명 철산리 지하 교회에서 목회하지만, 반드시 세계를 교구화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남이 들으면 망상 같았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 생각대로 세계 70개국이 넘는 나라에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를 메주 밟듯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제 생각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중에 음식점으로 대성한 분이 있는데, 그분이 “김치찌개가 맛있으려면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고 합디다. 재료가 좋아야 한다는 거죠. 인생이 생각이라는 재료로 만드는 작품일진대, 생각의 재료가 좋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 아름다운 생각으로 작품을 빚으면 인생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겠습니까? 왜 굳이 부정적인 생각, 나쁜 생각, 추한 생각으로 인생을 빚으려 합니까?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할 텐데요. 그래서 성경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한 것입니다.

신발을 수출하는 어느 기업에서 아프리카 진출을 위해 사원 두 명을 시장조사차 현지에 보냈습니다. 이 두 명은 모든 조사를 마치고 본국에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보고는 아주 상반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프리카에는 신발 신고 다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한 켤레의 신발도 팔 수 없습니다.”라고 보고했고, 다른 한 사람은

“아프리카엔 신발 신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무한대로 팔 수 있겠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똑같은 시간에 봤건만 이렇게 결과가 다른 것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보느냐, 긍정적인 생각으로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회사에서는 아프리카 수출을 계획하고 있었으니 어느 사람의 의견을 수렴했겠습니까? 어느 사람을 아프리카의 지점장으로 추천하겠습니까?

이 이야기와 유사한 내용이 민수기에 나옵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 중 열 명은 돌아와 말하기를 ‘거기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고, 부정에 동의했던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두루 알려진 사실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전10:2).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생각부터 바꾸셨습니다. 생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자한 아브라함을 밤중에 밖으로 이끌어 하늘의 뭇별을 보게 하시며 자식이 이와 같으리라고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주셨습니다(창15:5). 그 생각의 결과로 이삭을 낳고, 결국 열국의 아비가 되었지요.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는데 지도자로 쓰시려 하자 ‘나는 못해요. 다른 사람 쓰세요.’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게 하고,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셨고,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생각을 바꾸어주셨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라며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마리아에게도 여호와의 사자는,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6~37)며 생각을 바꾸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를 수태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빼버려야 합니다. 나무가 썩은 것은 뿌리가 썩었기 때문이고, 뿌리가 썩은 나무에 물을 주면 더 썩을 뿐입니다. 그 나무를 살리려면 썩은 뿌리를 잘라내고 다시 심어야죠. 생각이 썩은 자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키나와에 있는 세계 최대의 아쿠아리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 보니까 상어가 조그마한 물고기랑 같이 헤엄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먹을 생각조차 보이지 않는 상어를 보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들어보니 이랬습니다. 이 상어를 며칠간 굶긴답니다. 그러면 물고기를 마구 잡아먹으려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조련사가 상어와 물고기 떼 사이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을 친답니다. 상어는 그걸 모르고 배가 고파서 물고기 떼에게로 달려들려고 하면 벽에 딱 부딪치는 겁니다. 이걸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상어는 ‘아, 잡아먹으면 안 되는구나. 조련사가 주는 거나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게 되어 벽을 제거해도 절대로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답니다.

마귀란 놈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벽을 설치해놓고는 몇 번 부딪치게 하여 ‘나는 못하는 존재’, ‘해도 안 되는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겁니다. 첫 사람인 아담에게 부정을 심어준 것이 마귀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벽을 치우셨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하십니다. “생각을 바꿔! 할 수 있어, 내가 너와 함께 하잖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4:13). 그런 생각을 가진 자들이 비행기를 만들고, 전기를 만들고, 인터넷을 만들고, AI를 만드는 것입니다. He can do it. She can do it. Why not me? I can do it. 부정의 생각만 빼버리면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하셨고,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고도 하셨습니다. 생각이 커야 큰일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큰 생각이 큰 인물을 만들거든요. 찰흙을 크게 떼야 큰 작품을 만드는 법 아닙니까? 사람의 생각만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세요. 하나님의 생각은 그 깊이와 넓이가 우리와 다릅니다(사55:8~9). 그러니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아프면 가족이나 친구가 병실에 병문안은 올 수 있지만, 수술할 때는 혼자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생각을 바꾸는 수술은 혼자 해야 합니다. 생각의 주인은 나이니까요. 이제 잘못된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잘라내고 긍정적인 생각, 미래지향적인 생각, 창조적인 생각, 큰 생각으로 바꾸세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적극적인 생각을, ‘가나안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긍정적인 사고를, 중풍병자를 들것에 들고 와서 지붕을 뚫었던 네 명의 친구처럼 창조적인 생각을 하세요. 생각이 결과입니다(렘6:19).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운전자의 생각대로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오른쪽으로도 가고, 왼쪽으로도 갑니다. 인생의 방향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이냐는 인생의 운전자인 내 생각대로입니다. 당신의 생각에 따라 당신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만사형통한다.”라고 생각하세요. 꼭 그렇게 됩니다. 할렐루야!

쓰레기통 속에서

무슨 꽃이 피랴

생각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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