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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호 목차 › 객원컬럼

관용(寬容)

1317호 · 2025-08-03

세상은 다양하고 서로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으로 자신과 다르다고 다 틀렸다고 단정 짓는 사람들은 천하에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다툼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일에 훼방꾼이 되고 맙니다. 아름다운 건물은 기둥이 숨겨져 있어야 하는데, 기둥이 사람들의 동선을 막고 있어서 부딪치게 된다면 결코 좋은 건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녹지 않고 씹히는 음식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일꾼은 다양성을 인정하며, 부딪치지 않고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해야 합니다.

관용이란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넓히면 이해하지 못 할 일이 없고, 품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정죄하고 그 사람의 꿈까지 짓밟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받은 우리는 관용을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서 공통의 선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대화할 때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것이 모두 다 틀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들은 진리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시대의 풍조에 따라서 변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세상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작정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는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서로 공멸하지 않고 상생의 길을 가려면 상대방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섬기고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들이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원리적인 이단은 배척하고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하지만 믿음의 형제들끼리 서로 다투며 이전투구를 벌이는 일은 결코 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되 훼방하지 말고, 다투지 않으며, 각자 맡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며 살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상화평 목사

a268810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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