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기로 작정하자
은혜받기로 작정하자
2000년대 초반, 갓 20살이 된 청년 시절에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찬양팀 활동을 함께 해온 필자는 자연스럽게 찬양과 경배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모방은 제2의 창조라고, 그 당시에 유명하고 영향력 있었던 사역팀이나 찬양팀의 주중 집회 또는 예배를 찾아다니며 그 팀들이 가진 장점들을 내가 속한 팀에 접목해보려는 나름의 연구를 하기도 했다. 공교한 솜씨로 합이 딱딱 맞게 연주하는 세션들,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빈틈없이 채워지는 코러스, 그들의 실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각종 음향과 영상 조명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정작 찬양팀이나 사역팀의 어떠함이 아닌, 그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지역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집회 장소를 찾아왔고, 예배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성전 문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빠르고 신나는 찬양을 부를 땐 춤을 추고 뛰면서, 또 느리고 잔잔한 찬양을 부를 땐 두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을 드리는 그들의 모습에는 하나같이 기쁨과 감격과 감사가 넘쳐보였다. 그들은 그야말로 그 집회를 통해 은혜받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다.
‘작정(作定)’. ‘일을 어떻게 하기로 결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내일부터 중고등부 수련회를 시작으로 대학청년부 수련회, 여름성경캠프, 하계산상집회가 이어진다. 이는 하나님께서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주시기로 ‘작정’하고 열어주신 은혜의 잔치 자리다. 수련회나 산상집회에 은혜가 넘치는 이유는 그 자리에 참여하는 수련생들과 성도들의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길면 3박 4일, 2박 3일,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이 안 돼서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황금 같은 휴가와 온갖 교통수단을 써서 전라남도 장성의 기도원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그 마음가짐 말이다. 목사님께서도 그런 그들의 마음가짐을 아시기에, 어떻게든 은혜받고 돌아가게 하시려고 사력을 다해서 가르치시고, 직접 모든 집회를 인도하시는 것이다.
이번 여름, 내일부터 시작되는 은혜의 잔치 자리들을 통해 은혜받기로 작정하자. 우리에게 전대미문의 축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 우리 또한 작정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신혁주 전도사
기도의 독을 착실히 채우는 삶
저에게는 30여 년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한 가지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바로 ‘아빠의 구원’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이 한국예루살렘교회이던 시절, 엄마와 늘 산책하던 올림픽 공원에서 엄마는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후 매주 저의 손을 잡고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평소 자상하고 가정적이던 아빠는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붉어지시곤 하셨지요.
그 당시 한국예루살렘교회는 금요철야예배를 새벽 두세 시까지 이어가던 부흥의 시기였고, 엄마는 수요일 저녁은 기도처로, 금요일 저녁과 주일은 올림픽공원이나 88체육관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시며 여러 모습으로 봉사를 하셨습니다. 가끔 아빠에게 저를 맡겨두고 예배를 드리러 가셨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식사를 챙겨주시며, “그놈의 교회를 폭파해버려야겠다.”는 말씀을 매번 하셨습니다.
엄마와 저의 1순위 기도 제목, ‘아빠의 구원’에 대한 응답을 아직 구체적으로 받지는 못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라는 제 질문에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굳게 닫혀있던 아빠의 마음에 복음이 서서히 들어가 성경 읽기를 시작하셨고, 주말이면 목사님들이 드시는 다과를 엄마와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차근차근 요목조목 응답하고 계셨음을 깨닫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저의 30년 기도제목인 아빠의 구원을 눈으로 목도하게 되는 날이 올 것 또한 확신합니다.
김경현
믿음의 공식
공식을 알면 수학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듯이,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도 공식을 알면 풀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공식이 대부분 세상이 가르쳐준 것이라는 데 있다. ‘돈이 최고야.’, ‘외모가 경쟁력이야.’, ‘가문이나 학벌이 좋아야 해.’
문제를 만날 때마다 이런 기준으로 판단했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리고는 자꾸만 작아졌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그때 문득 한 구절의 말씀이 나를 붙들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6:10),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마19:23). 돈이 있으면, 나도 좀 여유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내 마음에 말씀이 질문을 던졌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
또 한 구절이 내 생각을 흔들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세상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다.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있다면, 겉으로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것. 압살롬은 그의 머리카락까지 아름다웠다. 그러나 결국 그 머리카락이 그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토록 자랑스럽던 외모가 오히려 그의 인생을 무너뜨렸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님. 세상적으로 보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를 예수님은 삶으로 보여주셨다. 그분의 제자들 역시 배운 것도 없고, 명성도 없는 어부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셨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뒤흔드셨다. 능력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르셔서 능력을 주신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의지하던 세상의 공식들은, 결국 나를 더 깊은 무력감 속으로 끌고 가고 있었던 것을…. 그러나 말씀은 세상이 “너는 안 돼!”라고 말할 때,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믿음의 공식. 그건 무언가 특별하고 거창한 게 아니다. 말씀 안에서 세상의 기준을 다시 해석하는 눈을 갖는 것이다. 이제는 세상의 공식이 아닌 하나님의 공식을 꺼내 든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할렐루야!
임택함 목사
약속의 열쇠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기독교 고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줄거리는 크리스천이 천성을 향해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네 신앙생활처럼 말이죠. 여정의 후반부를 향해 가면서 크리스천은 ‘소망’이라는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어둠 속에서 그만 ‘의심의 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성의 주인은 ‘절망’이라는 거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지하감옥에 갇혀 3일 밤낮으로 죽음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몹시 매를 맞기도 하고, 자살을 권유받기도 하고, 앞서 죽었던 순례자들의 해골을 보기도 합니다. 이름처럼 거인은 절망만 심어주죠. 그래도 두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깊이 기도하던 중에 드디어 그곳을 빠져나올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크리스천의 가슴속에 이미
‘약속’이라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약속’이라는 열쇠로 ‘의심의 성’에 있는 모든 자물쇠를 열고 무사히 탈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크리스천은 이렇게 한마디 합니다. “아이고, 내가 멍청이지. 자유롭게 도망칠 길이 있는데도 그동안 이 악취 나는 토굴에 갇혀 있었다니!”
이 대목을 읽으면서 참 공감이 가고 깨닫는 바가 컸습니다. 가슴속에 ‘약속’이라는 열쇠를 품고도 죽을 고생을 다 했던 크리스천의 모습이 때때로 우리 모습이 아닐까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고, 만물이 복종하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이미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가슴에 품고만 있고 사용하질 않으니 누리지 못하는 것이 많겠구나 싶었습니다. 반대로 생각만 바꿔서 ‘약속’이라는 열쇠를 당장 사용하기만 하면,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신 말씀을 믿고 실천하기만 하면, 이 땅에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들을 다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한 달 전쯤 교구 차 에어컨이 고장 나서 수리를 했습니다. 어디서 가스가 새나 싶어 점검받았더니 아예 컴프레서 모터가 타버려서 수리비가 예상치 못하게 많이 나왔습니다. 늘 다니던 우리 교회 집사님이 하시는 카센터에서 수리를 받았는데, 감사하게도 수리비는 여유가 될 때 천천히 주셔도 된다고 먼저 말씀해주셔서 수리만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빨리 수리비를 드려야 한다는 걱정과 초조함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까요(요16:23).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분이 연락이 와서 기도 중에 감동이 와서 돈을 보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딱 에어컨 수리비 만큼을요. 너무 소름이 돋아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그분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놀라워하며 십일조 낼 돈까지 보태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만물은 다 우리 것입니다(고전3:21). 하나님이 우릴 위해 다 예비해놓으셨고 우리에게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허락하셨습니다(창1:28). 총회장목사님의 잠언처럼 인생은 보물찾기입니다. 보물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는 이미 우리 가슴 속에 있습니다. 이제 열어봅시다. 전대미문의 축복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호민 전도사
fioe154@naver.com
아프지만 마!
자녀를 키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알게 된다. 이번에도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
주일 아침, 교회 갈 준비가 늦은 중학생 첫째 아들이 말한다.
“저 화장실 좀 가야 해서 먼저 가세요. 저는 따로 지하철 타고 갈게요.”
늦게 일어나 이미 엄마의 잔소리를 많이 들은 터라 또 한소리 듣기 싫어서그렇게 말한 거다. 아내는 먼저 차에 가 있고, 나는 좀 더 기다리다 ‘이젠 나오라’는 내 말에 아이는 짜증 섞인 말투로 ‘먼저 가시라’ 대답했다. 화가 났지만 사춘기 시절 내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모습이 머릿속에 교차하였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아내와 나는 먼저 교회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았다. 그사이 아이는 예배 장소를 착각했다가 엄마의 전화로 발길을 돌려 허겁지겁 오는 중이었다. 찬양하는 도중 성전 건너편에 아이가 들어와 중등부 자리로 가는 것이 보였다. 덥고 숨이 찾는지 옆자리 선생님이 아이에게 계속 부채질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난 마음속으로 ‘얼마 전 꼬리뼈도 다쳤는데, 뛰어오느라 힘들었나 보네. 그래, 좀 힘들어도 돼, 그래야 깨닫지. 아프지만 마라.’ 생각하던 찰나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살다 보면 힘들 때가 있단다. 힘들어도 괜찮아. 좀 버티고 견디면 돼. 그런데 아프진 말거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실 때 그렇게 먼저 병자들부터 고치셨나 보다.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가 힘들어하는 건 일부러 지켜만 볼 때도 있는데, 열이 나거나 아파하는 건 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우리에게 힘든 일이 생기는 건, 우리가 어떻게 하나 하나님께서 가만히 지켜만 보실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픈 건, 병드는 건, 절대 하나님 뜻이 아니다. 그건 하나님 마음이 너무 아프시기 때문이다.
아이가 예배를 잘 드리는 모습을 보니, 화났던 마음도 금세 다 풀렸다.
“아들아, 좀 힘들어도 괜찮아. 그런데 아프지는 마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마14:14).
박찬영 집사
cross3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