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친 고기에 미련을 버립시다
놓친 고기에 미련을 버립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강가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큰 고기를 낚았지만, 줄이 끊어져 놓치고 말았습니다. 허탈하게 강물만 바라보던 그에게 노인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놓친 고기에 미련을 두지 말게. 강물은 이곳에만 흐르는 게 아니지.”
남자는 무릎을 ‘탁’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강 위쪽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이내 더 크고 싱싱한 물고기를 낚았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놓아야 다가올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는 진리를요.
대구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지만, 뚜렷한 삶의 목표 없이 부평초처럼 떠돌다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명문대를 자퇴한 뒤 은둔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드문드문 교회에 나가던 중, 당시 대구 교육국에 전도사로 부임하신 이월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권유로 기타와 방송을 배우며 교회에서 봉사하기 시작했고, 점차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는 더 안정된 미래를 위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지만, 4번의 낙방 끝에 깊은 좌절을 겪었고, 한동안 교회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청년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풀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이럴 때일수록 금식하며 하나님께 길을 여쭈어보렴.”
그는 3일 금식을 결단했고, 첫날 밤에는 자신이 시장 한복판에서 사람들에게 안수하는 꿈을 꾸었으며, 마지막 날에는 “내 발을 보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꿈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확신하며 권면하셨고, 때마침 7년 만에 다시 문을 연 신학교에 입학해 지금은 생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만약 이 청년이 과거에 얽매여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기회를 붙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도 바울처럼 뒤에 있는 것은 잊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힘껏 달려갑시다. 그 길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8~19).
김진실 사모
pupu519@naver.com
예수 이름은 마스터키다
최근 저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주 실제적이고 놀랍게 경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 5시,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러 가기 위해 차를 몰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올림픽대로에 진입하기 직전,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액셀을 밟아도 공기만 헛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차량 속도가 점점 줄어 앞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불과 열흘 전에도 같은 증상으로 견인차를 불러 정비소를 다녀온 터라 저는 직감했습니다.
‘아, 또 뭔가 문제가 생겼구나.’
그 시간에 차를 세우고 택시를 잡기도 어렵고, 다른 목사님께 부탁을 드리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방법이 막히고 길이 없어 보이는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예수의 이름.”
너무 현실적인 문제라 ‘예수의 이름을 이렇게 써도 되나?’ 싶었지만, 곧 떠오른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모든 문제의 마스터키다.”
그래서 저는 차를 도로 한쪽에 세우고 시동을 껐다가 다시 켰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핸들에 안수하며 선포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차는 정상으로 돌아올지어다!”
그 순간, 믿기 힘들 정도로 차량은 점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고, 이전의 증상은 사라졌습니다. 무사히 새벽기도회에 도착할 수 있었고, 저는 그 자리에서 감격의 눈물로 짧게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작다고 생각하는 문제에도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의 이름, 그 이름의 권세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작은 문제든 큰 문제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맡길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기도하십시오.
오늘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문제 위에 명령하며 전대미문의 응답을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이현승 목사
coollee0817@naver.com
믿음의 유통기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을 옆에서 두 눈으로 보고, 또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귀신 쫓는 능력을 받은 자들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이죠. 만약 제가 그 시대에 태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이적을 몸소 체험했다면 지금보다 견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살면서 받은 응답이 넘치는 데도 새롭게 생긴 문제 앞에서는 또다시 믿음이 흔들립니다. ‘나는 왜 이럴까?’ 고민하던 때 마가복음 6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마을로 보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귀신을 쫓아내고 각색 병을 고친 후 예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일과 가르친 내용을 낱낱이 고하죠. 분명 기뻤을 겁니다. 자신의 입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자신의 손으로 아픈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으니까요. 예수님은 온종일 사역하느라 녹초가 되었을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잠깐 쉬라고 말합니다. 주변에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제자들이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죠.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는데 많은 무리가 뒤쫓기 시작합니다. 어떤 이들은 달리고 달려 배보다 먼저 도착했죠. 목자 없는 양 같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이 여러 가지를 가르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갑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룁니다. 무리를 마을로 보내 저녁을 사 먹게 하라고요. 그러자 예수님은 수중에 떡이 몇 개 있는지 물어보시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모아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합니다. 그랬더니 모든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에 차게 남았지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 남자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그날 밤, 제자들은 배를 타고 벳새다로 가고 예수님은 홀로 산으로 기도하러 갑니다. 몇 시간 뒤 새벽바람이 세게 불어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데 저쪽에서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는 게 아닙니까! 유령이 나타난 줄 알고 배 안에서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나죠. 그들이 얼마나 무서워했던지 예수님이 진정시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제자들은 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마가복음 6장 52절은 말합니다.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우리 마음은, 이토록 쉽게 둔하여집니다. 허무할 만큼 연약하고 손바닥 뒤집듯 바뀝니다. 그날 저녁에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으나 하룻밤도 못 가 마음이 둔해졌죠.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능력은 믿으면서도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믿지 못했어요. 낮에는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각색 병을 고쳤으면서도 새벽에는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죠.
믿음의 유통기한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여 응답받은 오늘의 믿음이 내일도, 1년 뒤에도 계속 이어질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천국에 간다는 믿음이 오늘은 굳건하나 죽을 때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죠. 믿음이 둔해지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갈고 닦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제 기도를 많이 했다고 오늘은 안주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무시로 방언기도를 하려 합니다. 매일 아침 묵상하며 예수님께 꼭 붙어있으려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에 공예배 때만이 아니라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산책길에도 설교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는 순간 물 위로 기뻐 뛰어나가 예수님을 껴안는 믿음을 갖고 싶습니다.
신은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우리를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양은 사나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고, 빨리 달릴 수도 없으며, 시력도 형편없어서 길을 잃어버리면 자신의 힘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해 길을 잃은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있었고, 그 길을 찾기 위해 아무런 힘이 없었으며,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천상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고 낮은 땅으로 육신을 입고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흘리시며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악의 모든 짐을 벗겨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복락의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로 인해 멀리 떠나있다 할지라도, 목자가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영생복락의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목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결단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내미시는 손 뿌리치지 마시고, 주님 손 꼭 붙들고 날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상화평 목사
a26881009@gmail.com
복음의 통로
제 주변에는 믿지 않는 친구, 가족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인간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다투기도 하고 성격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나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혹여나 내 행동이 복음을 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이들이 내 모습을 보고 예수 믿는 것을 꺼리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먼저는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내 주관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으며,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부모님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 최선을 다합니다. 내 생각과 달라도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친구 앞에서 모든 행동을 조심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 의견을 쉽게 양보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다툴만한 일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혹여나 내 말과 행동을 보고 내가 믿는 예수님을 오해할까 봐 더 바른 모습을 보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장 동료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려 노력합니다. 덕이 되지 않는 말과 행동은 피하고 최대한 긍정적인 말을 하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했을 때 거리끼는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저는 올해 이 말씀을 붙잡고 전대미문의 구원의 역사가 우리 가문에 나타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제 삶이 복음의 걸림돌이 아닌, 복음의 통로로 쓰이기를 원합니다. 때때로 믿지 않는 가족들을 보면 현실의 벽이 높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의 씨앗을 심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전소희
so2eej@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