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예수님과 3년간 동고동락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따른 건 예수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 정치적 해방과 권력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시자 더는 자신의 기대를 채워줄 분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렸다.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 곧 ‘~ 때문에 사랑’은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못하거나 그 필요성이 끝나면 배신하게 되어있다. 가룟 유다처럼.
이혼하는 부부들을 살펴보면 표면적 이유가 어떻든 결국 ‘~ 때문에 사랑’이 이유다. 돈이 많기 때문에 사랑하고, 이뻐서 사랑하고, 학벌이 좋아서, 집안이 좋아서 사랑하여 결혼했는데, 그 조건이 사라지니까 그들이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도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불구하고’의 사랑, 곧 사랑해서 필요한 경우는 설령 죽음이 온다고 해도 갈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
어느 여자 집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이 병으로 자리에 누운 지 오래되어 모든 수발을 들어줘야 할 지경이 되었단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이 남편을 부르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단다. 그러나 그 집사는 말한다.
“저를 생각해서 그렇게들 말하지만, 저는 병든 남편이라도 내 곁에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게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필요한 것일까,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돌아봐야 한다. 자주 시험이 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필요해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필요한 것을 바로 안 주시니까 시험에 드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필요로 하는 자가 되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라던 사도 바울처럼.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라는 말씀이 이뤄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