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도와주면 내가 윤택해진다(신28:1~15)
‘한 손에는 능력을, 한 손에는 구제를!’
2050년까지 향후 25년을 계획하면서,
‘과연 나는 이 땅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 이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반드시 행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신 것이 하나의 명령이요,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15:11)는 것이 또 하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명령을 받잡아 70이 넘은 나이에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 복음을 전하고 있고, 아울러 이제 153구제운동 사단법인을 만들어 153구제운동(153 Rescue Movement)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153 AID를 통해 조용히 구제운동을 전개해왔지만, 성도들과 함께 이 구제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하고자 합니다.
‘153구제운동’은 요한복음 21장을 근거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니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물고기가 심히 많음에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고, 제자들은 그것을 이웃 배를 불러 서로 나누었습니다. 곧 ‘153구제운동’은 ‘주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나누자’는 운동입니다.
제 결정에 어떤 이는 “서울교회도 아직 못 지었는데 무슨 구제를 하시려고 합니까?”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걸 아십니까? 가난한 자를 구제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을요.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15:10). 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5)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남의 손을 깨끗하게 씻어주면 내 손도 깨끗해집니다. 남을 가르치다 보면 내 실력이 쑥쑥 늘어납니다. 같은 이치로 남을 풍족하게 하면 나도 풍족하게 됩니다. 왜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눅12:33)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남을 구제하면 내 주머니가 마르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복을 받은 것은 목회 초기부터 전국과 전 세계에 오디오 테이프는 물론 비디오테이프까지 무료로 나누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해외로 비디오테이프 10개를 보내려면 거의 10만 원 정도가 들었지만, 우리는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 무료로 보내줬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우리 교단의 세계 복음화에 소중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은 한 번도 변개함이 없습니다. 그분이 복을 주시기로 작정했는데 누가 그걸 막겠습니까(민23:19~20)?
성경에는 구제함으로 복을 받은 자들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료’가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가이샤랴에 주둔하고 있던 이달리야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식민지 백성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서 의인이라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럼 고넬료가 무슨 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베드로를 그의 집으로 보내셨고, 베드로를 통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최초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유인즉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정확히 짚어줍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다비다라는 여제자도 노인과 과부에게 많은 구제를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죽자 그곳의 제자들이 급히 베드로를 청하여 그에게 받은 사랑을 베드로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녀를 위해 기도했고, 다비다는 살아났습니다. 구제를 하는 자가 받는 축복이 이렇게 어마어마합니다.
여러분, 구제는 의무입니다.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가 있고, 납세의 의무가 있듯이 믿는 자들에게는 구제의 의무가 있습니다. 구제를 하면 고맙고, 안 해도 무방한 것이 아니라 구제는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법적제재가 가해지는 법, 하나님이 주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신15:7~9).
‘구제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십시오. 주님이 천사와 함께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양은 주님의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누가 주님의 오른편에 설 양입니까?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고, 목마른 자를 마시게 한 자입니다.
반대로 왼편에 설 염소는 주린 자를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벗은 자를 두고 자기만 잘 입은 자이며, 목마른 자들을 나 몰라라 하고 저만 목을 축인 자입니다. 문밖에 굶는 나사로를 보면서도 매일 파티만 했던 부자 같은 자들이 왼편에 설 염소라는 것입니다. 오른편, 왼편은 위치싸움이 아니라 곧 영생과 영멸을 말씀하신 것이니(마25:46) 얼마나 무섭습니까?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
왜 이런 심판이 있는지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0~45).
그렇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예수님께 하는 것이고, 이를 외면하는 것은 예수님을 외면하는 것이니 영생과 영멸이 각기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거듭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고 말씀하시며, 구제에 힘쓰라고 명령하십니다.
여러분, 구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먹지 못해서 배가 등에 붙었는데, 그들에게 ‘배부르라’고 말하면 배가 불러집니까? 헐벗어서 몸이 얼었는데 ‘더웁게 하라’ 하면 더워집니까? 라면이라도 먹여야죠. 겉옷이라도 벗어 덮어줘야죠.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3:17~18).
하나님은 원수라도 주리거든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마시게 하라 하셨는데(롬12:20), 없어서 못 먹고 마시는 자에게 어떠하라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구제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2). 사람들 보라고 떠벌리며 구제하면 안 됩니다. 그저 하나님만 보시게 은밀히 해야 합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은밀히 복을 주십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3~4).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그러니 우리, 낮의 해처럼, 밤의 달처럼 어두운 세상이 밝아지도록 구제에 힘쓰며 경건하게 삽시다. 할렐루야!
부자로 살 것인가
부자로 죽을 것인가
인색함과 절약은 다르다
인색한 자는 부모도 싫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