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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면 산다

1313호 · 2025-07-06
To Be Succeeded

기도하면 산다

기도원 집회에서 돌아온 날 밤이었다. 꿈에 나를 죽이겠다는 귀신이 나타났고, 나는 필사적으로 예수 이름으로 가라고 명령했더니 사라졌다. 꿈에서 깬 후, 그간의 상황과 환경을 통해 나에게서 살 소망과 기쁨을 빼앗은 존재가 바로 악한 영이며 귀신임을 정확히 알았다. 예수 이름으로 쫓았더니, 놀랍게도 이후 마음이 새로워지고 기쁨과 소망이 소생되었다. 또 어느 날은 한 지체를 놓고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기도를 강력히 도우시더니 그의 생각과 마음에 꽁꽁 묶인 결박을 끊으셨다. 그 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이전보다 훨씬 밝고 환한 모습이었고 곧이어 맡겨진 주의 일도 잘 감당해냈다. 이 사건들을 통해 분명히 깨달았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자, 그분이 하신 일이다.

우리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농사는 잡초와의 싸움이고, 신앙생활은 귀신과의 싸움이라고. 맞다. 외적으로는 풍요롭고 발전된 세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잃고 낙심하며 잘못된 선택에 이르기까지 안타까운 일이 수 없는 것은, 어둠의 주관자 악한 영과 귀신이 우리 생각과 마음의 조그마한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며, 영과 육을 죽이려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정확히 절도요, 강도라고 명명하신다(10:8).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과 믿음, 담력 등 좋은 것은 빼앗아 가고, 두려움과 근심, 분노와 낙담 같은 나쁜 것을 마치 내 것인 양 가져다 놓고는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힘입은 기도를 통해 귀신과 악의 영을 여지없이 몰아내고, 천국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마12:28). 이것이 우리를 죄와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희생제물로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은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에(막9:29), 목사님은 사도 바울처럼 ‘나를 본받으라’고 외치시며 거듭거듭 기도를 강조하신다. 목사님처럼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열고 닫아보자. 무시로 기도해보자. 모여서 기도하자. 기도하면 살 수 있다. 기도하면 살아난다. 왜냐?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고, 가장 위대한 사람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6:18).

이국진 사모

낮은 울타리

항상 기뻐하라

코로나 때의 일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정말 오랜만에 서울 대학부에서 경배와 찬양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 앞자리에서 나가 뛰며 찬양했습니다. 그렇게 찬양을 하고 있는데 누가 저를 툭툭 쳤습니다. 친언니였습니다. 언니는 저를 성전 뒤로 끌고 가더니 이야기했습니다. “수정아, 아빠가 지금 코로나로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응급실에 갔대.” 저는 마음이 쿵 했습니다. 아빠는 갑상선 암 때문에 두 번이나 수술하셨기에 특별히 아빠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게 가족끼리 최대한 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빠가 코로나이고,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엘 갔다니…. 게다가 들어보니 코로나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지 못해 엄마와 아빠가 밖에서 꽤 고생하신 모양이었습니다.

언니와 저는 밖으로 나가 눈물을 흘리며 언니랑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언니, 나 집에 가고 싶어. 이 마음으로는 찬양 못할 거 같아.” 당시 저는 대학부 팀장을 맡고 있었고, 언니는 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마음으로는 들어가서 찬양하며 예배 드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언니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은 우리 감정과 상관없는 거야. 하나님이 명령하신 우리 의무야.” 저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그렇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 나오는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기뻐하는 것이 아닌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에 적혀있습니다.

저는 바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매는 다시 기뻐 뛰며 찬양하는 대학부원들 사이로 들어가 다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빠 병세는 크게 호전되셨습니다.

이 기억은 아직도 저에게 깊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낙심할 때마다 이 사건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지 못할 상황에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지 늘 지켜보십니다. 그러니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닌,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합시다.

장수정

내가 매일 기쁘게

신앙의 박스권을 넘어

주식시장에 주가가 일정 범위에 갇혀 횡보하는 ‘박스권’이 있듯, 나의 신앙생활도 익숙한 패턴에 머물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성숙한 믿음을 향한 수고와 경계를 다짐했지만, 어느새 그 결심이 흐려지고, 현재 이상으로 애쓰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문득, 내 신앙이 영적인 박스권 안에 갇힌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늘 감사한 것은, 근심과 걱정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도회를 열어주시고 어김없이 응답해주신다는 것이다. 환경의 변화, 물질의 축복, 만남의 축복처럼 눈에 보이는 응답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응답은 말씀과 설교를 통해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어주시는 것이었다.

수년 전, 어떤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기도하며 정말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이 경험을 지금까지 동기부여의 소재로 삼아왔지만, 어느새 이것이 내가 그어 놓은 한계가 되어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이 박스권을 벗어나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이 박스권을 넘어 더 높은 신앙의 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지점이 존재한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기도와 노력으로 임계점을 뛰어넘으라고 말씀하신다.

액체가 기체로 변하듯, 물질의 상태가 바뀌는 이 임계점을 돌파하려면 아마 해본 적 없는 연단이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단을 통해 신앙의 임계점을 뛰어넘으라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앙의 박스권을 넘어 임계점을 돌파하여, 다른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나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전호정

rockerjhj@naver.com

치우치지 않는 저울

섬김의 선순환

어느 날, 기도 중에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배우자에게 보여주시며, 그를 후원하라고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명령하셨습니다. 그를 못 본 지 10년이 넘었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뜬금없이 후원하라고 하시니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수소문하여 그를 찾았습니다. 그는 미전도 종족 선교사로서,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이슬람 국가에 파송되어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분과의 인연이 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지교회가 없는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터라 말씀 테이프, 비디오, 그리고 장성 기도원 집회를 통해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자랐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예배를 드릴 수 있던 때가 아닌지라 주일에는 그 지역의 타 교단 교회에 나갔습니다. 고3 시절 그곳에서 그분을 알게 되었는데, 어릴 적부터 그 교회에서 자란 다른 친구들은 지난날 교회 교육부서의 담당 교사와 제자로 만난 적이 있기에 그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친근히 대했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저도 그분께 공손히 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토요일마다 고등부의 저녁기도회가 끝나고 교회에서 그분과 우연히 마주치면, 저와 친구들을 차에 태워 가까운 고속도로 휴게소로 데리고 가서는 우동 한 그릇을 사주곤 하셨습니다. 고단했던 고3 시절, 작은 차에 친구들과 포개어 앉아 차창 밖의 야경을 바라보고, 야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웃던 그 순간이 귀한 추억이 되었기에 그분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짧은 인연으로 그 선교사님을 후원하라고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명령하셨고, 예수중심교회에 소속된 성도임을 밝히고, 12년째 매달 선교헌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종종 선교지의 소식을 전하며 기도를 부탁하시는데,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많은 가난한 그곳에서 한국 라면 한 그릇을 아이들에게 대접하면 그들의 부모가 찾아와 ‘어떻게 남의 아이까지 끼니를 챙겨줄 수 있냐’면서 신기해하고 진심으로 감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교회 하나 없는 척박한 무슬림 지역에서 따뜻한 섬김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저의 고3 시절, 선교사님은 파송되기 전에 훈련받고 있던 때라, 우동 몇 그릇을 저와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우동 한 그릇의 귀한 섬김을 받았던 한 소년이 자라서 선교사님을 후원하고, 후원한 물질이 라면 한 그릇의 따뜻한 섬김이 되어 복음이 전해지는 그곳에서 쓰임 받고 있으니, 수년 전, 행방을 모르는 한 사람을 후원하라던 하나님의 명령이 뜬금없는 일이 아니라 섬김받은 자로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작은 물질을 보냈지만, 이제는 라면 한 그릇의 섬김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이 또 다른 섬김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가슴 벅찬 소망과 함께 기도를 담아 선교헌금을 보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 섬김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 안에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한 많은 선교사님, 주의 종, 그리고 믿음의 선배님들의 헌신과 섬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알고 그 은혜에 늘 감사하는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 섬김받은 자로서 섬기는 자 되어 지나온 자리마다 예수님의 향기를 남기고, 생을 마치는 날, 사랑하는 예수님 품에 안겨 잘했다 칭찬받는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정명관

v-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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