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마라톤
내 생애 첫 마라톤
학교에 다니던 시절, 내가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오래달리기였다. 평소에 달리기를 할 일도 거의 없었고, 체력도 약했기 때문에 오래달리기 시간이 다가오면 걱정이 태산이었다. 선생님이 무서워 안 할 수도 없고, 반 전체가 함께 출발하니 도망갈 곳도 없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상황을 아는 친구들의 배려로 제일 앞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에는 늘 제일 뒤에서 허덕이며 달리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뛰어야 하나…’, 한 걸음 한 걸음이 버거울 때,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친구들을 앞질러 함께 뛰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반 육상선수였다. 그의 도움 덕분에 나는 무사히 오래달리기를 마칠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지금도 그 친구의 외모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나는 달리기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도 달리기를 운동 삼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작년 말쯤, 체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슬로우 러닝이라도 10분씩 해보자며 시작하게 되었다. 10분, 15분, 그리고 30분… 두세 달이 지나자 조금씩 몸의 변화가 느껴졌고, 러닝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청장년부의 한 집사님이 “이왕 운동하는 거, 마라톤에 한 번 도전해보는 게 어때?” 하고 권유했다.
마라톤은 나에게 있어 감히 상상도 못했던 큰 도전이었다. 나와는 무관하다고만 여겼던 일이 어느새 현실적인 목표로 다가왔다. 큰 결심 끝에 내 생애 첫 마라톤을 신청했고, 부담과 긴장이 있었지만 목표가 생기니 하루하루 더 열심히 뛰게 되었다.
대회 당일, 하루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에 함께 기도했더니, 오전 비 소식이 흐림으로 바뀌고 현장에는 해가 떠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목사님께 배운 ‘믿음의 기도’가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싶었다.
매일 혼자 뛰다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출발하니, 거리도 더 짧게 느껴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5km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마라톤이라는 첫 도전에서 자신감도 얻고, 짜릿한 성취감도 맛보았다. 이제 ‘다음 목표는 10km로 해볼까?’ 하는 당찬 말도 주고받으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도전하는 삶은 이름답고 행복하다. 축복 역시 침노하는 자의 것이 아닌가!
송지혜 집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까?
얼마 전 교사찬양예배를 준비하면서 밤늦게까지 연습을 했었습니다. 교사 중 세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습니다. 연습은 대성전에서 진행되었고, 아이들은 사무실에 있었는데, 제 파트 연습이 끝난 후 사무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더군요. 저녁을 먹었는데 연습이 길어지다 보니 배가 고픈 듯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먹을 것이라도 사주려고 아이들을 데리고 편의점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밥으로 먹을 것은 안 고르고 과자만 고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과자도 같이 사줄 테니까 배부를 것으로 골라라’ 이야기하니 가장 큰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밥은 우리 엄마가 줄 거야.” 엄마랑 통화했는지 물어봤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괜찮으니까 밥도 같이 골라서 먹자’고 거듭 이야기했는데도 이 아이들이 반복해서, “밥은 우리 엄마가 줄 거야.”라고 해서 결국 과자와 음료수만 사서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이미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연습이 계속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저는 ‘엄마가 밥을 챙겨주는 게 쉽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눈에는 그런 상황과 환경과 관계없이 자기의 필요를 엄마가 당연히 채워줄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자녀 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여야 할 모습이 바로 이 아이와 같은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 말입니다(마6:25~34).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한다면 우리가 더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vvvvvv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 올해는 그 권세를 가지고 모두 전대미문의 복을 받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윤에녹 생도
비하인드 스토리
윤은경 권사님께서 기도원에서 소천하셨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여러 합병증으로 고통이 극심하셨지만, 언제나 천국을 소망하시던 권사님은 가장 아름다운 때에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교단의 모든 교우들은 유족인 최 집사님과 주미, 성주에게 큰 위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특별히 예배 때마다 ‘아버지’라 부르며 목사님을 찾던 권사님의 마음을 기억하신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아버지 된 심정으로 모든 장례 절차를 주관하셨고, 모든 행정과 재정까지 책임지셨습니다.
저는 주미와 성주의 중고등부 시절 담임으로 인연이 있었기에 발인 예배부터 안장 예배까지 함께하였고, 윤 권사님의 감춰진 삶의 이야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시대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이야기입니다.
27년 전, 권사님이 결혼하실 당시 주례를 맡으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약 700쌍의 부부 주례를 서셨지만, 권사님 같은 분은 처음이었다고 하셨습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권사님은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결혼을 축복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식사를 대접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행복하게 살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매년 감사를 잊지 않고 표현해주는 분은 권사님 한 분뿐이었다.”고 하셨습니다. 26년 동안 변함없는 감사의 표현은 마음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권사님의 삶을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보게 했습니다.
또한 장례 일정의 마지막, 유골함을 안장하던 순간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미와 성주야, 너희 엄마가 예배 때마다 나에게 뭘 가져왔는지 아니? 검은 비닐봉지에 영비천, 박카스 같은 음료수와 빵 몇 개를 넣어 매번 내게 가져오곤 하셨단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겠니.”
마치 사도행전의 다비다가 죽었을 때, 여인들이 베드로에게 다비다의 선행을 이야기했던 장면처럼, 권사님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머물던 곳에 그리움을 남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움을 남기고 간 윤 권사님을 보며, 나는 과연 천국에 가게 된다면,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회자될까 생각해봅니다.
이현승 목사
“한 번 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나면 한 번 죽습니다.”
거듭남이란 단순히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은 성령님을 통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한 번 나면 두 번 죽는다.’는 말은 우리가 육신의 생명을 한번 경험한 후에 영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면 영원한 저주와 형벌에 처해지는 두 번째 죽음, 즉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두 번 나면 한 번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남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듭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것에만 집중하며 거듭남의 필요성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후 준비보다 사후를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종교적인 열심이나 신앙의 연륜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쌓으며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종교인이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영생복락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3).
상화평 목사
지키는 것과 바꾸는 것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와 그 속에서 지키는 것과 바꾸는 것의 균형, 그리고 장인정신과 혁신정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본다.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를 보면, 일본은 전통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장인정신으로 몇백 년의 가업을 이루며 사는 반면, 한국은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문화이다. 한국의 식당을 하는 부모는 자식이 식당을 하겠다고 하면 펄쩍 뛰며 “내가 너, 이 일 시키려고 이 고생한 줄 알아?” 하며 서울로 보낸다. 그러나 일본은 가업 잇는 것을 지지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옛것을 기억하라’는 말씀과 ‘새것을 창조하라’는 말씀을 동시에 주신다.
“보라 나는 새 일을 행하리라”(사43:19). 이 말씀은 변화와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일을 기대하며 나아가라는 격려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나 삶의 자리에서 지키는 것과 변화시키는 것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전통을 소중히 여기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새롭게 살아가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나 너희는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것이라”
(골3:10)
이 말씀은 우리가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전통과 장인정신의 교훈을 소중히 하면서도, 시대와 환경에 맞게 변화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는 마치 장인들이 전통 기술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도구와 방법을 도입하는 것과 같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끊임없는 수련과 정성’을 의미하며, 한국의 혁신정신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도전’이다. 두 문화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가치이다.
총회장 목사님은 목회자 세미나에서 “초대교회의 말씀과 능력을 잃지 않고 Ai의 지식을 활용해 시대에 뒤떨어지지 말아야 말세지말의 시대를 견인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Ai를 두려워하며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시대를 이끌어 갈 것인가? 책도 Ai를 활용하니 하루 만에 만들어지고, 음악도 나의 취향과 생각을 설명하면 작곡도 몇 분 안에 만들어진다.
나중에는 우리가 할 일이 없어질 것 같으나 기도와 깊은 묵상을 통한 영감(in-spiration)은 만들어내지 못하리라. 귀신은 쫓지 못할 것이고,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창의력은 못 쫓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만의 말씀의 능력을 지키고, Ai를 활용해 끊임없이 혁신한다면 충분히 이 시대를 이끌고 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여러 종류의 Ai로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바뀌고 있고 기존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뒤처지고 있다. 이런 혁신에 뒤처지지 마시고 시대를 이끌어가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최연식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