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기도는 내 삶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준다(행2:1~4)
“목사님, 건강 비결이 뭐예요?”
“방언기도입니다.”
“목사님, 목회 성공 비결이 뭐예요?”
“방언기도입니다.”
“목사님처럼 지혜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언기도 하세요.”
맞습니다. 방언기도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하루 4시간, 집회 때면 7시간 이상을 기도하는데, 그중 80% 이상을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방언기도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으며, 지금까지 일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14:18)고 말했지요? 저도 그래서 방언기도를 많이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정말 방언기도를 많이 하면 좋냐고요? 말하나 마나입니다. 여러분, 방언은 성령을 받았다는 외적 증거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20여 명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일심으로 기도할 때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서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0장에도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성령이 임하니 모인 자들이 다 방언을 말했다고 했습니다(행10:46). 즉 방언은 성령을 받은 표적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선물이 성령인데, 그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이니 방언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내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니 더욱 좋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고, 우리가 넘치도록 복을 받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내 뜻대로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니 방언기도가 더욱 좋은 것입니다.
그럼 방언기도가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방언기도는 영적 기반시설입니다. 선진국에 가보면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도로, 철도, 항만, 공항, 전기, 통신 등 사회기반시설을 통틀어 ‘인프라’라고 하는데, 이 기반시설을 바탕으로 사회 각 분야가 더욱 발전하는 거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이 70년대에 독일을 방문했을 때 아우토반(고속도로)을 보고 ‘고속도로가 있어야 사람뿐 아니라 물류 이동도 빠르고 원활하겠구나.’ 생각하고는 귀국하여 서둘러 경부고속도로를 계획하고 착공했던 것입니다. 물론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직접 보고 왔기에 강경하게 그 계획을 밀어붙였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인프라 구축의 시발점이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리 영·혼·육이 발전을 꾀하는 것도 영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방언기도입니다. 방언기도는 영적인 삶 전체를 떠받치는 근본적인 기반이요, 구조라는 것입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볼까요? 방언기도는 최고의 통신망입니다. 요즘 인프라 중 가장 주요한 것이 인터넷과 통신 아닙니까? 그런데 방언기도는 성령과의 깊은 교제, 즉 하나님과의 직통전화입니다. 이 전화는 고장도 없고, 지연되는 일도 없고, 간섭도 없는 그야말로 최상의 통신망입니다. 더욱이 최고의 보안성까지 갖추었으니 이보다 좋은 통신망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왜 하냐고들 하는데, 이것이 곧 이 통신망의 장점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어느 통신사의 정보 유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방언기도는 우리의 방해세력, 음해세력들이 알아듣지 못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14:2).
방언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과의 교류가 원활해지니 영혼이 잘 되는 기반을 놓는 것이고, 그 위에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야말로 최고의 인프라입니다(요삼1:2).
둘째, 방언기도는 능력과 지혜를 가져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우리는 영적 전쟁 중입니다(엡6:12). 그래서 늘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하는데, 그것은 성령 충만을 입는 것이고, 성령 충만하면 권능이 임합니다. 이는 곧 최상의 무기를 지원받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성령을 힘입어’ 우리의 주적인 귀신을 내쫓는다고 했는데, 성령을 힘입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방언기도입니다.
제가 해외집회에 나가면 아무도 안 만나고 호텔 바닥에 수건 두어 장 깔아둔 채 오직 기도만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전투에 승리하려면 충분한 무기가 준비되어야 하거든요.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심도 능력을 덧입은 후, 곧 무기를 받고 전쟁터에 나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안식일을 두 번이나 어겨가며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여 그들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세상으로 나가 예수의 증인이 되어 귀신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쳤습니다(행2).
또한 방언기도를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지혜가 옵니다(약1:5). 저는 상담을 하다가 제가 해결하기 어려울 때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용히 방언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게 지혜를 주사 일을 해결하게 하십니다.
셋째, 방언기도는 내 육체와 내 사업터의 도난방지기입니다.
누가 우리 사업을 망하게 합니까? 누가 우리 육체를 병들게 합니까? 누가 우리 가정을 깨트리려고 합니까? 귀신입니다. 그것들은 호시탐탐 우리에게 침입하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불이 밝으면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듯,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자는 영적 불이 훤하게 켜져 있기 때문에 절대 귀신이 얼씬거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고 한 것입니다.
넷째, 방언기도는 전염병을 막는 백신주사입니다.
기도원집회를 할 때마다 수십 마리 돼지를 보내주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목사님이 부르신 찬송과 방언기도를 녹음해서 계속 틀어주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몇십 미터 앞에까지 구제역이 와서 다른 돼지농가는 돼지를 폐사해도 이 성도님네는 끄떡없다고 했습니다.
다섯째, 방언기도는 내 앞길의 장애물을 제거해주는 탐지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세계 70여 개국에 다니면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것은 바로 방언기도 덕분입니다. 제가 앞날을 어찌 알겠습니까? 무슨 일을 당할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기에(롬8:26) 어떤 함정에도, 어떤 올무에도 걸리지 않고 세계를 복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방언기도가 나올 때는 ‘왜 이러지?’ 하지 말고, 방언기도로 부르짖으세요. 내가 알지 못한 장애물이 앞에 있더라도, 방언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사 그것이 제거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방언기도를 하면 인격도야가 이뤄집니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자에게는 인격적 변화와 특성이 나타나는데, 이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갈5:22~23). 성령을 받고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에 대해 쓴 바울의 변화된 모습, 그리고 이초석 목사의 변화된 모습을 보세요.
이 좋은 방언기도를 왜 안 합니까? 얼마 전 큰돈을 날린 기업인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 “방언기도를 잃어서 그런 겁니다.”라고 일침을 날렸습니다. 방언기도를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좀 이뤘다고 느슨해진 겁니다. 그러니 당할 수 밖에요 .
여러분, 배움의 끝은 실천입니다. 내 삶이 윤택하려면 방언기도 하세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엡6:18). 할렐루야!
방언기도는
영적 기반시설이다
방언기도는
하나님과의 비화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