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전하라(막16:15~20)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며 세 사람에게 각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깁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회계하자 다섯 달란트 가졌던 자는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다섯 달란트 이득을 남겨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마찬가지로 밤낮을 일하여 이득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그대로 땅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이를 받아 든 주인이 화를 내자 그는 이리저리 주절주절 핑계를 댑니다. 주인은 핑계로 인하여 더욱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서 “악하고 게으른 자의 것을 빼앗아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게 주어라.”라고 명했습니다.
주인이 왜 불같이 화를 냈을까요? 이익을 남기지 않아서요? 아닙니다. 만일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열심히 장사를 하다가 장사에 미숙하여 한 달란트를 까먹었다면 주인은 절대 화내지 않았을 겁니다. ‘좋은 경험했구나.’ 했을 것입니다. 주인은 게으른 그에게 화가 났고, 더욱이 그런 그가 핑계나 대고 있으니 더욱 노해서 ‘악하고 게으른 놈, 나가!’ 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게으름은 죄악입니다. 죄는 나를 죽이는 것이요, 악은 남을 해치고 죽이는 것일진대, 게으른 자가 그런 자라는 것입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잠10:4),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고(잠12:24),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고(잠13:4), 패가하는 자의 형제(잠18:9)이니 자기를 죽이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10:26) 했으니 남을 해치고 죽이는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마25:30)고 하신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여러분, 암(癌)이 왜 무섭습니까? 암은 사방이 입이라 무조건 전이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암은 초기에 완전히 도려내야 삽니다. 게으름도 당연히 전이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보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누룩이 뭡니까? 악한 영향, 곧 게으름, 타락, 불신앙 아닙니까? 이런 것들도 전이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는 말씀은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말씀으로, 결국 게으른 자와 함께 하다 보면 게을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는 암을 도려내듯 도려내야 합니다. 혈연, 학연, 지연을 막론하고 잘라내야 단체가, 교회가, 국가가 삽니다.
누가복음 13장에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주인이 무화과나무가 3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하자 과원지기에게 이 나무를 찍어버리리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과원지기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눅13:8~9).
이 과원지기는 3년 동안 게을렀습니다. ‘때 되면 열리겠지.’ 하며 신경도 안 썼습니다. 할 수 있었는데, 안 한 겁니다. 왜? 내 것이 아니니까 무책임했던 것입니다. 맞습니다. 게으름의 본래 뜻은 ‘돌보지 않는다’로 ‘무책임’을 뜻합니다. 무책임하기 때문에 게으른 겁니다. 우리 아들이 예전에 세차하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차를 주니까 열심히 세차합디다. 자기 차니까 책임감이 생긴 겁니다. 성경에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27:23)고 하신 것은, ‘네 양떼이니 책임감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제가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고, 백여 개가 넘는 국내교회를 돌볼 수 있는 것은 책임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 양떼가 행여 다칠세라, 아플세라, 누가 채갈세라 살펴야 하기에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가시나무를 심고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마7:16). 게으름을 심고 부귀영화를, 성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게으른 자는 기회가 와도 그 기회가 그림의 떡이 되고 말뿐입니다.
당연히 부귀영화와 성공은 부지런한 자의 것입니다.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고(잠10:4), 부지런한 자는 풍족하게 되고(잠13:4), 부지런 자는 사람을 다스리게 되며(잠12:24), 왕 앞에 설 것이라고(잠22:29)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정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 요셉이 부자로 산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더불어 그들이 부지런했기 때문에 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지런이란 열쇠는 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빈궁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한 세대만에 세계 10대 부국이 된 것을 보고 세계는 ‘있을 수 없는 일’, 혹은 ‘기적’이라고 말합니다만,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부지런을 떨며 배우고 일한 결과입니다. 새마을운동을 하며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온 우리 부모님들, 피난 중에도 아이들 책부터 챙기고, 재봉틀을 돌리면서도 자식을 학교에 보낸 우리 부모님들 덕분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고 말씀하십니다. 부지런히 전심전력하면 발전하고 성공한다는 말씀입니다. 가정도, 기업도, 개인도, 교회도 동일합니다. 또 고린도후서 9장 6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밭에 씨를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두고, 적게 뿌리면 적게 거두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누가 적게 심나요? 게으른 자입니다. 누가 많이 심나요? 부지런한 자입니다.
인생의 밭에, 인생의 포도원에 잡초와 가시덤불이 덮여 이리저리 찔리고,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까? 게으름을 떨쳐버리고 일어나 잡초를 거둬내십시오. 앞에 언급한 과원지기처럼 ‘해보자,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결단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연구하고, 노력하고, 배우고, 찾으십시오. 반드시 열매가 보일 것입니다.
인생을 도둑질하지 마세요. 시간을 도둑질하지 마세요. 성경은 “때를 아끼라”(엡5:16)고 했는데, 매일 빈둥빈둥 놀고, 해가 중천에 뜨도록 좀 더 눕자, 좀 더 자자 하고, 심지어 차려놓은 밥상에서 수저 올리기도 귀찮아하는 자에게 무엇을 기대하겠고, 그런 자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그런 자와 동업하면, 그런 자와 결혼하면, 그런 자와 목회하면 공멸하고 맙니다.
여러분, 기도의 응답도 부지런해야 받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5~7) 하셨고,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하셨습니다. 즉 영·혼·육이 부지런하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됩니다. 암요, 되다마다요. 안 되면 하나님이 안 계신 거죠.
자본이 없습니까? 배운 게 없습니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습니까? 그러나 최고의 자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지런함입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운동하고, 부지런히 기도하세요. 그러면 부귀영화가, 건강이, 그리고 천국이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게으른 자신과 싸워 이겨내세요. ‘~ 때문에’라고 변명하지 말고, ‘밖에 사자가 있다’고 핑계 대지 말고, ‘게으른 나’와 싸워 이겨 부지런함이 몸에 배게 하세요. 그러면 행운도, 성공도 당신에게 달려올 것입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6:6~11). 할렐루야!
게으름은 악이요
인생의 독소다
핑계 대지 말고
방법을 찾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