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두리라
아내는 “나 같은 여자와 살아 줘 고마워.”라며 울먹이는 것이었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렸기에 기쁨으로 아내의 구원이라는 단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저는 13년 동안 밤무대에서 밴드마스터로서 나름대로 명성도 얻고 세상의 낙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에서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닌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비록 밤무대에서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으라며 전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저의 주가는 점점 올라가 일본을 넘나들며 밤무대 반주를 계속했고, 93년 당시 일반 직장인은 상상할 수 없는 5백만 원 이상의 돈을 매달 벌어들였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 돈은 저의 저금 통장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술과 빠찡꼬의 달콤한 유혹이 담배연기를 맡아가며 번 돈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저에게 계속 전도하던 선배는 전임사역자가 되겠다며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만날 때면 이초석 목사님을 자랑하며 ‘성령의 역사’라는 비디오 테이프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별생각없이 흘려듣던 그 전도의 말들이 어느 날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이 밤무대 생활을 하고 이렇게 술과 빠찡꼬에 절어 사는 내 인생의 끝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심각한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96년 7월, 처음으로 교회에 나와 성령을 받았습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정말 이 찬송가의 심정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97년 1월, 저는 모든 세상일을 접었습니다. 온전히 목사님을 도우며 제가 가진 달란트를 쓰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러자 초등학교 동창인 아내는 그때부터 저를 닦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빈정대고, 비웃고, 그러다 서로 다투고, 정말 힘든 1년의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 따라 다닌다고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며 거의 매일 술을 먹기 일쑤였고, 심지어 운영하고 있던 미장원의 기구들을 뒤집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리라 다짐을 하며 아내의 구원을 위해 울며 기도했습니다.
아내의 핍박이 심할 때면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억지로라도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뿌렸습니다. ‘혹 네가 그 영혼을 구원할지 어찌 아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눈물 뿌리며 기도한 지 꼭 1년 만에 아내는 기도원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성령을 받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내는 눈물로 범벅이 된 모습으로 나를 보자마자 “나 같은 여자와 살아 줘 고마워.”라며 울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감격의 순간을 지금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렸기에 기쁨으로 아내의 구원이라는 단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저의 아내는 최고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음성이 최상의 상태로 성도님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교회의 모든 앰프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 지방에 집회가 있을 때면 반주로 목사님을 돕고 있습니다. 저희가 금요철야, 주일예배를 드리는 곳이 체육관 시설이기에 음향이 최상의 상태로 전달되기엔 힘든 여건입니다. 하지만 ‘어떻하면 조금이라도 목사님의 설교가 구석구석 잘 들리게 할 수 있을까.’ 늘 기도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저는 더 좋은 음향시스템을 갖추면 좋아지리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비록 적은 물질이지만 내가 먼저 심으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목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신속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예배 시간에 광고해 주셨고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기 전에 새 앰프 시스템을 갖추게 됐습니다. ‘여호와 이레’로 준비하시는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않은 외국에서까지 물질로 동참케 하신 것입니다.
어두운 밤무대에서 쾌락과 여흥을 위해 음악을 하던 죄 많은 인생을 회복시켜 목사님을 도와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니 어떤 말로 감사를 표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주신 이 달란트를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드리게 해달라고 저희 부부는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