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小貪大失)
소탐대실(小貪大失)
원숭이를 잡는 법, 입구가 좁은 호리병 모양의 항아리 안에 바나나를 넣어두면 원숭이는 빈손을 집어넣어 항아리 속 바나나를 움켜쥔다. 이때 사람이 원숭이를 잡으러 나오면 원숭이는 바나나를 움켜쥔 손이 항아리에 끼인 채로 잡혀간다는 것이다. 바나나를 먹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순간에도 그 바나나를 놓지 못하는 원숭이의 모습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성경 말씀(약1:15)을 떠오르게 한다.
대학부는 매해 1월이면 조직을 개편하고 졸업 파송을 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청년들의 새로운 한 해 동안의 계획이나 진로 등을 상담하다 보면 가치관과 우선순위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2~30대 청년 시절에 얼마나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많겠는가! 그러다 보니 한정된 시간을 잘 배분해서 신앙과 삶, 삶과 신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청년들에게는 중요한 과제다. 물론 각자의 믿음의 분량과 상황에 맞게 상담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안타까운 순간도 있다. 어떤 원대한 꿈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아닌, 단지 눈앞의 이익이나 쾌락이나 여유를 위해 신앙의 끈을 느슨하게 하거나 아예 놓으려고 하는 청년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담당 교역자로서 왜 그들의 생각을 돌이키게 하거나 말리지 않느냐고? 사실 대개 그럴 때는 이미 머릿속이 자신의 생각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어서, 교역자의 말을 듣고 순종할 틈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바쁘고 상황과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자신이 섬길 영혼들을 위해서 물질과 시간을 들여 헌신을 자원하는 청년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단지 시급 좀 더 주고 편한 아르바이트 때문에, 서로 좋아 죽는 이성친구 때문에, 학교와 직장 내 자신의 평판 때문에, 여행이나 레저 스포츠 등 세상에서 누리고 싶은 것들 때문에 신앙에 타협하는 청년들도 많다. 그들은 아무리 말씀으로 교훈하고 타일러도 자신이 손에 움켜쥔 바나나를 놓지 않는다.
온 천하를 얻더라도 자기 목숨보다, 영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마16:26). 눈앞의 바나나 때문에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말자.
신혁주 전도사
사랑도 능력이다
최근 나는 말씀을 함께 묵상할 글을 쓰는 작업을 했다. 이번 주제는 요한복음이다. 요한복음 속 예수님은 당신을 증명하는 일을 반복하셨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오직 당신을 통해야만 영생에 이를 수 있음을 끊임없이 선포하시며, 일곱 번이나 표적을 보이셨지만 사람들, 심지어 예수님의 친형제들도 늘 오해와 불신으로 배척했다. 그럼에도 영생의 길을 열어주시려 스스로 죽음까지 결정하신 이유는 오직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었던 첫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셨지만, 또 다시 사랑하셨다.
교회에서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 사랑’이기에 처음 사역을 시작하면서 무작정 ‘내 목숨처럼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었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이 있듯이 내 마음도 하나님의 은혜로 기쁘게 가다가도 감정을 소화 시키느라 애쓰는 때도 있다. 그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사랑도 능력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감정의 일이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은 능력의 일이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사랑에도 적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예수님도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능력으로 십자가 사랑을 완성하셨듯, 나의 사역도 사랑의 능력을 받으면 넉넉하게 해낼 수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이제는 어떤 능력보다 사랑의 능력을 받는 종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께 드리는 보답이자 십자가 사랑의 전달자로 나를 부르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김혜리 교육전도사
그리고 그다음에는!
아인슈타인 박사가 뉴욕에서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는데 잠시 후 승무원이 승객의 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표를 호주머니에서 찾고 찾았지만 표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승무원이 “아인슈타인 박사님, 저는 당신을 잘 압니다. 속이고 타실 분이 아니니 제가 받은 줄 알고 그냥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승무원이 검표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다 아인슈타인을 보니 아직까지 표를 찾고 있었다. 검표원이 “표를 찾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하자 아인슈타인이 “그게 아닙니다. 표에 내가 내릴 역이 기록되어 있는데 내가 어느 역에서 내리는지 알 수가 없어 표를 찾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기차를 타기는 탔는데 어느 역에 내리는지 알지 못하면 큰일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며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방황하면 우리 인생은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랐다고 등정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무사히 하산해야 성공이라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이다, 장관이다, 국회의원이다, 회장이다, 판검사네, 의사네, 목사요, 장로요, 뭐 이런 것이 성공이 아니다.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지 못하면 실종일 뿐이다, 실종! 곧 무엇이 되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고 내려오는 것이 성공이란 말이다.
바울 사도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빌3:14)고 했다. 삶의 푯대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가? 생활 전체를 이끌어가는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 그냥 사는 것인가? 먹고 자고 의미 없이 살다 죽는 것인가?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나의 삶에 목표를 두고 뛰어야 나중에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았다 할 것이다.
로마대학 정문에 하나의 비석이 있는데 거기엔 매우 의미심장한 비문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리고 그다음에는”(And then after then. And then after then. And then after then.), 부자가 되고 그다음에는? 의사, 판검사, 소위 성공자가 되고 그다음에는…. 영혼의 때를 푯대로 세우는 자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것이다.
임택함 목사
미국에서 뒤늦게 대형 피자 체인점 사업에 뛰어든 기업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전국적인 체인망을 구축하고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였지만 이미 먼저 시작한 두 업체가 미국 전역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한 업체는 다양한 메뉴와 토핑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방법으로 승부를 걸었고, 또 다른 업체는 주문한 지 30분 만에 피자가 도착하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광고하며 빠른 배송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후발 업체로서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오랜 시간 연구 끝에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소스를 더 많이 넣어 피자 본연의 맛을 극대화하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메뉴도 없고, 빠른 배송을 해주지 않았는데도 순식간에 먼저 시작한 두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회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맛’이라는 본질에 있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이며, 복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봉사단체도 아니고, 사교를 위한 단체도 아닙니다. 교회 본연의 목적은 죄로 인하여 죽어있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죽은 뒤에 영생복락의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오면 인생의 모든 수고의 짐까지 벗겨주시고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상화평 목사
a26881009@gmail.com
에벤에셀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요? 지금까지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참 좋은 아버지셨습니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두려움이 많은 저를 하나님은 늘 따듯하게 안아주셨습니다. 무서운 음성 대신 자상하고 인자한 말로 위로해주셨습니다. 자녀가 아프고 힘들면 부모가 더 슬퍼하듯, 힘들고 외로울 땐 하나님이 더 안타까워하시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고통스러워할 때는 ‘자유하라’는 음성으로 묶인 것을 풀어주셨습니다.
설령 잘못을 하더라도 책망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지도 않으셨습니다. 참된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훈계하며 바로 잡아줍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말씀으로 끊임없이 교훈하셨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늘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고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한때는 하나님을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벌을 주고 혼내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감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을 깨닫게 하려고 나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자녀가 병과 가난과 저주로 고통받으며 살길 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제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진실로 원하셨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요일4:18).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 안에서 저는 참된 기쁨과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내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도 벗어났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내 영혼을 버리지 않는다(행2:27)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단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 것은 정말 큰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어디에 있든지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말과 기도를 듣고 계신 하나님이 장래에는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전소희
물 위를 걷는 베드로
아침 QT 때 마태복음 14장(물 위를 걷는 베드로)을 묵상했습니다. 말씀 중 ‘제자들과 베드로’ 대신 제 이름을 넣어서 읽었는데, 예수님과 대화하는 듯한 생생함과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 ____이)를 배에 태워 보내시고, 홀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 ____이)가 탄 배는 새벽쯤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뚫고 물 위를 걸어서 ( ____이)에게 오셨습니다.
( ____이는)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며,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자, ( ____이)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 ____이)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걸었지만, 곧바로 강한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순간 ( ____이)는 물에 빠지기 시작했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 ____이)를 붙잡아 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치고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걸어가지만, 삶의 어려움과 두려움이 닥치면 쉽게 흔들리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풍랑의 어려움에서는 물 위를 걸어서 우리를 구하러 달려오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때 손을 내밀어 도와주십니다. 2025년은 기도를 통해 전대미문의 축복과 기적을 체험하는 한 해가 되리라 다짐해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송명국 집사
songmkook@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