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치 않으려면 계시를 무시하지 말라(욥33:14~17)
저는 2024년 크리스마스 예배 때 ‘꿈의 계시를 무시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날에 다소 생뚱맞은 메시지를 전했을까요? 제가 ‘무슨 말씀을 전할까?’ 깊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왜요?” 하고 여쭙는데, 성령이 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죄에서, 병에서, 가난에서 구하시려고 말입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꿈으로, 이상으로 계시를 주셔서 지키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는 바람에 다시 죄와 병과 가난과 저주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니 답답하셔서 저에게
‘제발 좀 전해라~’고 하신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자식들 잘되라고, ‘이런 건 하지 마라’, ‘이렇게 해라’, ‘그쪽으로 가지 마라’고 말하지요? 사랑하니까, 내 자식이니까요. 그런데 자식들이 그걸 잔소리로 여기고 안 듣습니다. ‘시대가 달라졌다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다나’ 하면서 안 듣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새끼니까 잘못될까 봐, 잘못 갈까 봐, 잘못 행동할까 봐 말씀으로, 주의 종을 통해, 혹은 꿈으로, 이상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인도하시고, 경고하시는 겁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욥33:15~18).
그런데 안 듣습니다. ‘개꿈이야~, 꿈은 반대래~~’, 이러면서 지지리도 안 듣습니다. 결국 혼쭐이 나고야 회개하고 돌아오는 경우를 허다하게 봅니다. 맞고라도 돌아오면 다행이지요. 그러나 현명한 자는 맞기 전에 깨닫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시73:20).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믿음의 선친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꿈으로, 혹은 이상 중에, 때론 선지자를 통해 듣고 받은 계시를 심비에 새기고 그대로 행한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의로운 사람 요셉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은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를 왜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는가 하면, 다른 사람 같으면 자기 약혼녀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난리를 쳤을 겁니다. 개방된 현대에도 조금 사귀기만 하다가 헤어지자 했다고 살인도 불사하는데, 그 당시에 조용히 관계를 끊어내려던 요셉의 행위는 정말 의롭다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꿈으로 말씀하십니다.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 이는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며 그는 구원자임이라”(마1:20~21). 이 꿈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인 요셉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순종했습니다. 그는 마리아를 데려와 해산할 때까지 동침치 않았습니다. 또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이 요셉의 꿈에 나타나 애굽으로 피하라고 말씀하셨고, 헤롯이 죽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라고 꿈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만나고 헤롯에게 가지 않은 것도 꿈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마2:12). 만일 요셉이 그 꿈을 무시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동방박사가 무시하고 헤롯에게 가서 예수가 거한 곳을 알려줬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차질을 빚지는 않았을 터이나 그들은 멸망의 길로 갔을 것입니다.
창세기 20장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취하려고 할 때, 꿈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경고하신 내용입니다. “그는 남의 아내이니 손대지 말라 더욱이 선지자의 아내이니 손대지 말라. 그러면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것이다.” 꿈을 깬 아비멜렉은 번민하다가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고, 많은 예물도 줍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습니다. 만일 아비멜렉이 사라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꿈을 무시했다면 어떤 꼴이 났을까요? 그는 물론 그의 가족과 나라에 줄초상이 났을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우리 기도원의 초대원장 송태찬 장로님도 6·25가 터지기 바로 전에 하나님이 꿈에 남쪽으로 내려가라고 하셔서 이유도 모른 채 부랴부랴 짐을 싸서 남쪽으로 내려왔더니 바로 전쟁이 터졌다고 말했습니다. 꿈을 무시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그리고 꿈에 ‘공궤(供饋)’라고 말씀하셨다는데, 훗날 기도원에서 많은 성도들을 대접하는 직책을 맡아 섬기는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한 자들도 나옵니다. 다니엘서 4장에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다니엘이 해몽해줍니다. 땅의 중앙에 고가 높은 나무 한 그루가 있어 그 아래 들짐승과 새들이 깃들었는데, 한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고 열매를 헤쳐서 들짐승과 새들이 떠나게 하고 간신히 그루터기만 남겨두라고 한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이 계시를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곱 해 동안이나 동물처럼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한 대가입니다. 빌라도도 아내의 꿈을 무시해서 영원토록 저주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마27:19)?
제가 40년 동안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수치를 당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때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 일기장에 그대로 다 적혀 있는데, 처음 예수를 알고 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던 중, 목사님의 핍박이 왔을 때 꿈에 골프를 치는데 공이 잘 안 맞자 신발을 바꿔 신으라고 하신 일, 어느 목사님과 잠을 자는데 바람이 불어 얼마나 춥던지 그 목사를 좇지 않고, 대신 같이 잠을 잘 때 포근했던 목사님의 노선을 좇았던 일, 고속터미널 옆에 본부 건물을 좋은 조건으로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왔었으나 꿈에 당시 건물주가 감옥에서 나오고 제가 대신 들어가는 꿈을 꿔서 포기했던 일, 베트남 집회를 가려다가 주최 측이 정부요원과 거래하는 것을 꿈에 보고 취소한 일, 올림픽공원에 들어간 일, 좋은 집이 있어 이사하려고 했는데 내가 죽는 꿈을 측근들이 꾸는 바람에 계약을 취소한 일 등, 그때마다 하나님이 계시하셨기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때에도 하나님은 여지없이 제게 경고하셨습니다. ‘남이 싸놓은 똥에 주저앉지 마라.’ 교회 문을 닫자 몇몇 성도들이 ‘왜 믿음이 없냐?’며 따지는 통에 제가 마음에 고통을 받았을 때 주신 꿈입니다. 이 꿈을 꾸고 저는 지체하지 않고 온라인예배로 대체했습니다. 그러자 바로 신천지 사건이 터졌습니다. 만일 이 꿈을 무시했더라면 우리도 뉴스에 오르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가장 어리석은 자가 누구인 줄 압니까? 경고를 무시하는 자입니다.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당신을 무시합니다.
여러분, 꿈은 바로 이뤄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요셉에게 볏단이 자기를 향하여 절하는 꿈과 해와 달이 자기에서 절하는 꿈을 하나님의 계시로 주셨지만, 바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흘러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의 꿈도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했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성도 중에 자동차 사고 나는 것을 꿈으로 보이셨건만 이것을 무시하다 먼저 천국 간 사람이 있고, 동업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다가 폭삭 망한 뒤 뒤늦게 깨달은 자도 있으며, 배경과 학벌이 좋다고 꿈을 무시하고 결혼했다가 몇 년 만에 친정행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답을 보고도 오답을 내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제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의 계시를 무시하다가 멸망하는 자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올해 우리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축복을 받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계시에 귀를 기울입시다. 할렐루야!
계시를 무시하는 자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
매 맞기 전에
깨닫는 것이 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