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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축복

1284호 · 2024-12-15
영생에 이르는 길

만남의 축복

얼마 전 우리나라는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태를 직면했습니다. 대통령이 갑작스런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자 이내 국회의사당에 헬기와 차량을 통해 무장한 군인들이 투입되었고, 대기하던 시민들과 국회 보좌관들은 사력을 다해 군인들의 진입을 막아내는 일촉즉발의 대치상태가 벌어졌습니다. 말로만 듣고 영화로만 보던 역사의 한 장면이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재연되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과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총회장 목사님의 메시지가 왔습니다. 멀리 멕시코에 계셨지만 소식을 듣고 성도들이 걱정 근심하고 두려워할까 봐 지체 없이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의 평화와 앞날을 위해 기도했으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합심으로 기도하자.’는 목사님의 말씀을 받고 나니 무겁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평안해졌습니다.

정말 몇 시간 후 계엄령은 해제되었고, 군인들은 철수하며 사태는 일단 일단락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과거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사태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도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었던 성도들은 안심하고 걱정 없이 소고기를 먹었으며, 다미선교회가 특정한 날 예수님의 재림을 주장하여 한국사회와 기독교계를 미혹하고 어지럽혔을 때도 목사님은 성도들이 미혹당하지 않도록 올바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또 코로나 시국에도 성도들이 백신을 안심하고 접종할 수 있도록 말씀해주셨습니다.

큰일이 있을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양들을 바른길로 인도해주시는 목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무엘이 지도자로 있는 동안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했고,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 모세 덕분에 광야에서도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으며,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초석 목사님을 만나서 주의 길을 가는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큰 축복과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만남의 축복이 있을까요?

할렐루야!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

최성경 전도사

생명의 말씀

부림절의 은혜

연말 정국이 매우 혼란스럽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복잡해진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제목이 생겼다. 거룩한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마다 자기 정치 편향적인 기도를 드리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역대하 7장 14절의 회개로부터 시작하는 구국의 기도가 필요하다. ‘내 백성이 먼저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 얼굴을 찾으면 하늘에서 듣고 죄를 사하시고 땅을 고쳐주신다’ 약속하신 말씀 말이다.

모든 공의의 기준이시며 심판관이신 하나님께 회개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길 소망하며 기도해야 할 일이다. 지난 10월 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우리 교단은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그날의 메시지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최고선’이다.

성경에는 앗수르를 비롯한 제국들을 진노의 막대기로 활용하실 때 선하신 하나님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나님의 선은 인간의 바람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리고는, 영원할 것 같아 보이던 세속의 제국들이 심판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 밖으로 벗어나는 역사는 없다(요15:5). 하늘에서 이뤄진 그분의 선하신 의지와 뜻이 이 땅에서도 구현되기 마련이다. 다만, 시간차만 존재할 뿐이다.

에스더서를 읽는 매력이 바로 그것이리라. 긴장감 넘치는 사건들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몰살당할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부림절이라는 해방의 절기가 탄생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개입하셨고, 절대적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이라는 진짜 주인이 존재하시며 일을 운행하신다(히11:3). 그분의 의지가 인간의 자유의지보다 위에 있으며 더 중요하다. 인간의 자유로운 악행도 역사 가운데서 막지 않으시지만, 그것은 승낙이 아니라 공의의 심판을 위해 안 막으시는 것일 뿐이다.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라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고백해야 한다. 한반도 땅에도 부림절의 은혜가 임하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송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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