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은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시1:1~6)
장성에 있는 우리 기도원에 가면 성전 외벽에 귀 모양이 걸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밑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셨습니까? ‘귀명창이 명창이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잘 들어야 명창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찌 소리꾼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겠습니까? 주님은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내라”(사43:8),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23)고 말씀하십니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겁니다. 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가 있고, 귀가 있어도 귀를 닫고 아예 안 듣는 자가 있다는 겁니다.
경청(傾聽), ‘남의 말을 귀 기울여서 듣는다’는 뜻인데, 이것이 지혜입니다. 내가 듣기 좋은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듣기에 껄끄러운 말도, 듣기 싫은 말도 경청할 줄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6)라고 하셨고, 성경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12:1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집불통(固執不通)인 사람이 있습니다. 왜 불통인 줄 압니까? 막혀서 그런 겁니다. 귀가 막히면 생각도 막히기 때문에 세상과도, 사람과도 통할 수 없는 겁니다. 동맥경화에 걸린 거지요. 그런 자의 결국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대로입니다.
사울이 그런 사람입니다. 사울은 다윗으로부터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는 도엑으로부터 아히멜렉이 도망 중인 다윗에게 먹을 것도 주고 골리앗의 칼도 주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를 불러 추궁합니다. 그 자리에서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삼상22:14).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울의 귀는 닫힌 상태라 안 들렸습니다. ‘소귀에 경(經) 읽기’였던 거죠. 그래서 아히멜렉은 물론 그의 가족과 제사장들을 다 죽이고 맙니다. 그런 사울의 결국은 비참한 죽음이었지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도 그랬습니다. 솔로몬의 대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 앞에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와 솔로몬 시대의 건축으로 인한 고역과 짐이 힘들었으니 이제는 좀 가볍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생각해보겠노라고 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 때부터 같이한 연로한 신하들에게도 묻고, 또 자기와 함께 자라난 젊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기’(잠15:22) 때문입니다. 연로한 신하들은 르호보암에게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왕상12:7)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때보다 더 무겁게 하라’(왕상12:14)는 젊은 사람들의 말대로 했습니다. 이로 인해 전에 여호와께서 아히야로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이 응하게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10지파는 르호보암의 통치를 거부하고 여로보암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아 나라가 두 동강 난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아이들이 좀 배웠다고 어른 말을 안 듣는 경향이 있는데, 그거 잘못된 겁니다. 부모가 못 배웠어도 그들이 살면서 체득한 경험은 교과서의 지식을 뛰어넘습니다. 그래서 전장(戰場)에서는 백전노장의 말을 들어야 하고, 사막에서는 늙은 낙타를 타라고 하는 겁니다. 부모의 말, 스승의 말, 목사의 말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유다 왕국의 10대 왕, 웃시야를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므로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부강해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점점 교만해졌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앞잡이라더니(잠18:12), 급기야 그는 제사장의 권한까지 침범해서 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을 하려 했습니다(대하26:16). 이에 아사랴를 비롯한 제사장 80명이 왕을 막았습니다. 아사랴 제사장이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대하26:18)라고 말했으나 그는 이미 도가 넘은 사람이었습니다. 물이 팔팔 끓어 넘칠 때 손대면 안 됩니다. 성경도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잠9:8)고 했습니다. 웃시야는 아사랴의 말에 되레 노를 발하며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했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그 자리에서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그는 여생을 별궁에서 외롭게 살다 죽었습니다(대하26).
아합도 볼까요? 아람과 이스라엘이 길르앗라못을 놓고 싸움을 하려고 할 때, 미가야는 아합에게 전쟁에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전쟁에 나갑니다. 그리고 미가야의 말대로 거기서 죽습니다. 미가야의 말을 듣지 않은 결과입니다(왕상22).
당대에 가장 큰 나라인 바벨론 제국을 건설한 느부갓네살 왕. 하나님은 꿈을 통해 그의 교만함을 나무라고,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통해 해몽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말에 콧방귀 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느부갓네살은 사람에게 쫓겨나서 7년 동안 들짐승처럼 살았습니다(단4).
세례 요한의 말을 무시한 헤롯, 예수님의 충고를 무시한 가룟 유다…. 귀가 막힌 자들, 고집으로 불통인 자들의 마지막은 이처럼 다 비참했습니다. 귀가 막히면 도적이 들어올 때 개가 짖어대도 못 듣습니다.
그러나 귀명창인 자들은 정말 명창이 되었습니다. 잘 되었다는 말입니다. 모세의 장인은 모세에게 일을 실용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말해줬습니다. 십부장과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장인의 말을 경청하고 합당하게 여겨 그대로 실행했습니다(출18:24). 그래서 명실공히 훌륭한 행정 및 사법조직을 갖춘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출18:13~24).
창세기 41장에 나오는 바로도 요셉의 말을 들어 애굽을 최강국, 최부국으로 세웠습니다. 바로는 노예 신분으로 감옥에 있던 요셉의 해몽도 듣고, 해법도 들어 풍년 시절에 잉여분을 저장하여 닥쳐올 사태에 대비토록 한 정말 지혜로운 자입니다.
‘요단강에 빠져 죽으라 한 것도 아니고 일곱 번만 들어갔다 나오면 낫는다는데 그것도 못하십니까?’(왕하5:13)라는 종의 말을 들은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이 고침을 받아 어린아이 살결처럼 깨끗해졌고, 다윗도 나단 선지자의 충고에 회개하여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아무 말이나 다 들을 건 아닙니다. 아첨도 있거든요. 성경에는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잠29:5)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첨은 곰의 쓸개를 빼내려고 입에 달달한 사탕을 넣어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담에게 하와가, 솔로몬에게 그의 첩들이, 삼손에게 들릴라가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자고로 달콤한 것이 몸에는 해롭고, 입에 쓴 것이 몸에는 이롭습니다. 쓴 것을 삼킬 때 몸이 좋아지듯, 귀에 거슬리는 말이 내 삶을 옳고 바르게 이끄는 것입니다.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잠28:23).
시편 1편은 복 있는 의인의 형통함과 악인의 멸망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복 있는 사람일까요? 바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시1:2)입니다. 즉 하나님께로 귀와 눈이 열린 자가 복 있는 자이고, 그런 자는 만사형통의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가 닫힌 엘리 제사장이 되지 말고, 하나님 음성을 듣는 어린 솔로몬이 되십시오. 귀가 있으나 귀머거리가 되지 말고, 귀를 열어 듣는 지혜로운 자가 되십시오. 자고로 의인(義人)도, 대인(大人)은 귀가 큰 자임을 아십시오.
할렐루야!
귀명창이 명창이다
귀를 크게 열어라
칭찬 속의 아첨을
조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