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280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자녀

1280호 · 2024-11-17
낮은 울타리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자녀

최근 제가 다치는 일이 잦았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정형외과를 다녀오고, 바로 그다음 날 의자 모서리에 코를 박아 또 정형외과를 다녀왔습니다. 그다음 주에는 또 다쳤던 발의 복숭아뼈가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 복숭아뼈에도 멍이 들었고, 계단을 내려가다가도 발을 헛디뎌 큰일 날 뻔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부주의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기도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 시간을 늘리고 동역자들에게도 중보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며칠 뒤 집에서 또 발을 다쳤을 때는 ‘아, 이거 마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 발목을 누가 잡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제 발목을 제 두 손으로 감싸고 소리 내어 외쳤습니다. “지금 내 손은 예수님 손이니 이 손으로 내 발목을 만질 때 귀신이 떠나갈지어다!”

총회장 목사님께 지금까지 배운 대로 예수 이름으로 담대하게 귀신에게 명령했습니다. 귀신을 쫓는 순간에 제가 예수님의 권세를 가진 자녀라는 사실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제 발목을 감싼 저의 손이 정말 예수님의 손처럼 느껴졌습니다. 귀신을 쫓고 난 후 다치지 않는 것은 물론 원래 다쳤던 곳까지도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특히나 올여름, 발톱의 뿌리 부분이 통째로 들려 새 발톱이 좀 자라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무색하게 제가 귀신을 쫓고, 바로 그다음 날 들려서 덜렁거리던 발톱이 깨끗하게 빠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난 발톱도 잘 자라있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고 신앙생활도 오래 했는데 이제야 총회장 목사님께서 목이 터져라 외치시던 ‘하나님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는 자녀’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경험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귀신을 쫓는 권세가 있었는데도, 그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내 몸을 이리저리 휘두르게 내버려뒀던 저를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물속에서 물을 찾는 물고기가 되지 않고, 이미 하나님께서 넘치게 주신 하나님의 권세를 마음껏 사용하며 살아가는 예수중심교회 성도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장수정

sjjang50@gmail.com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친구야, 교회 가자

어릴 적 총동원 주일예배가 있는 날이면 친한 친구들을 한 명씩 교회에 초대했지만 대부분 그날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딱 한 명, 중학교 1학년 때 전도한 친구 J만이 교회를 꾸준히 다녔고 기도원 산상집회에도 가곤 했죠. 그러다 친구가 저와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안양에서 수원으로 이사 가면서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죠.

총동원 예배가 있을 때마다 저는 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전도를 못했으니까요. 직장인이 되자 더는 무교인 친구들에게 우리 교회에 오라고 권할 수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쌓인 피로를 주말에 푸는 그들에게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한 시간 넘게 버스 타고 교회 가서 두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예배드리자고 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러다 서른 살이 되던 해, 크게 결심하고 기도한 후 중학교 친구 J에게 교회 가자고 오랜만에 연락했습니다. 거절하면 어쩌나 마음 졸였는데 친구는 단번에 알겠다고 했어요. 친구가 사는 동네에 지교회가 있어 제가 그쪽으로 가서 함께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4년 동안요. 그 후 제가 하와이에 잠시 나가 살 때도 친구 혼자서 교회를 잘 다녔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서서히 예배를 빠지더니 아예 가지 않게 되었죠.

그로부터 6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올여름 기도원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고,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요. 그렇게 기도하는데 친구 J가 떠올랐습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전도죠. 그런데 막상 친구에게 연락하려니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그녀는 주말에 잠을 몰아 자는데 일요일 오전에 일어나기 힘들다고 거절하면 어쩌나, 신혼인 데다 그녀의 남편은 예수님도 믿지 않는데 교회 가지 말라고 하면 어쩌나.

저는 어린아이처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친구가 거절하면 제 마음이 상할 거 같아요. 딱 세 번만 강권하겠습니다. 그래도 가기 싫다고 하면 저도 몰라요.” 그러고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이번 주일에 교회 가자고요. 친구가 사는 지역에 있는 지교회를 찾아 주소도 보냈습니다. 교회 가겠다는 답장이 곧바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집에서 지교회까지 왕복 4시간이 걸렸지만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습니다. 이번에는 꼭 친구가 교회에 정착해 뿌리가 단단한 신앙 생활하길 간절히 바랐죠. 다만 지교회에 또래가 없고 어르신만 계시다 보니 친구가 잘 정착할 수 있을지 내심 우려됐습니다.

어느덧 함께 교회 다닌 지 한 달이 되었을 즈음, 친구로부터 생각지 못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남편이 시어머니가 섬기는 교회를 같이 가자고 했답니다. 친구의 시어머니는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해오셨고 교회 위치도 친구네 신혼집과 가까웠어요. 친구 부부가 교회에 나오겠다는 말에 시어머니가 너무 설레어서 전날 잠까지 설치셨다고 하더군요. 지금 두 사람은 5주간 진행되는 새신자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잘 뿌리내려 굳건한 믿음의 자녀로 자라나길 저는 쉬지 않고 기도하려 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

신은혜

dopal0203@naver.com

동행하는 삶

나부터, 내 말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한 아이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한쪽 눈과 팔다리를 다친 국가 유공자였다. 친구들은 그런 아버지를 둔 아이에게 아버지가 병신이라며 놀리곤 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늘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지만 아이 마음의 고통은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는 지병이 있어 병원에 다녀야 했고, 집이 가난해서 의료복지카드로 병원을 다니며 전전긍긍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료 거부를 당한 적도 많았고, 자기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먼 길을 걸어서 병원에 다니곤 했다. 환경적인 이유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어느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하며 용돈도 주고 치료를 잘해주자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아픈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했고, 결국 그 아이는 자라서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바로 이국종 의사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다며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던 그 의사의 말이 이국종 의사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결국 그 말 한마디가 그를 유명한 의사로 만들어준 것이다.

어떤 말을 하느냐,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기에 말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우리 집에는 사춘기 아이와 유춘기(유치원 아이의 반항기) 아이가 살고 있다. 아들 두 명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말을 예쁘게 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주말이 되면 첫째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TV를 보고, 게임을 하다가 노트북으로 검색을 하고 정말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이 본다. 안경을 끼고 있는데도 시력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좋게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결국 화를 내며 이야기를 마친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첫째 아이에게 “너 시력은 포기했어?”라고 막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7살짜리 둘째 아이가 “엄마!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 아니에요?”라고 말해 다 같이 빵 터져서 웃었지만 마음은 뜨끔했다. 엄마인 내가 아이들에게 나쁜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아뿔싸! 그동안 나는 워낙 이렇게 커와서 그렇다며 단순하게 생각하고, 감정에 따라 말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얼마 전 글귀를 하나 보게 되었는데 내용인즉, ‘언어 습관은 재능이 아닌 노력이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건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덜 줄지, 행복을 줄지 고민하며 끊임없이 본인의 언어 습관을 고치는 태도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실이다.’였다. 남편에게, 아이에게, 부모님께 상처가 아닌 행복을 전하며 긍정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부끄러웠다.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며 말하기보다 감정대로 말했던 모습을 반성해본다. 가족이니까,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런 마음으로 쉽게 말했던 나를 돌아보며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말을 아름답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는 말씀이 있다. 예배 때 목사님 설교로 수없이 들었던 말씀이다. 다시금 이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하나님께서 들으시기에도,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듣기에도 예쁜 말, 긍정의 말을 하며 나부터, 내 말부터 변화하기를 시작해본다.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신앙에세이

가족사진

최근 유튜브에서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란 노래를 들었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에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 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아가씨의 꽃 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그리고 그 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있었다.

“엄마 죽었다는 소리 듣고 내려오는 버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일주일 전에 ‘아들, 뭐가 제일 먹고 싶냐?’는 엄마 말에 엄마가 싸준 김밥이 제일 먹고 싶다고 했는데, 장례 치르고 집에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냉장고 안에 수북이 쌓인 김밥 재료를 보고 냉장고 문을 잡고 얼마나 오열했는지 모릅니다. 다음 생에도 내 어머니로 와주세요. 엄마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 아니면 소중한 그 누군가가 베푼 대가를 바라지 않은 그 친절과 사랑, 그리고 희생은 하나님을 닮았다. 그 가수는 이 말을 하며 무대를 마친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 웃음꽃 피울 수 있는, 지금을 사실 수 있는 지혜가 늘 함께하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인생에도 소중한 이들에게, 또 그 인연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 늦지 않게 감사해야지. 지금을 감사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께 감사해야지. 그 감사가 기억 속에 희미해지지 않고, 날로 더욱 선명해지기를 기도하며.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박찬영 집사

cross35@hanmail.net

1280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붕우칼럼
교단소식
객원컬럼
성경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