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 않아!
여보게!
자네도 성경을 좀 알지? 형을 피해 외삼촌 집으로 간 야곱은 외삼촌과 계약을 맺었네. 7년을 일하고 원치 않은 레아와 결혼한 후의 일이지. 7년을 더 일해야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준다는 외삼촌의 조건을 수용한 거지. 사실 그동안 외삼촌 집의 일이 정말 많고 힘들었다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을 얻는 일만큼은 귀찮게 생각지 않고 선뜻 계약했네. 왜?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라헬을 아내로 얻을 생각을 하면 ‘이까짓 것’ 싶었지.
우리 어머니는 일곱 자녀를 두셨네. 연년생도 있고, 길어야 두어 살 터울이니 서로 안아달라고, 서로 젖 달라고 얼마나 보챘을까.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한 번도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으셨네. 왜? 사랑하는 내 자식이니까.
나를 아끼는 장로와 성도들이 말한다네. 설교로 진을 다 빼놓고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다 안수하고, 귀신 쫓아 주냐고. 그러나 나는 그것이 번거롭지 않고, 귀찮지도 않다네. 나이가 나이인지라 솔직히 힘은 좀 들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네. 왜? 내 사랑하는 성도들이니까.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으셨지. 하루종일 복음을 전하는 일로 피곤하셨지만 귀찮아 쉬신 적이 없고, 온갖 병든 자를 치료하시는 일에도 ‘나중에 와라. 지금은 힘들다.’ 하며 돌려보내신 일이 없네.
왜?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셨으니까.
여보게!
사도 바울이 내린 사랑의 정의라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나는 거기에 ‘사랑은 귀찮아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고 싶네.
남편이 저녁에 들어와 출출하다고 할 때 귀찮다면 그것은 사랑이 식은 거야. 비 오는 날 철야예배가 귀찮다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식은 거라네.
사랑하면 귀찮음이 없네. 더 못 줘서, 더 못 해줘서, 더 곁에 못 둬서 애가 탈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