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시작하여 감사로 승리하라
기도로 시작하여 감사로 승리하라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실 때 천사들이 돕고 십자가를 지실 능력을 얻으셨다는 말씀이 떠오르며, 기도하게 하셨다. 이후 곧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마음에 흔들림이 없이 평안했고, 오히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송이 마음속 깊이 울려 퍼지며 감사한 마음만 생겼다. 닥친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주님이 주신 은혜였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내 것으로 체득되지 않았기에 견디기 어려운 고난 중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실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한나와 히스기야가 통곡하며 기도할 때 들으심을 입어서 아들을 얻고 병 고침을 받은 것처럼, 애통하며 하나님 앞에 아뢰고 한계점을 뛰어넘는 기도를 할 때 영·혼·육의 묶임이 풀리고 구원의 감격과 일상의 감사가 살아나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 목사님께서는 당신을 구원해주시고 주의 종으로 사용해주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를 고백하시고, 우리에게 ‘기도하는 자가 감사하는 자다’라고 선포하신다. 정말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로 시작하여 감사와 찬송으로 끝내 승리한 것을 볼 수 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가 갖은 고난을 당했음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앞서 애굽으로 보내신 것’이라고 감사 고백한 것은 고난 가운데서도 날마다 기도로 하나님과 힘써 동행하며 승리했기 때문이다. 사울의 시기 질투를 받아 목숨을 위협받고, 나중에는 아들 압살롬에게까지 쫓기는 등 극심하게 마음고생했던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기도로 그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 되었기에 누릴 수 있었던 감사와 평안이었다. 왕 이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질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도 다니엘이 이전과 동일하게 하나님께 하루 세 번 감사 기도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평상시 기도로 하나님과 늘 교류, 소통하는 자로서 누릴 수 있었던 절대적인 평안과 감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복을 받기를 원한다. 아멘!
이국진 사모
하나님만 섬기라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은 믿는 자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지만, 세상으로 마음이 갈라진 성도들은 이것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행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데, 하나님도 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무엇과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과감히 치워버리자. 하나님만 섬기기 위하여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들을 과감히 배설물로 버린 사도 바울처럼(빌3:7~9).
부자 청년은 어려서부터 종교적 행위를 다 지켰노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예수는 한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하시며, 소유한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했지만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등지고 돌아섰다고 기록한다. 하나님만이 아닌 하나님도 섬김의 결과가 예수를 등지게 한 것이다(막10:19~22). 또한 천국 잔치를 배설하고 청하니 어떤 자들은 밭을 사서, 소를 사서, 장가들어서 못 가겠다고 거절했다. 그들 역시 하나님만이 아닌 하나님도 섬긴 자들임이 틀림없다
(눅14:16~24).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백성과 가족들에게 여호와만 섬길 것을 유언으로 권면했고(수24:14~15),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백성들에게 엘리야는 호통한다. 더 이상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하나님만 좇으라고(왕상18:21).
하나님만 섬길 것인가, 하나님도 섬길 것인가?
김상욱 목사
분명한 푯대를 세우자
어떤 소년이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농촌에 돌아왔다.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밭을 가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도와드릴 생각이 나서 소년은 소를 몰고 밭을 갈았다. 서투른 쟁기질로 한참 갈다 보니 아버지가 간 밭의 고랑은 똑바르나 자기가 간 고랑은 구불구불했다. 아버지는 이것을 보고, “처음 쟁기질할 때는 앞에 목표를 세우고 나가야 똑바로 갈 수가 있다.”고 하셨다. 소년은 그 말씀을 마땅히 여겨서 둑에 풀을 뜯고 있는 황소에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역시 고랑은 똑바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황소가 자꾸 움직이니까 너의 고랑도 구부러지는 것이니 움직이지 않은 것에 목표를 두어라.”고 하셨다. 그래서 소년은 앞에 우뚝 솟은 미루나무에 목표를 두고 밭을 갈았더니 비로소 똑바로 갈 수 있었다.
인간은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이나 목표를 갖지 못하면 허무주의자가 되고, 생의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 나의 생명과 정열을 다 바칠 수 있는 목표나 신념을 가질 때 우리는 생의 충실감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왜 그럴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 심령 속에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목표나 방향 없이 여행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이 귀중한 생명이 삶의 목표로서의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만날 때 그것은 더욱 빛나고 힘을 갖게 된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와 푯대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했다.
흔들리지 않는 목적을 정하라. 세상 것에 목표를 두면 세상 풍류에 따라 흔들리지만, 사도 바울처럼, 우리 목사님처럼 오직 변함없으신 하나님께 두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후4:18). 우리 한 번뿐인 인생, 분명한 푯대를 세우자.
임택함 목사
오늘 나는♪
공직에 있는 나는 많은 민원인을 상대한다. 공공서비스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어주는 건설적인 민원도 많지만, 자신들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폭언과 욕설로 공격하는 민원들도 빈번히 일어난다. 그런 날은 내가 무엇 하러 그들에게 성심껏 서비스를 제공했나 하는 깊은 분노에 빠진다.
직장동료가 업무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다. 나는 그때마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업무가 잘 마무리가 되고 직장동료가 상사에게 최종보고를 할 때 나에 대한 언급이 없으면 괜시리 섭섭함을 느끼고 동료직원이 미워질 때가 있다. 이런 일들로 마음에 원망이 가득할 때면, 이 찬양을 생각나게 하신다.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입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크리스천으로서 헌신과 희생을 이야기하고,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을 살겠다고 겉으로는 말하고 있지만, 나의 친절과 도움엔 보상심리가 깔려있었음을 발견한다. 죽을 이유 전혀 없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마저 희생하신 예수님처럼, 나에게도 이웃을 조건 없이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길 기도해본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전호정 집사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는 자
우리가 부르는 찬양들의 가사에는 나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되길 원한다는 고백들이 종종 나옵니다. 그 고백과 같이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마음, 생각, 뜻이 어떠한지 알아야 같은 마음, 생각, 뜻을 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대화입니다. 하나님과 하는 대화인 기도, 특히 둘만의 비밀대화인 방언 기도,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성경 말씀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결국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받은 것처럼요.
총회장 목사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아주 습관이 되신 분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항상 주님의 마음과 시선을 가지고 영혼과 상황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라는 걸 경험한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꼭두새벽에 어머니가 저를 깨우셨습니다. 간밤에 제가 주의 종 길을 가다가 죽는 꿈을 꿨는데, 그 꿈이 얼마나 생생했던지 당장이라도 제가 죽을 것 같아서 총회장 목사님께 상담을 받으러 가야겠다고 저를 깨우신 것입니다. 당시 목사님은 기도하시기 위해 기도원에 머물고 계셨고, 저는 아무런 연락을 드리지 못한 채 무작정 기도원으로 찾아갔습니다. 기도원 사택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니 목사님은 기도하러 들어가셨다며, 언제 나오실지 모른다는 답변만 받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문이 열리기에 들어가보니 목사님께서 저희를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지금 기도 중이었다. 근데 너희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기도해보니 만나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어 나온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마음을 헤아렸기에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까지 기도했고(출32:32), 사도 바울 역시 그 마음을 헤아렸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롬9:3). 예수님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헤아리고 같은 마음을 품었기에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지요(빌2:5).
이번 12차 평화통일 기도성회도 총회장 목사님을 비롯한 교단의 모든 교역자와 성도들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이 대한민국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품었기에 명작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목사님을 본받아 매사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들이 되어서 주님 앞에 명품 인생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호민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