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자
96세 되는 권사님을 만났다. 그분의 딸이 우리 어머니를 한번 만나 달라고 강청했고, 더 늦추다가는 후회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간을 냈다.
그 권사님은 이북이 고향이며, 거기서 결혼하여 두 딸을 두셨다. 그런데 당시 북한 쪽 상황이 여러모로 좋지 않아 남쪽으로 내려가는 게 낫다는 판단으로 일단 둘째 딸만 데리고 남하하셨다. 며칠 내로 다시 북으로 올라가 큰딸도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그만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당연히 그 후로 딸을 만날 수 없었다. 권사님은 그게 평생 한이 되었고, 딸 한 번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
연세가 있다 보니 권사님이 쇠약해지고 심적으로도 나약해질 때면 권사님과 함께 있는 딸은, “엄마, 3년만 기다려. 언니 볼 수 있어.”라고 희망 주사를 놓곤 한단다. 그러면 권사님은 정말 기력을 회복하고, 정신도 또렷해지신단다. 심지어 고관절이 부러진 일도 있었는데, 그 관절이 다 붙었단다. 대개 고령자가 고관절이 부러지면 두어 달 안에 돌아가는 게 통례라고들 하는데, 권사님은 관절이 다 붙어 지금은 거동이 가능하시다. 그 이유는 ‘3년 후면 딸을 본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꿈이 있는 자는 절대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은 자는 절대 낙망하지 않는다. 딸을 고치고자 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랬고, 억울함을 풀고자 했던 과부가 그랬다. 라헬과 결혼을 꿈꾼 야곱이 지치지 않았으며,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꿈꾼 엘리사가 좌절하지 않았다.
내 나이 70 중반이지만, 나에겐 아직 못 이룬 꿈이 있기에 나는 아직 주저앉지 않는다. 그 꿈이 나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갈렙이 85세에 40대 기력을 지녔던 것도
‘헤브론 땅’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는가. 나이가 많아서 삶의 의욕이 없다고? 나이 때문이 아니다. 꿈이 없기 때문이다. 딸을 보겠다는 꿈이 96세 권사님을 지탱하는데 뭔 소리를 하는가.
꿈을 가져라. 그것은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에 주유하는 것과 같다. 꿈이 너를 달리게 할 것이고, 네가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