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에 대처하는 자세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일을 끝내고 유치원으로 둘째 아이를 데리러 갔다. 반가운 마음으로 아이를 맞이하는데 뭔가 이상해보였다. 아이가 눈을 잘 뜨지 못하고 힘없이 날 바라보았다. 선생님께서는 블록을 가지고 놀다가 자기 손으로 눈을 친 것 같다고 하시면서 다른 일을 하시느라 잘 보지 못했는데 별로 울지는 않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아이가 눈이 아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우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서 소아안과가 있는 병원 응급실로 급히 향했다. 그날은 응급치료만 받고 다음 날 오전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교수님께서 오른쪽 눈 각막이 찢어졌다는 것이다. 사진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낫긴 하겠지만 흉터는 계속 남아 있을 거라는 말씀에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품에 안긴 아이를 보고 있으니 원망과 불평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날 유치원에 갔는데 소식을 들은 선생님이 날 보고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난 괜찮다고, 선생님도 많이 놀라셨겠다고 하며 오히려 위로해드렸다. 집에 돌아와서 잘했다 싶으면서도 속상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남편에게 “나 아무 말도 못하고 바보같이 그냥 왔어. 한마디라도 할 걸 그랬나봐.” 울먹이는 나에게 남편은 “아니야. 잘했어.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좋게 생각하자.”라며 다독여주었다. ‘그래, 내 속 시원하자고 남의 속 아프게 한들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나님, 이 일을 기억하여 주시고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기도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3주 후에 경과를 보러 가까운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각막이 찢어졌었다고요? 아닌 것 같은데? 그냥 긁힌 거겠죠. 깨끗합니다. 괜찮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할렐루야~!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을 만나겠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대처하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느5:1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9).
송지혜 집사
hello-english@naver.com
부모는 아이들의 최고의 스승
아이들은 낳은 사람을 닮지 않고 가르친 사람을 닮는다. 한국의 부모들은 가르치지 않고, 좋은 학교, 좋은 선생들을 찾아다닌다. 자연히 아이들은 그들을 닮게 되고, 부모를 닮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부모가 교육하기에 부모를 닮고 세대차도 없다.
그들은 1,900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다. 디아스포라로 온 세계에 떠돌아다니며 살던 유대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일제히 귀국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옷이 같았고, 예식이 같았고, 음식 문화가 같았다. 습관이 같았고, 세대차가 없었다. 부모가 교육했기 때문이다. 회당마다 토요일이면 아버지와 자녀들이 같이 와서 공부한다. 산아제한이 없어 자녀가 많다. 유대인들은 남들보다 잘되라고 가르치지 않고, 남과 다르게 되라고 가르친다.
현대 교육학의 아버지인 ‘죤 듀이’의 교육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부모들은 아이들 중심이 되었다. 그의 교육 제1조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라는 것. 그러면 그의 특성과 소질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와 외식을 한다. 부모가 물어본다. “뭐 먹고 싶니?” 그래서 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부모가 먹는다. 아이들이 청국장, 김치찌개를 찾지 않는다. 피자, 햄버거 등 이름도 모르는 미국 음식들을 찾는다. 세대차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음료수 대신 콜라, 사이다,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음식의 세대차가 일어난다. 그러나 유대인은 성경의 조상들이 한 대로 하게 한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한 대로 하게 한다. 유대인들의 조상 모세가 산 대로 살게 한다. 그들처럼 십일조를 드리게 한다. 그들처럼 안식일에 놀러가고 싶어도 안 된다. 그러니까 성경이 중심이 된다. 전통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들 삶의 기준이 성경이기에,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 흩어져 살아도 기준이 확실하다.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사사기 시대와 비슷하다 생각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교회는 목사님이, 가정은 부모님이 성경을 기준으로 본을 보이고 교육하여 행복한 가정, 나아가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되기를 소망한다.
임택함 목사
최초의 한글성경 번역자 존 로스 선교사
1870년 만주 지역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선교사들이 많이 활동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성서공회는 중국 선교를 위해 한문 성경을 번역 인쇄하여 보급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윌리엄슨 선교사는 토마스 선교사가 한문 성경을 조선으로 가져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후임 선교사로 1872년 8월에 존 로스와 맥켄타이어가 중국으로 온다. 윌리엄슨 선교사는 두 선교사와 조선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를 눈물로 나누게 된다. 조선 민족을 위해 순교의 피를 흘렸다는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로스와 맥켄타이어는 자신들도 조선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각오했다. 우리 민족을 가슴에 품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초석이 된다.”는 터툴리안의 말대로 하나님께서는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의 피를 헛되지 않게 하셨다. 또한 하노버교회(토마스선교사 파송교회)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조선으로 향하게 하셨던 것이다.
로스와 멕켄타이어가 조선을 찾았지만, 우리 민족은 여전히 외세에 문을 굳게 닫아놓고 열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오지는 못해도 조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바로 고려문이었다.
1874년 10월, 두 선교사는 만주 통화현 고려문에 도착한다. 그곳은 선양(당시 봉천) 아래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당시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이자 합법적인 교역 관문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많은 조선 상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두 선교사는 조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고려문을 들락거리는 사람들과 조금씩 얼굴을 익혀 가며 그네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주면 좋아하는지, 복음을 전할 기회만 애타게 기다렸다.
먼저 로스 선교사는 조선 선교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조선의 언어를 정확하게 배우는 것이라 판단했다. 로스 선교사는 한문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한글로 성경을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이응찬이라는 분을 만났다. 이응찬의 도움으로 로스 선교사의 어학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마침내 1877년에는 선교사를 위한 한글 입문 책 을 만들었다. 이 책이 영어로 된 최초의 한국어 회화책이다.
로스 선교사는 이응찬을 통해 조선 사람을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때 만난 백홍준, 김진기, 이성하는 성경을 번역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고려문에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로스 선교사가 성경을 번역할 수 있도록 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주셨다. 고려문에 홍삼을 팔러 갔던 서상륜, 서경조 형제가 그렇다.
어느 날 서상륜이 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선교사를 만나면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서상륜은 중국에 와 있던 의료선교사를 통해 병을 치료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로스 선교사는 두 형제의 도움으로 1879년까지 마태복음에서 로마서까지 번역했고, 1883년에는 사도행전까지 최종번역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는 서신서 번역을 본격화하여 1886년 가을, 드디어 10년 만에 신약전서의 번역이 끝났다.
이제 한글 성경을 번역했으니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널리 전하는 일만 남았다. 로스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아 번역 작업과 인쇄를 병행하여 1882년 최초 한글 성경인 가 나올 수 있었다. 처음엔 단편이나 할본 형태로만 발행되다가 남은 서신서를 추가하여 1887년 마침내 최초의 우리말 신약전서인 가 묶어져 나왔다.
그런데 이 를 국내로 가지고 오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국경에서 계속 성경책을 빼앗겼던 것이다. 급기야 복음서를 한 장 한 장 새끼줄에 꽈서 국내로 들여온다. 국내로 들여온 성경책은 책을 파는 권서인이란 사람들을 통해서 보급이 되고 이들을 통해 복음도 함께 전해졌다. 그러다 1910년 4월 2일 구약성서가 완역되어 1911년 신약성서와 함께 로 합본 간행되었다. 로스 선교사는 ‘한국인 학자가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한글성경이 만주에서 번역되었으니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놀랍다.
우리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치밀하게 사전 준비 작업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최초 ‘존 로스의 역’부터 시작된 우리 한글성경은 후에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책이다.
김종춘 목사
kkd9191@hanmail.net
벚꽃 엔딩
화창한 봄날 창밖을 보니 화려하게 만발한 벚꽃이 보였다. 햇살을 머금은 벚꽃 나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길을 걷다 마주친 아파트 골목 구석의 벚꽃 나무는 이상하게도 벚꽃이 듬성듬성 피려다 만 모습이었다. ‘아, 이곳은 아파트 건물 때문에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 저렇구나.’ 생각하던 찰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햇볕에 더 많이, 더 오래 노출된 나무일수록 벚꽃이 아름답게 만발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더 많이, 더 오래 다가간 인생일수록 영혼이 더욱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말이다. 반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수록 그 인생은 듬성듬성 피다 만 벚꽃 나무와 같게 되고, 그 영혼은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또, 오래갈 것만 같던 만발한 벚꽃이 몇 주가 지나자 다 떨어진 모습을 보고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찬란하고 화려한 인생의 젊은 순간도 이렇게 빨리 지나간다고. 당시에는 그 젊음과 청춘이 영원할 것 같지만, 야속하게 떨어져 버린 벚꽃처럼 우리 인생의 계절도 멈추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고. 그래도 괜찮다. 벚꽃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벚꽃이 지며 피어난 푸른 나뭇잎은 그 나름의 편안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화려한 봄날이 지나간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 더욱 나아가면, 각자 인생의 계절에 맞는 아름다움을 갖게 된다.
설령 지금 그 나뭇잎마저도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인생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서 있다면, 이 땅에서 우리의 계절이 끝나는 그 날, 하늘나라에서 우리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만발한 화려한 벚꽃과 같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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