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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6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1246호 · 2024-03-24
신앙논객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유럽 선진국 중 하나인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낙태(임신중절 수술을 통한 유산)할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을 헌법에 담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프랑스를 포함한 네덜란드, 독일, 캐나다 등 이미 법률로 낙태를 허용한 나라는 많지만, 헌법에까지 낙태할 자유를 명시한 경우는 프랑스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 헌법 개정안은 압도적인 차이로 가결되었고, 광장에 모인 수백 명의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에펠탑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나의 몸, 나의 선택’이라는 메시지가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띄워졌다. 로마 교황청이 표결 직전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있을 수 없다’는 반대 성명을 냈지만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 사실 이보다 몇 주 전에는 국민 대다수가 기독교 정교회 신자인 그리스에서 동성 결혼과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을 합법화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이쯤 되면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국민 대다수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리는 다수결에 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과 함께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 군대와 전투를 하게 됐을 때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여 명의 선지자들은 승리를 예언한 반면, 오직 미가야 선지자 한 사람만 그들이 패하여 목자 없는 양 같이 흩어질 것이라 예언한다. 다수의 듣기 좋은 말에 혹해 미가야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전장에 나간 아합왕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함께 있던 유대인 대다수도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강도 바라바는 풀어주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지 않았던가. 많은 사람들이 옳게 여긴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옳은 것은 아니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악하여져서 믿는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한다(딤후3:13~14). 남들도 다 그러니까, 해도 아무 일 없으니까, 많은 이들이 좋아하니까 그 일을 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이다. 우리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즉 하나님 제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교회 이름이 괜히 ‘예수중심교회’겠는가. 나 중심, 사람 중심이 아닌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 중심으로 살자.

신혁주 전도사

오늘의 메시지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시골의 조그만 병원에 행색이 초라한 여인이 찾아와 의사에게 애원한다. “선생님, 제 남편이 죽어가니 제발 살려주세요. 그런데 지금은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의사는 서둘러 왕진 가방을 챙겨 사람부터 살리자며 앞장선다. 초라한 집에 도착한 의사는 남편을 진찰하고는 큰 병이 아니니 안심하라 말하고, 병원으로 돌아와 작은 상자를 건네며 집에 가서 열어보시고, 안에 적힌 처방대로 하면 병이 나을 거라고 말해준다.

여인이 집에 돌아와서 상자를 열어보니 한 뭉치의 돈과 쪽지가 들어있었는데 쪽지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남편분은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이니 이 돈으로 음식을 사서 먹이세요.”

이 사람이 사랑의 인술을 펼친 영국의 유명한 의사 ‘올리버 골드 스미스’이다.

예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시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며 복음을 증거하셨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대속물로 주시며 사랑을 완성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희생을 통한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 안에서 모두가 섬김의 자세를 갖는다면, 역으로 생각할 때 모두가 섬김을 받는 자만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할 때 예수의 사랑과 평강은 넘치게 증거될 것이다.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은 희생을 통해서 나타났음을 기억하자.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영생에 이르는 길

죄로부터의 자유

얼마 전 목회자 세미나를 다녀오는 길에, 최근에 나온 차를 운전할 일이 있어 고속도로에서 주행보조장치를 이용해보았다. 차량의 속도를 정하면 엑셀을 밟지 않아도 일정 속도를 유지해주고, 달리는 도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차선을 인식하여 핸들을 조향하고, 앞차와의 간격이 좁아지면 스스로 차의 속도를 줄여 사고를 방지해주었다. 잠깐이지만 두손 두발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차는 안전하게 주행하였다. 이런 일련의 기능들을 사용하여 운전을 해보니 신경 쓸 일이 별로 없고, 편하여 장시간 운전을 해도 피곤함이 없었다. 가히 신세계였다. 말로만 듣던 최신 기능들을 경험한 후 완전한 자율주행의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사실 자율주행은 이미 구현되어 있었다. 마차가 나오던 시절부터 누군가는 자율주행의 혜택을 누렸으니 내가 운전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면 자율주행과 다름없지 않을까? 운전하는 사람을 따로 두어 운전하는 노동과 수고로움에서 자유를 얻고 누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도 이와 동일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원죄를 가지게 된다. 이 죄의 문제는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도 없고 아무도 대신해서 깨끗게 해줄 자가 없다. 오직 죄가 없으신 예수님만이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는 로마서 8장 2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죄의 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기에 이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의 짐을 맡기기만 하면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 차량의 운전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 있고 기술이 발전하면 모든 사람이 운전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날이 오겠지만, 죄는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다.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예수를 믿고 죄에서 자유함을 얻자. 훗날 주님이 부르실 때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자들이 되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3~24).

최성경 전도사

Good News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닻은 배를 정박할 때 줄에 갈고리 모양의 쇳덩이를 묶어서 내리는 것입니다. 닻이 없으면 배는 정처 없이 떠내려가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소망의 닻이 없는 자들은 세파에 떠밀려서 어디론가 떠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가짜 소망은 물거품과 같이 손에 쥐는 순간 사라지고 말지만, 영원불변하신 하나님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는 세상의 어떠한 환난의 바람과 파도가 몰려와도 요동치 않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은 언젠가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정함이 없는 돈도 때로는 우리를 기쁘게 하지만, 때로는 돈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사람도 항상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망은 끊어질 날이 다가오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는 굳건한 반석 위에 선 자들처럼 죽음의 순간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없는 자들은 어렴풋이나마 죽은 뒤에 자신들이 가야 할 곳을 알고 있는지 마지막 때가 가까워져 올수록 아무렇게나 막 살아갑니다. 그러나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참된 평안을 누리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상화평 목사

프롬인터넷

어느 권사님 이야기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은 다 유학 보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했다. 그러나 이렇게 의미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호스피스 병원에 간병인으로 봉사했다. 호스피스는 3개월 이내에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이 모여 있는 병동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 호스피스 사역 공부를 하고 시험에 합격해 간병인으로 섬겼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맨 먼저 만난 환자분은 80대 할아버지였다. 이분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음식을 입에 넣어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화장실에 모시고 가고, 온갖 궂은일을 성심성의껏 봉사했다.

어느 날 이 할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해 구원시켜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래서 순간순간 찬송도 불러드리고, 성경도 읽어드리며, 그분을 위해 기도했다. 그랬더니 이 할아버지께서 너무 기뻐서 할머니에게 뜻밖의 요청을 했다.

“간병인 아주머니, 나하고 결혼합시다.”

며칠 후면 죽을 영감이 결혼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권사님 대답이 더 재밌다.

“그래요. 까짓거, 결혼합시다. 한 번 과부나 두 번 과부나, 과부는 어차피 과부지~”

그래서 바로 변호사를 통해 혼인신고하고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간병인 권사님은 처음 품었던 초심의 사랑으로 열심히 섬겨주었다. 그리고는 얼마 후 이 할아버지가 임종하면서 권사님 손을 꼭 잡고 신앙고백을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당신 같은 천사를 보내주셔서 구원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권사님, 감사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당신처럼 마음씨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손을 꼭 잡고 행복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는 사이에 할아버지의 현금통장에 있는 29억이라는 돈이 권사님 앞으로 이체되었다. 할아버지는 이 돈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데, 따뜻한 사랑으로 자기를 간병하는 권사님에게 주고 싶어서 결혼하자고 했던 것이다. 석 달 만에 29억 원이 들어왔다. 그 권사님의 간증이 참 감동적이다.

“나는 연애도 해보고, 결혼도 해보고, 자식도 낳아봤지만 이 할아버지와 보낸 3개월이라는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잘못 살 뻔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골3:22~23).

신앙에세이

연습이 필요해

작년부터 수영을 배우고 있는 아내가 양팔로 수영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내게 말한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이렇게 해야 하는데 막상 물에 들어가면 잘되지 않아 이상하다고. 의아한 표정인 아내에게 나는 대답했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거라고.

뭐든 처음에는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몸에 익숙해지며 힘이 조금씩 덜 들어가게 되고, 나중에는 큰 힘이 들어가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습관적으로 움직인다. 사실 이 원리는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심지어는 결혼 생활에서도 그러했다.

나와 아내는 연애 때부터 마음이 잘 맞았고, 결혼한 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로를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종종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툴 때가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다퉈야 하나, 아내가 푸념 섞인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 깨달았다. 신혼 때 얼마나 서로 마음이 잘 맞는지는 출발선만 정해지는 것이고, 그 후부터는 계속 서로에게 맞추고 맞춰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천국에 갈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신혼의 달콤함이 지나가고 육아가 시작되면 마음의 여유가 많이 사라진다. 동시에 서로의 다름도 점점 더 발견하며 서로 맞춰가는 데 힘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계속해서 노력하다 보면 서로에게 맞추는 것이 익숙해진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기도도, 말씀 묵상도, 교제도 모두 익숙하지 않을 때는 힘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연습이 될수록 힘은 점점 덜 들어가고 은혜는 커진다. 삶 속 여러 문제들이 우리 인생에 찾아왔다 가고를 반복하지만, 하나님을 더욱더 붙들며 버티다 보면 어느덧 우리의 믿음은 단련되어 정금같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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