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이란 생각을 깨라
목사님은 지난 수요예배를 통하여 “불가능이란 생각을 깨라고 외치신 예수님을 따라가자, 인생은 내 생각이 결과를 만든다.”고 강조하셨다.
“성경을 딱 열면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2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 곧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땅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려라, 네가 주인이다. 다 준비해놓았으니 네가 맘대로 찾아서 쓰고 누려라.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 너는 나를 닮아서 불가능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Nothing is impossible! 너는 불가능이 없어!’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당당히 선포합니다. 베드로도, 나 이초석 목사도 그러면서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스스로 한계를 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의지를 초월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역사를 일으킨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은 남녀노소, 배웠다, 못 배웠다 따지지 않으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생각과 의지를 초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믿음대로 역사하셨습니다.
나는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이야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는 중풍병으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기쁜 소식이 들어갔습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불가능이 가능케 된다는, 중풍병에서 일어나 걷고 뛸 수 있다는 소식에 그는 친구들을 불러 나를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용신할 틈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친구들에게 지붕을 뚫어서라도 나를 예수님 앞에 내려줄 것을 강청합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그는 좌절, 낙담, 포기한 것이 아니라 생각의 틀을 깨고 생각의 속도를 높여 상상할 수 없는 길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죄를 사하시며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명하셨고, 죄사함에 대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논쟁을 뒤로 하고 일어나 걷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비아냥거릴 때 나는 당당히 말합니다.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이란 생각만이 존재할 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뿐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나는 이 요한복음 14장 12절 말씀을 가지고 40년 전 한 명을 놓고 시작하여 오늘날 전 세계 74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내가 세계에 나가 전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If you believe in Jesus, nothing is impossible! 예수를 믿으면 불가능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얕은 물가에 서서 찰싹거리는 파도를 보고 두려워합니까? 내가 외국어를 두려워했더라면 세계선교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장시간 비행기 타는 것을 두려워했더라면 지구 반대편 남미까지 날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그러한 찰싹거리는 파도 따위보다 궁극적으로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가치 있는 일에 내 목숨까지 내놓았기에 통역관을 쓰며, 수십 시간의 여정도 마다하지 않고 주인의 부르심에 오직 예로써 순종하며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내 생각이 만드는 결과입니다. 두려워 마세요. 하나님의 넓고 큰 은혜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하심을 믿고, 노를 저어 깊은 바다로, 망망한 대해로, 은혜의 바다로 마음껏 나아갑시다. 할렐루야!”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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