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므비보셋
한 사업가가 300억이라는 거금을 카이스트 대학의 한 교수에게 기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자 사업가는 ‘사업이 부진했을 때 그 대학교수가 찾아와 첨단 기술을 전수해줬고, 덕분에 기업이 살아났다.’고 했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대학교수에게 이 기업에 기술을 전수해준 이유를 물었습니다. 교수는 ‘어려운 시기에 국가가 선진국 유학을 통해 본인을 과학기술인으로 만들어 주었고, 이를 사회에 보답하고자 기업을 도왔다’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것은 너무나 귀하고, 세상을 빛나게 만듭니다.
성경에는 ‘기억하지 말라!’는 말씀과 ‘기억하라!’는 명령이 함께 존재합니다. “너희는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8~1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6:9). 결국, 과거의 ‘상처’는 기억하지 말고, ‘은혜’는 반드시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를 묵상하다 보니 문득 다윗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오랜 기간 도피와 전쟁을 치르고 나라가 안정된 뒤, 신하를 통해 요나단의 자녀를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삼하9:1).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을 향한 ‘상처’는 기억하지 않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생명을 구해준 요나단의 ‘은혜’는 깊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찾은 므비보셋은 낙상사고로 못 걷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다윗이 베푸는 은혜를 되갚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정치적인 눈으로도 사울의 혈통인 므비보셋이 언제 반역을 일으킬지도 모르니 그를 찾아 한 상에서 먹고 마시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은혜를 기억하고 갚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성을 떠날 때 생필품을 준비한 것도, 다윗이 돌아오기까지 애타게 걱정하고 기다린 것도, 그의 몸종이 이간질로 빼앗아 간 밭의 절반을 돌려준다는 다윗의 말에도 그가 무사히 돌아온 것이 더 중요하니 밭은 종에게 주라고 말할 만큼 다윗 자체를 진실로 사랑하는 므비보셋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는 잊고, 상처를 기억하곤 합니다. 하지만, 요나단의 깊은 은혜를 가슴에 새겼던 다윗의 ‘상처’가 아닌 ‘은혜’를 기억하는 삶이, 결국 더 깊은 사랑과 은혜의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삶에 잊고 있던 므비보셋을 찾아봅시다!
하인명 집사
renming@dau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