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변화와 변질 사이에서
신앙의 변화와 변질 사이에서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종교 활동이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살아가는 삶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람데오의 삶이 가능할까? 인간에게는 죄성이 있고, 늘 변질되는 존재이기에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변질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이때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시고 이끌어주시는데, 이런 상태를 ‘성령 충만’이라고 말한다. 결국 성령 충만을 경험할 때 신앙생활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으로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되는 과정에서 때론 변질되기도 한다. 그래서 변화와 변질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변질의 속도를 늦출 수가 있을까? 변질의 속도를 늦추려면 생각과 마음을 늘 살펴야 한다. 생각의 정원을 잘 가꾸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의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약해지면 어느새 세상 가치관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마음의 정원에 죄악의 잡초가 무성하기에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쓴 뿌리를 제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분별력을 키워가야 한다.
육신은 변질된다 해도, 생명의 근원이라고 불리는 마음은 십자가의 은혜를 사모하고 부활의 기쁨을 붙잡을 때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다.
변화의 길은 어렵지 않다. 내가 죽으면 된다. 죽으면 새로워지고, 죽으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부요함이나 소유보다 존재를 추구하는 삶이 죽는 길이다. 높이와 넓이보다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죽는 길이다. 높은 가격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변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분주한 삶 속에서도 우리가 변화를 위해 시간을 투자할 때 변질되지 않게 된다. 씨앗이 땅속에서 썩는 것은 변질이 아니라 변화이다. 내가 십자가에 죽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내 인생을 변질되지 않고 청춘의 열정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할 것이다.
이정금 전도사
부자 청년의 재물
마태복음을 보면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마19:16~22).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자 예수님께서 ‘계명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들을 다 잘 지켰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가진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부자 청년은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정말 이 부자 청년이 버려야 할 것이 재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그것이 단순히 재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버려야 할 것이 뭐가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주의 일을 내려놓고 따라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를 다니며 많은 일을 합니다.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즐겁게 기쁨으로 그 일들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일이 ‘주를 위한 주의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주의 일’이 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셔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주의 일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내려놔야 할 ‘부자 청년의 재물’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의 신앙, 자기가 원하는 대로의 신앙을 내려놓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의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지금보다 더욱, 우리 생각들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길 소망합니다.
윤에녹 생도
jjoshua@hanmail.net
니고데모의 안경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무식한 사람은 없다!”
총회장 목사님의 단골 메시지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전부라 생각하는 인생만큼 근시안은 없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훨씬 크고 진짜이기 때문이다(히11:3). 그래서 이 창조세계와 역사의 배후를 읽고 해석하는 안경이 필요하다. 그게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의 안경이다. 남몰래 예수님을 찾아간 니고데모는 거듭남으로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라는 영적 안목을 교육받는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적인 안경을 쓰게 된다. 그러면 삶의 태도와 해석이 달라진다.
필자는 신학교 신입생들에게 첫 수업 때면 ‘지금 쓰고 있는 안경을 벗고, 니고데모의 안경을 써라!’고 강조한다. 자연의 안경을 벗어버리고, 은총의 세계를 바라볼 때 신학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그것을 끌어올리는 보이지 않는 힘은 하나님이시다(고전3:6). 이게 바로 은총의 세계이다.
우리는 은총의 영역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자연의 안경 덕에 과학이 발달한 건 사실이지만, 니고데모의 안경은 그 세계의 진짜를 보게 해주며 달리 해석하게 되고, 과학적 원리처럼 돌아가는 만물이 하나님의 인격의 산물로 느껴진다. 또한 인간의 역사에 세심하게 간섭하시는 인격자이심을 깨닫는다. 인간의 역사가 타락 일변도로 달려가듯 보이지만, 그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도 보게 해준다.
우리는 현실을 감각하며 살되, 니고데모의 안경을 써야 한다. 인간은 이 땅과 저세상의 ‘사이’를 살아가는 ‘영적인’ 존재이다(빌1:23). 그런데 우리는 이 땅의 역사와 인생을 니고데모의 안경으로 보며 해석하기를 마다할 때가 많다. 어떤 사건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영적 싸움을 외면하고, 현상에만 몰두하며 하나님 없이 해석하려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지만, 마귀도 사람을 통해 일한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가 그것이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엡6:12). 분별해야 이길 수 있다. 우리에게 씌워주신 니고데모의 안경을 벗지 말자!
송직화 목사
하나님은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
교구 차를 맡아서 관리하게 되면서 차를 주차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집에는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근처 골목에 주차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교회에서 지역주민에게 주차장을 개방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고, 주차비를 지불하고 정기주차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교인이 아니었기에 지하 6층까지 내려가야 했고, 매일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출입이 통제된다는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더는 주차할 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편하게 주차장을 사용하던 중 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지하 6층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데 누군가 저를 따라왔습니다. 그 교회의 부목사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분은 다짜고짜 오늘부로 주차장 사용을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이유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냐면서, 예수중심교회가 구원파 교회 아니냐고, 거기 부교역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중심교회 전도사이고, 우리 교회는 구원파도 아니고 이단도 아니라고 분명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더 이상 얘기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행정직원에게 넘기고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지하 1층을 지나 내려올 때 교구 차 옆에 붙은 ‘예수중심교회’ 스티커를 보고 쫓아온 것입니다. 이단 교회 다닌다고 핍박받았다는 간증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겪어보니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또 앞으로 다시 주차 자리를 찾아 헤맬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때까지 들었던 간증들처럼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주시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던 집 근처 공영주차장에 정기주차 빈자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공영주차장이니 주차비도 훨씬 저렴했거니와 더 이상 지하 6층까지 내려갈 필요도, 자정 전에 들어가려고 마음이 조급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만약 동네 교회 주차장에서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주변 다른 주차장을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화가 복이 되는 역사를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 생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축복은커녕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하나님은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간증, 다윗의 간증, 목사님의 간증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이 믿음을 가진 자녀들에게 아버지께서 날마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이호민 전도사
fioe154@naver.com
시편 기자는 우리의 남은 날 계수함을 가르쳐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달라고 하였지만, 인생의 시종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살다가 내일 죽어도 한 점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참된 지혜입니다. 우매한 자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흘러가는대로 살아가지만, 지혜로운 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기에 항상 늘 깨어서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올 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가지만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호흡 있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건강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죽은 뒤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지 지나가고 나서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인데 죽으면 끝이 아니라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바깥세상을 준비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죽은 뒤의 영원한 세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미숙아로 태어나면 인큐베이터에라도 들어갈 수가 있지만, 영적인 미숙아는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없고,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다가 가야 합니다. 지체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죽은 뒤에 영원한 세상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상화평 목사
부정적인 생각은 건강의 적!
확증편향이라?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증거는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주장에 반대되는 증거는 배척하고 무시하는 심리적인 경향을 말합니다. 부정적 확증편향이란 긍정적인 내용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반응과 결과에 대해서만 받아들이고자 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요즘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스트레스가 없이 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스트레스가 있더라도 적절한 휴식과 운동과 영양 섭취가 가능하다면 사실 건강을 잃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질병으로 넘어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특정 큰 사건 이후로 몸에 큰 질병이 오는 경우도 많고,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여기저기 원인 모르고 아픈 경우도 생깁니다. 스트레스가 질병으로 넘어가게 하는 것 중 부정적인 생각의 영향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습관이 병을 만들 듯이, 부정적인 확증편향은 감사를 모르게 합니다. 기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주어진 것은 당연하지만 부족한 것만 눈에 보입니다. 매사 진지하다 못해 과도하게 긴장하고 불안하고 부정적인 것을 찾아내는데 몰입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몸이 경직되고 호흡을 짧게 만듭니다. 짧은 호흡으로 인하여 저산소로 경직된 신체는 저체온 상태를 만들게 되어 손발이 차게 되고 혈류 순환에 장애가 생깁니다. 상체는 열이 뜨겁고 하체는 차가워지는 몸의 순환장애가 생깁니다. 그 결과 암, 우울증, 치매, 고혈압, 당뇨병 등이 이러한 저산소 저체온 상태와 관련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나 때문에 내 건강을 잃기 쉽습니다. 규칙적으로 땀을 흘릴 정도의 운동,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자연 음식을 통한 건강한 영양 섭취, 일상에서의 기쁨을 나누고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연습은 하나님이 주신 몸과 마음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Dr. 설재현 집사
kseolmed@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