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피로 산 교회
하나님의 감독과 사랑을 받으며 사는 생활을 ‘신앙생활’이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고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내게 관심을 쏟지 말고, 나 좀 내버려 두라고 한다. 이 말은 너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불신자란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받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고린도전서 4장 9절에는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 하였다. 즉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 받으면 천사들이 항상 내 주변에서 하나님의 눈을 대신해서 우리를 지키기 시작한다.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천사는 개의치 않고 그곳에 가서 우리를 다 관찰하고 있다. 거짓말할 때도, 잠잘 때도 천사들은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화할 때도 천사들은 그 대화를 다 듣고 있으며, 또한 혼자 마음에 생각하고 있더라도 천사들은 그 생각을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 교회 성도나 직분자들은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는지 이용하는지는 자신만이 아는 비밀일 것이다. 주께서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심으로,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처음부터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교회를 이용할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각종 이권을 노리고 교회를 이용하는 일들, 특히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교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본색을 드러낸다. 그래서 주님은 “입으로는 주를 부르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그대로 능히 갚으신다. 의를 행한 자는 의의 상을 주시고, 불의를 행한 자는 불의의 형벌로 갚으신다. 요행은 없고 그 결과와 책임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그분 앞에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며 나의 모습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회개란 나의 악함을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요, 십일조란 나의 수입을 숨기지 않고 낱낱이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다. 말라기 3장 10절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는데 ‘온전하다’는 것은 ‘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사란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은총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이 세대가 악하면 악할수록, 문화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람은 아주 멀어질 것이요, 감사하는 사람은 더욱더 감사하도록 축복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이제라도 변화되어 구원의 은혜를 귀히 여기고 교회발전에 밑거름이 되겠다는 다짐과 실천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