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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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무엇이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고후8:9~12)

1242호 · 2024-02-25

저는 목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고부터 여러 교회를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했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교회에서 설교를 마치고 헌금할 시간이 되었을 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님들, 오늘 헌금 안 해도 됩니다. 오늘 헌금 안 받겠습니다.”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헌금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경제적인 뒷감당은 내가 하겠다는 오만을 떤 겁니다. 성도들은 ‘와~ 멋진 목사님이다’ 했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기도하는데 성령님이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왜 네가 성도들이 복 받는 길을 막느냐?”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나름 성도들을 위한답시고 헌금을 안 받은 것인데, 그게 성도들이 받을 복을 막는 꼴이 된 것입니다. 회개 많이 했습니다.

교회 가면 돈 내라고 해서 교회에 못 가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님들이 헌금에 관한 설교를 못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돈 내라고 강요하는 곳이 아닙니다. ‘헌금하라’는 것은 성령이 제게 깨닫게 하신 것처럼, 복 받는 길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주일 성수해라’, 이런 말씀처럼 ‘헌금해라’라고 당당히 가르쳐야 합니다. 제대로 안 가르치면 성도들이 받을 복을 가로막은 죄를 물으실 겁니다.

예수님은 물질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셨지요. 예수님이 돈이 필요해서 그런 설교를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는지 이런저런 비유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사 부유하신 자로서 가난한 마구간에서 나신 분 아닙니까(고후8:9)?

그렇다면 왜 헌금을 하면 복을 받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무엇이든 심어야 납니다. 농사지어보셨습니까? 아무것도 심지 않았는데 나는 게 있습디까? 나는 게 있다면 쓸모없는 잡초뿐이지요. 심어야 납니다. 더욱이 무엇이고 많이 심어야 많이 나고, 적게 심으면 적게 납니다. 저는 부모님이 농사짓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밭에만 씨를 뿌리신 것이 아니라 밭두렁에까지 씨를 뿌리셨습니다. 왜 그러실까 했는데, 나중에 보면 그곳에 뿌린 것도 다 결실이 되어 조금이라도 더 거뒀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끼니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어떤 부농은 그런 자에게 농토도 빌려주고, 종자도 주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서 가계를 일으켜주었습니다. 나중에 소출 일부를 돌려받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수확하고 나서 아까워서, 다 내 것 같아서 선의를 베푼 자를 외면하면 어찌 될까요? 그 농토, 그 종자, 그 기술이 누구에게서 왔는데요?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종자도 주시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치시고(마13:3~9), 때를 따라 비를 내리사 많이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나 주신 종자를 심는 것은 우리 일입니다. 그것이 헌금입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9:10~11). 그래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 예물을 드리는 것은 감사의 표식이며, 은혜를 아는 자의 도리인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을 보면 손주 자랑에 정신이 없습니다. 손주가 뭐 사달라고 하면 아낌없이 사줍니다. 그런데요, 그 손주가 어버이날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가져다 가슴에 달아주면 그게 너무 좋아서, “우리 손주가 이거 만들어줬어.” 자랑하며 난리를 떱니다. 종이로 삐뚤빼뚤 만든 카네이션이 뭐라고 그리 좋아하는지….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당신이 넘치도록 주시고도 우리가 드리는 종이 카네이션 같은 적은 예물에 감동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잠8:17~18).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 하나님께 받지 아니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고전4:7). 그런데도 감사를 못합니까?

그렇다면 헌금을 할 때 어떤 자세로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어떤 예물일까요? 첫째, 미리 준비하여 정성을 다해서 드리는 예물입니다.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후9:5).

헌금시간이 되면 그제야 지갑을 열어 만 원짜리를 드릴까, 오천 권을 낼까, 천 원짜리를 낼까 고민한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예물이라고 받으실까요?

마태복음 26장에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이 비싼 것이었기에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되어 온 진정한 예물이었기에 기뻐하사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드려야 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하고도 저주를 받았을까요? 인색한 마음이 들어 일부를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소유를 다 노렸다가 일부만 드리니까 기분이 나빠서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갑자기 그들이 인색한 마음이 들어 거짓말한 것에 분노하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일부만 드리겠다 생각하고 정한 대로 드렸더라면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의 액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8장 12절에,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봐도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출25:2)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장에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는 것을 보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21:3~4). 과부는 겨우 동전 몇 개 넣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누구보다 많은 헌금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늘 중심을 보시는 주님이 그 과부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셋째, 온전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말1:13).

교회를 다섯 개나 짓고도 저주를 받아 음부에 떠도는 장로를 봤습니다. 축복을 받아도 넘치게 받아야 하건만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온전하게 드리지 못해서입니다. 교회 지었다고 교만했거나, 교회와 주의 종을 좌지우지하려고 했거나,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거나, 죄에 속한 예물을 드렸기에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말라기서 3장에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은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했습니다(말3:7~8). 이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고 하셨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빌4:18). 향기로운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은 그 영광 가운데서 그 풍성한 대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합니다

(빌4:19).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할렐루야!

심은 대로 거두고

심은 만큼 거둔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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