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심으면 열매를 거둔다
진실로 심으면 열매를 거둔다
중국 어느 한족 부부가 소수 민족 마을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 이야기다. 그들은 자기 민족이 소수 민족을 착취하고 괴롭힌 것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선행을 베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에 강도가 들이닥쳐 물건을 다 훔쳐가고, 집에 있던 딸에게도 크게 상해를 입힌 사건이 일어났다. ‘이제는 취조하고 처벌받게 하겠지.’라는 마을 사람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부부는 여전히 그들을 대했고,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마음 문이 열려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고 한다. 부부의 진실된 마음이 전해져 복음의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이다.
다윗의 고백을 통해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심의 진실함을 원하신다
(시56:1).
어느 날, 큰아이가 감기 기운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한창 학교에서 독감이 유행하던 중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약을 지어 먹였다. 기도하고 아이에게 약을 먹였지만, 간절하고 진실된 마음은 빠진 형식적인 말과 기도임을 나 자신은 알았다. 이제는 나을 법도 하건만, 약을 다 먹는 날까지 아이가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힘들어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을 때 찾아가 손잡아주시자 열병이 떠나가고 일어났다는 말씀이 떠올랐다(막1:31). ‘아,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기도를 하기 원하시는구나!’라고 깨닫고는 그날 밤 나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고는 간절히 기도드렸다. ‘주님께서 찾아가셔서 손잡아 일으켜주시면 저 아이가 나을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날까지 일상생활도 힘겨웠던 아이가 뒷날 아침 일찍부터 활동하며 “엄마, 저 다 나아서 오늘은 학교 갈 수 있어요!”라며 씩씩하게 말한다. 주님을 진실로 의지하는 믿음은 빠진 채, ‘약을 먹었으니 당연히 낫겠지.’ 했던 나의 안일했던 중심을 돌아보게 하셨던 것이다. 이 일은 나도 모르게 식어진 믿음의 불이 다시금 힘있게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목사님은 ‘진실은 진실된 자에게 통한다’, ‘나에게는 정직하고 남에게는 진실하라’고 가르치신다. 내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한지, 또한 나 자신에게 정직한지 점검하자. 진실로 기도하고 내게 맡겨진 일에 충성되고 진실하면, 우리의 영·혼·육이 열매 맺는 복된 한 해가 될 줄로 믿는다.
이국진 사모
joyful_jina@hanmail.net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기준은 각자 다르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 즐거운 여행을 할 때, 운동할 때, 자신이 원하던 차나 집을 샀을 때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그 행복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기 위하여 돈을 열심히 번다. 하지만 돈이 많아졌다고 해서 계속 행복할 수 없고, 원하던 것을 이뤄도 또 다른 문제로 완전한 행복을 찾기가 어렵다. 오직 보이는 것(現象界)만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靈界) 것은 무시하고 사는 것은 근시안적인 삶이다.
한국인 응답자 1.1%만 부유층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러면 나머지 98.9%들은 부자가 아니라는 상대적 박탈감에 살아가고 있다. 사실 부자가 아니더라도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비교하게 되면 결국 불행하게 된다. 지난 2011년, 부탄이라는 나라의 행복 지수가 세계 1위였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최근, 95위로 하락했다고 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시야가 넓어진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잘사는 나라와 비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 스스로의 삶에 만족했던 사람들이 이제 자국의 가난함을 알게 되면서 불행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교 때문에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면 더 이상의 행복은 없어진다. 고로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여행 사진, 행복해 보이는 표정, 명품 사진, 부자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비싸고 고급진 음식들, 좋은 모습만 올라온다. 실상을 살펴보면 정말 그렇게 사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는 것. 따라 하려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시편 1편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에 대해 얘기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아니하며, 오직 하나님이 주신 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 안에 ‘소유’는 하나도 없다. ‘어떤 상태’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상태의 결과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만사가 다 형통하다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비교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계를 보며 모두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행복했으면 한다.
임택함 목사
세 겹줄 성경통독
작년 11월. 어느덧 2023년이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흠칫 놀랐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사복음서를 통독하기로 했다. 우리 교회 청장년부 JJ팀(저스트지저스팀) 자매들과 함께 읽기 시작하여 하루에 3장씩 읽고 12월 중순쯤 사복음서 통독을 완료했다. 다들 육아에, 살림에, 워킹맘도 있어서 성경을 통독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함께 읽어나가다 보니 읽을 수 있었고 잠깐 잊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카톡 메시지, “오늘 말씀 읽었습니다.”를 보며 우선으로 성경을 먼저 읽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말씀에 은혜와 함께 마음에 뿌듯함도 있었고 내년에는 꼭 성경통독을 해보자며 다들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되었었다.
성경을 같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개그우먼 조혜련 집사님의 간증을 보고 나서다. 조혜련 집사님은 자신을 성경 바람잡이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성경통독을 100독 이상 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카톡 방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읽는 것이었고 2년 동안 20독을 했다는 것을 보고 ‘아 나도 우리 팀원들과 함께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2024년이 되었다. 약속한 대로 성경통독을 하게 되었고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먼저 읽기로 하였다. 2024년에 성경통독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하루에 5장씩 읽기로 하였다. 지금은 창세기를 마치고 출애굽기를 읽고 있는데 함께 읽어서인지 은혜가 더욱 크다. 그중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아들 이삭을 바치러 올라갈 때 종들에게,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아니고 ‘우리’라고 하는 부분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임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아들, 바치라고 하시니 바치는 순종하는 마음,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살려주실 거라고 믿는 그 마음. 그 모든 것들이 느껴졌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그 믿음이 멋있다 생각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성경만이 유일한 진리이고,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방법이자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매년 새해 다짐 첫 번째가 성경통독이었으나 끝까지 완독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 혼자 하다 보니 하다가 말게 되고 마음만 있었는데, 이렇게 같이 읽으니 할 수 있는 것 같다. 전도서 4장 12절에 보면,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듯이 혼자 읽으니 지치고, 하다 말고, 끝까지 할 수 없었지만 여럿이 함께하니 할 수 있었다. 역시 세 겹줄은 강하다!
하나님께서 귀한 동역자들을 선물로 주셨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음이 정말 감사하다. 믿음 안에서 서로 독려하고 함께 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지난 청장년부 예배 시간에 이시대 목사님께서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누린다는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그중 예배, 기도, 찬양, 봉사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 하셨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다 하셨다. 예수 안에서 평안과 행복,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권세라고 하셨다. 귀한 동역자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봉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만 누릴 수 있는 권세를 누리는 2024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믿음 혹은 착각
어릴 적 어머니가 병에서 고침을 받고, 동생이 죽다가 살아나고, 열등생이었던 내가 해외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살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다. 그럴 때마다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했다. 하지만 때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 나의 믿음이 상했던 적도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도, 하나님의 거절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기적만 바라보던 나의 나태한 착각도 있었다. 하나님은 홍해도 가르시지만, 내 삶 속에 홍해가 매일 갈라지는 건 아니었다.
​한 책을 읽었다. 평범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방법, 그 시작은 수입의 10%를 꾸준히 저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돈을 벌게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맞다, 언젠가부터 믿음이라 말하며 하루아침의 기적만 무책임하게 바라게 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100억 자산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수입의 10%는 저축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건강 수치들이 바뀌진 않지만, 오늘 30분 운동은 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성공한 사업가가 될 수는 없지만, 여러 창업 성공 사례를 공부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결혼할 수는 없어도 주변 이성과 대화해볼 수는 있으며, 하루아침에 일류 대학에 들어갈 수는 없어도 오늘 해야 할 공부는 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주의 영은 빌립을 순간적으로 이동시키셨다. 그러나 내가 퇴근길에 집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믿음은 내가 움직이는 것에 있고, 착각은 무책임 혹은 나태함에 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약 2:20).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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