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귀신을 쫓아야 하나?
왜! 귀신을 쫓아야 하나?
몇주 전에 한 꿈을 꾸었습니다.
강의실에서 강의를 시작하려는 제 앞에 난데없이 두 명의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중 한 명이 교탁 옆에 놓인 피아노를 멋대로 치기 시작하는데, 저는 그녀를 중단시키기 위해 ‘어머나, 피아노를 정말 잘 치시네요! 곧 강의를 시작해야 하니 끝나고 연주해주시겠어요?’라고 부탁했으나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명은 고함을 내지르며 이유 없는 생떼를 부리는데, 눈물로 애원하며 말려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더욱이 그 자리에는 타 교인 분이 많이 참석하였는데, 그들 앞에서 체면을 지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끝끝내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니 순식간에 두 여자는 잠잠해졌고 저는 꿈에서 깼습니다.
‘나는 과연 안 좋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의 원인이 바로 ‘귀신’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참으로 믿고 귀신을 쫓는가?’
귀신이 요동하는 것으로 생각지 못하고 갖은 말로 회유하려 했던 나의 모습. 사람들의 시선에 주눅 들어 귀신을 즉시 내쫓지 못한 모습이 떠오르자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며칠 후 저는 용기를 내서 총회장 목사님께 꿈을 말씀드렸고, 마가복음 한 구절을 받게 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귀신 들린 자를 어찌하지 못하고 예수께 데리고 와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여쭈었을 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었지요.
‘아, 내가 실탄 없는 총을 가지고 있었구나!’ 기도로 실탄을 장전하여 악한 마귀와 귀신을 쫓아내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보여주시며 덫에 빠질세라 꿈으로 교훈하심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믿는 자가 성령을 받으면 누구든지 병들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귀신을 내쫓을 수 있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우리 교단의 정체성을 잊지 맙시다! 늘 깨어 기도하여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막16:17).
김진실 사모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최근에 한 장례식을 가게 됐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며 집안에서 믿음의 가장으로서 굳건히 서 계시던 권사님의 장례식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며 돌아가신 아름다운 장례인지라 가족들도 평안해보였습니다.
그런데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안치까지 마쳤을 때, 함께 하셨던 한 권사님의 말씀이 제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천국에서 만납시다.” 너무나 평온한, 하지만 확신에 가득 찬 그 말이 제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자주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이 이생뿐이라면 우리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성경도 이야기하죠(고전15:19).
너무나 맞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하며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정말 미쳤다고 할 만큼, 우리 생각을 버리고 그분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보다 우리 믿음을 견고히 할 수 있는 것이 또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달려온 그 길, 그 노력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늘나라에 쌓아놓은 상과 집을 주인 없는 것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누가 뭐라고 해도, 누가 유혹하고, 미혹해도 그 길에서 이탈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앞서가며 본을 보이신 예수님과 같이 이 믿음의 경주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길 소망합니다
(히12:1~2).
우리의 가는 이 길 끝에서 우리 모두 사랑하는 주님을 볼 수 있길 소망합니다. 영광의 주님이 우리를 맞아주실 그 날을 고대합니다. 할렐루야!
윤에녹 생도
복음이 되는 삶
어느 젊은 사업가를 알게 되었다. 구도심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고객을 확보하다가 신도시로 이전했음에도 그 고객들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옮겨온 대단한 사업가다. 자기 일에서의 지식도 깊고, 경험도 많이 축적했고, 언어와 품위도 늘 좋아 보였다. 알고 보니 타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성도였다.
성품 교육이 참 잘 되었다 싶어 물었더니, 조부모님께서 목회자이시면서 늘 가정교육에 엄격한 분이셨다고 했다. 젊지만 노는 일보다 미래를 위해 자기 분야를 늘 치열하게 연구하고 신앙으로 절제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단순히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개개인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려는 노력에 적잖이 감동을 받았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자기 영역에서 충분히 복음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복음이란 낮아지는 것이다. 말씀이 성육신 되셨을 때, 말씀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말씀을 담는 그릇을 인간의 몸으로 취하신 것일 뿐이다. 그 말씀은 우리를 향한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 하나하나가 백성들의 필요를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으셨기에 늘 기적과 은혜가 동반되는 삶이셨다. 고객의 필요와 무관한 개인의 정치적 야욕이었다면,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의 비참한 에피소드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고객의 필요조건을 다 취해보셨기에 너무도 잘 아시고 치유하시는 감동을 주신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늘 명품인생을 강조하신다. 처음엔 마음에 잘 와닿지 않던 언어였으나 그 명품인생을 사신 분이 예수님이셨으며, 또한 총회장 목사님의 변함없는 삶을 보며 명품인생을 배운다. 목회의 가장 중심축을 이루는 목회 철학이 누가복음 16장 10절이심을 봐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어떤 질문에 답을 해주셨다. 어느 누구에게나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나 자신이 희생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나를 위한 삶에서, 복음으로 이웃을 살리는 쪽으로 점점 나아갈 때 더 잘사는 인생이다. 복음이 삶이 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잠재적으로 주셨음을, 성육신의 은혜를 통해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다짐해본다.
송직화 목사
천국에 가는 부자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우리가 설교 말씀을 들었듯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다(눅19:2). 그가 예수님을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갔다. 이를 보신 예수님이 삭개오를 부르자 삭개오가 급히 내려온다. 그리고 즐거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께 한 마디 아뢴다. 이 말로 인해 예수님께서 그에게 구원이 임했음을 알리신다.
대체 삭개오는 무슨 말을 했기에 예수님이 감동하셨을까?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바로 이 말이다.
삭개오의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내 물질보다 하나님이 우선이라는 것, 재산의 절반을 드린다는 것, 그리고 그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준다는 것 등이다.
록펠러는 부자가 된 후 55세부터 재산의 절반 이상을 자선 사업에 썼다. 빌 게이츠는 세계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고,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롤모델로 알려진 척 피니도 자기 재산의 99%를 기부했다. 삭개오의 예화를 비추어 봤을 때, 이러한 부자들의 행동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기에 충분하다.
부자들도 능히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가난한 자를 돌아보고 나누면 가능하다. 사실 그 모본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우리 목사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된다. 부자로 살되 부자로 죽지 않으면 충분히 주님이 감동하시리라.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