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물건도 좋고 포장도 잘한다
“이 예배가 끝이냐, 시작이냐?”
12월 14일, 2023년도 예수중심제자신학원 종강예배 때 총회장 목사님께서 서두에 꺼내신 말씀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예배를 종강예배로 받아들여 ‘내년 개강 때까지 좀 쉬어 볼까?’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시작으로 여겨 ‘이 기간에 더욱 도전하고 노력해보자.’ 할 것이다. 너희는 어떤 마음으로 이 예배에 참석했는가?
나는 여러분의 영·혼·육이 명품이 되길 원한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 명품은 여전히 잘 팔린다. 너희가 명품이 되면 너도나도 너희를 원할 것이고, 어디서 목회를 해도 성공할 것이다.
명품은 물건만 좋은 것이 아니다. 포장도 멋지고 근사하다. 먼저는 지식을 함양하여 물건의 질을 높여라. 노력하여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총알 없는 총, 돈 없는 지갑을 들고 있는 자가 되지 말라. 지식을 쌓아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3:14)고 말했듯 나도 너희에게 말한다. ‘노력하고 배워라.’ 더욱이 주의 종은 대통령에서부터 노숙자까지 상대해야 하니 배타성을 버리고 다방면에 배우고 터득해라.
포장도 좋아야 한다. 같은 그림이라도 프레임이 좋으면 그림이 돋보이듯, 너희의 외적인 것들, 즉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언어와 표정이 좋아야 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정장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여자 생도는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라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먼저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거울을 본다. 흐트러진 모습을 성도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말을 잘하고 표정 관리를 잘하라. 언어와 표정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고, 원수가 친구가 되고, 친구가 원수도 될 수 있다. 그래서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25:11) 한 것이다. 잘 짖는다고 명견인가? 아니다. 짖을 때 짖고, 잠잠할 때 잠잠할 줄 아는 것이 명견이다.
이러한 내적 요소, 외적 요소를 가꾸기 위해서는 편안함이란 블랙홀에서 나와야 한다. 왜 블랙홀이라 했느냐 하면, 한 번 편안한 맛을 보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편안함이란 목회를 좀먹는, 인생을 좀먹는 암적 존재인 셈. 그래서 늘 나와 싸워야 한다. 편안해지려는 나와 싸워 이겨야 명품 목회자, 명품 인생이 된다. 목회 39년, 나는 늘 나 자신과 싸웠고, 한 번도 편안함에 굴복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둘째, 명품 목회자가 되려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늘 생각해야 한다. 나는 사무실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액자를 걸어놓고 수시로 이것을 보며 일을 처리한다. 그러면 100% 바른 판단, 정도를 택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주인의식을 강조하셨다. 누가복음 15장에 비유로 말씀하신다.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이 등불을 켜고 온 집을 뒤져 찾아낸다. 왜? 자기 것이니까. 어느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다니다 결국 찾아낸다. 왜? 내 양이니까. 목회자에게 주인의식이 없다면 교회는 절대 부흥과 성장을 이룰 수 없다.
또한 예수님은 남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왜 정죄하는가?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하기에 정죄한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인정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개혁의 걸림돌은 배타적인 생각이다. 마음을 넓히면 시야가 넓어진다.
성경에는 명품의 정의를 이렇게 적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나는 이곳에서 명품 목회자,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목회자, 제2의 이초석 목사가 배출되기를 소망한다. 너희는 할 수 있다.”
예배 후 총회장 목사님과 교수진, 그리고 재학생들이 맛있는 도시락으로 함께 식사했다.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는 말씀을 이루는 신학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