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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연장은 쓰라고 준 것이지 진열품이 아니다

1227호 · 2023-11-12

목회 초, 비싼 가구로 서재를 꾸미고, 각종 전집 도서를 사서 책장을 꽉 채웠습니다. 멋졌습니다. 그 책을 읽었느냐고요? 천만에요. 그저 잘 꾸며놓고 폼만 잡았습니다. 책은 읽어야 내 지식이 되건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잔뜩 진열해놓은 것입니다.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책이 진열품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신학교에 다 기증했습니다.

가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을 줄만 알지 제대로 쓸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쌓인 돈을 보며 희열을 느끼며 산다지만, 그게 어디 돈입니까? 장식품이지요. 돈은 써야 돈인 겁니다. 성경에는 그런 자들을 ‘악한 병에 걸렸다’(전6:1~2)고 하십니다. 있어도 못 쓰고, 줘도 못 쓰는 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악한 병에 걸린 자들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장식품처럼 가만히 두고 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마치 암행어사가 마패를 집에다 장식해 놓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마패 없이 큰소리로 ‘내가 암행어사다’ 해보십시오. 가는 곳마다 포졸에게 곤장을 맞고 쫓겨날 것입니다. 마패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가슴에 품고 있다가 제때 내놔야 각 고을 수령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비리가 밝혀지면 죄질에 따라 형을 집행할 수 있는 겁니다. 마패가 왕의 권세를 부여받았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만왕의 권세를 부여받은 증표가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가시면서 우리에게 그 이름으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곧 하나님의 이름인데,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요14:26).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이 하신 일, 곧 귀신을 쫓고 모든 병을 고친 일을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라(요14:12)’고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마패를 가지면 왕과 같은 권세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장식품처럼 모셔놓고 사용하지 않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래보십시오. 귀신들이 비웃고 때리고 가지고 놀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병들고, 망하고, 싸우고 사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마패를 내밀어야지요. 예수 이름을 사용해야지요. 암행어사가 마패를 꺼내 들면 탐관오리들이 그 앞에 벌벌 떨듯, 우리가 예수 이름을 꺼내 들면 마귀와 그의 추종자 귀신들이 벌벌 떨고 나가게 됩니다.

“내 주제에 무슨 귀신을 쫓아?” 하십니까? 박문수라는 암행어사가 행색이 좋았겠습니까? 인물이 대단히 잘 났겠습니까? 아닙니다. 행색은 거의 볼품없었지만 마패를 보고 다들 그 앞에 조아린 것입니다. 우리를 보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이름’을 보고 마귀와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나 요한, 사도 바울을 보고 귀신이 떠나간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민 마패, 곧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이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고 귀신이 소리를 지르고 떠나간 것입니다. 이초석을 보고 귀신이 떠나가는 게 아니라 제가 내민 마패, 곧 성령으로 오신 예수 이름 앞에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 귀한 것을 왜 장식품으로, 왜 진열품으로 모셔만 놓고 계십니까? 마패에는 왕의 권세가 있듯, 예수 이름 앞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땅 아래 것들이 복종하게 되어있는데 말입니다(빌2:10). 예수 이름 앞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왜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겁니까?

여러분, 마패를 잃지 않는 법, 성령충만을 잃지 않는 법은 오직 기도에 있습니다. 왜 성령이 장식품으로 전락했는가 하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빠서 못하고, 귀찮아서 안 하기 때문에 성령이 역사하지 못하고, 지갑 속의 돈처럼, 제 서재의 책처럼 그냥 진열되어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어렵다면 어렵지요. 그러나 기도의 맛을 알면 절대 기도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마패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것이 귀찮을 수 있지만, 그것을 내미는 순간 모든 자들이 굴복하는 것을 알면 마패가 귀한 것임을 알 듯, 기도로 성령충만하여 귀신을 내쫓아본 경험이 있다면, 병을 고쳐본 경험이 있다면 기도가 즐거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트기 전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하셨고(막1:35),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후에도 저녁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눅5:16). 예수님도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새벽에 일어나 2시간 기도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밤에 2시간 기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집회에 나가면 평균 7시간 기도합니다.

마가복음 9장에는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그의 아버지가 데리고 왔으나 제자들이 쫓지 못해 결국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제자들이 겸연쩍은 듯이 예수님께 그 비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9:29).

성령의 불이 활활 타게 하는 방법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아 성령을 소멸한 자는 지갑은 명품인데, 지갑이 비어 있는 사람과 같고, 총은 있는데 총알이 없는 것과 같고, 배터리가 떨어진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과 같고, 전기가 나간 집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귀신이 귀신같이 알고 덤빕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으면 각 사람에게 각각의 은사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연장이나 무기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꼭 필요한 연장과 무기를 주신 것입니다. 예전에는

‘일 잘하는 놈은 연장 탓 안 한다.’ 했는데, 요즘은 연장이 좋을수록 일을 더 잘한다고 합니다. 호미로 온종일 일하는 것보다 포클레인으로 한 번 파는 게 낫지 않습니까. 기도원의 직원은 몇 명 되지 않지만, 그 일을 다 해내는 것은 연장이 많고 좋기 때문입니다. 전쟁도 예전에는 육탄전이었다면, 지금은 첨단무기전입니다. 누가 더 성능 좋은 무기를 가졌느냐에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습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입니다(엡6:12).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기가 좋아야 합니다. 최고의 무기가 바로 성령입니다. 이 성령의 능력으로만 마귀와 그 일당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병들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망하게 하고, 죄짓게 하는 마귀와 그의 졸개들을 쫓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의 능력입니다.

병 들었습니까? 성경에는 ‘모든 병’과 ‘각색 병’이 다 귀신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막1:32, 1:34, 마10:1). 감기도(마8:15), 불치병도, 정신병도 다 귀신의 장난이니 쫓아버리세요. 마패를 내어놓으세요.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 쫓고 안수하신 것처럼 예수 이름으로 쫓으세요. 그러면 당신과 가정, 사회나 교회에 천국이 임할뿐더러, 당신의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되게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19~20).

알아야 자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6~18)고 말씀하셨습니다. 총을 주셨고, 쏘는 법과 관리법도 다 알려 주셨으니 그대로 하면 우리 삶에 자유가 찾아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제가 부탁하건대, 주의 종들은 아침저녁 2시간씩 기도하고, 성도들은 1시간씩 기도하십시오. 삶이 천국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할렐루야!

연장이 좋아야 일을 잘하고

무기가 좋아야 이길 수 있다

연장도 쓰지 않으면

녹이 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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