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내가 만드는 작품이다(잠26:13~17)
레나 마리아, 스웨덴 태생인 그녀는 선천적 장애인입니다. 그녀는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마저 짧은 중증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크리스천이기에, 이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확신하고 그녀를 정상아와 똑같이 양육했고, 그녀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신앙을 주입했습니다.
그 교육과 신앙을 힘입어 그녀는 정상인처럼 일상생활은 물론이요, 십자수, 요리와 피아노, 운전, 성가대 지휘에 이르기까지 하나밖에 없는 오른발로 많은 것들을 해나갔습니다. 심지어 세계 장애인 수영선수권대회에 스웨덴 대표로 나가 4개의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천상의 목소리로 스톡홀름 음악대학 현대음악과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가스펠 가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레나 마리아의 인생을 몇 줄의 글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 올곧은 신앙으로 그가 정상인과 같이 생활하고, 세계적인 복음가수가 되었지만,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고군분투했을 그의 삶, 눈물겨운 노력을 어찌 간과할 수 있겠습니까? 중증장애인이 정상인의 삶을 살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넘어서며 얼마나 피땀 흘리는 노력을 많이 했겠습니까.
여러분, ‘노력’이 가장 무서운 무기인 것은, 노력 속에는 엄청난 부지런함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노력하면 레나 마리아처럼 절대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당신은 사지가 멀쩡하지요?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지요? 그런데도 성장하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 때문도 아니요, 환경 때문도 아니요, 부모 때문도 아니요, 오직 당신이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칠십 평생을 살면서 게으른 자가 잘 사는 것을 못 봤고, 게으른 자가 성공하는 것을 못 봤습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분명히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24)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요? 자랑이 아니라 저는 정말 부지런합니다. 저에게는 두 절친이 있다고 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기도와 노력’. 이 두 친구는 제가 조금이라도 게을러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떠날 친구들입니다. 그 친구들을 붙잡기 위해서 엄청나게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부지런히 기도했고, 부지런히 노력했습니다. 목회 초기에는 단에서 학잠을 자며 기도했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 4시간은 기본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이에도 다방면으로 공부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냥 73개국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게 아닙니다. 그냥 예수중심교단이 이뤄진 게 아닙니다. 남보다 부지런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게으름’이란 블랙홀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거기에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 깊이 빠져들 뿐이지요. 옛말에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게으름은 마약과도 같아서 떨쳐버리기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게으름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당신의 인생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성경에 명확하게 말씀하셨거든요.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잠13:4),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여러분, 혹시 연애를 하고 있습니까? 혹시 사업 파트너를 구하고 있습니까? 직원을 채용할 예정입니까? 그 사람의 외모나 학력이나 집안을 볼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시 말해서 게으른지 부지런한지 살펴야 합니다. 게으른 남편을 만나면 평생 고생합니다. 게으른 아내를 만나면 가족 모두가 평생 꾀죄죄하게 살게 됩니다. 동업자가 게으르면요? 직원이 게으르면요? 성경은 그 부분도 짚어주셨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10:26). 되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느 주인이 각자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25:16)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것을 묻어뒀습니다. 게으름 피운 거지요. 그리고는 주인이 와서 회계하자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25:24~25)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러자 노한 주인이 핑계나 대고 있는 자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며 ‘바깥 어둔 데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마25:30). 누가복음 19장에는 므나로 비유해서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게을러서 이익을 남기지 못한 자를,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19:27)고까지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악하다’고 했고, ‘원수’라고 했습니다. 왜냐? 게으름은 육은 물론이고, 영혼도 죽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게으름은 악이요, 악은 곧 마귀입니다. 게으름은 마귀의 전매특허입니다. 악한 것들은 우리에게 그저 천천히 하라고, 내일 하라고 합니다. 그러다 주인이 도착하는 날까지 아무것도 안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가난하게 만들고, 천국에도 못 들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하셨고, 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는데, 왜 우중충하게 살고, 왜 다스림을 당하고, 왜 남에게 빌리러 가고, 왜 비실대며 삽니까? 게을러서입니다.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려면 정보도 필요하고, 기술이나 스펙도 있어야 하고, 법을 알아야 그 안에서 자유하건만 게을러서 이것도 저것도 안 하니 어찌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에게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언제까지 거리에 사자가 있다며 핑계만 대고 있을 겁니까? 제가 10년 만에 일본에 가보니 27개 교회 중에 열 교회가 문을 닫았습디다. 이유가 많겠지요. 그러나 저는 단 하나의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게을러서다.’ 성경에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27:23)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제라도 게으름이란 블랙홀에서 나오고, 게으름이란 마약을 끊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에 3년 동안 열매를 못 맺는 무화과나무를 주인이 찍어버리라고 하자 과원지기가,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고 말하며 1년의 유예기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게으름 피웠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부터 부지런히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면 과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1년만 부지런을 떨어도 소출을 낼 수 있습니다. 1년만 부지런히 기도해보세요. 1년만 부지런히 책을 읽어보세요. 1년만 부지런히 운동해보세요. 분명한 결과가 나옵니다. 1년을 부지런 떨다 보면 부지런이 습관이 되어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부지런하다는 것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손발보다 머리를 부지런히 쓰는 것이 더욱 유익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쇳덩어리로 엿을 바꿔 먹고 말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낫이나 호미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바늘을 만들어 팔아 몇십 배의 이익을 남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머리가 부지런히 돌아가야만 가능하고, 어떤 일에 부지런히 집중할 때 가능합니다.
내 인생은 운명이나 팔자가 아닌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부지런을 떨어 내 인생을 명작, 걸작으로 만들어봅시다. 할렐루야!
게으름은
멸망으로 이끄는 악이다
성공은 편안하기를
포기한 자들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