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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라(시2:1~12)

1221호 · 2023-10-01

유럽을 가서 보니 교회가 박물관이 되고, 혹은 관광지로, 심지어는 레스토랑이나 술집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유럽인들에게 종교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는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열에 서넛이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도 교회가 넘쳐나고 왕성한데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대대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도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에만 교회에 나가면서도 당당히 크리스천이라고 믿는 거지요.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하나님은 온데간데없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무늬만 크리스천이요, 짝뚱 크리스천입니다(딤후3:5).

참 크리스천, 참 그리스도인은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삽니다. 그들은 자원하여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하나님 말씀이란 착고에 채우고, 스스로 예수님의 간섭을 받기로 작정한 자들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압제되고 억압되는 걸까요? 어찌 보면 예수 안에 들어가면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참아야할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도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예수님 말씀 안에 거할 때 알게 되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지키는 하나님 말씀이 나를 자유케 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참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고전4:6)고 당부했고, 그래서 제가 예수님의 행복한 노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간섭을, 하나님의 통치를 귀찮아하며 허망한 자유를 찾아보겠다고 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비웃으십니다. 시편 2편에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3~4)라고 하셨고, 그런 자들에게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시2:12)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시2:11~12)고 하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뤄지지만, 이 구원을 끝까지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늘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섬긴다는 것은 곧 ‘경외

(敬畏)한다’는 말씀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삼가 조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감히 하나님을 농담거리, 코믹거리로 삼는 자들이 있습니다.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다니엘서 5장에는 벨사살이란 왕이 나옵니다. 그는 귀인들과 큰 잔치를 하면서 그의 아버지인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기명에 술을 따라 마셨습니다. 이 기명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쓰여야 할 거룩한 것이었는데 망령되이 행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심히 모독한 것입니다. 그러자 큰 손가락이 나와 벽면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벨사살 왕이 놀라 술객들과 점쟁이를 불러 이를 해석하라고 하나 아무도 그 말과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을 불러 풀이하니, 그 글씨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인데, 벨사살이 저울로 비유된 하나님의 기준에 필요한 무게가 극히 부족한 자로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고 엄중한 심판을 받을 대상이 되었음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 경고대로 벨사살은 그날 밤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를 용납지 않으십니다. 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천사장 루시엘, 므리바 물을 두 번 내리친 모세,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리하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당부 드리고픈 말씀이 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1~5),

제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데, 정말 열심히 봉사하며 주의 일을 하는데 정작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열심히 안내를 서고, 열심히 성가대를 하고, 열심히 조장, 구역장을 하는데 영혼은 말라깽이가 되어버린 자들 말입니다. 그들은 마르다처럼 본질을 잃어버리고 일에만 전념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봉사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는 천국이 보장된 후에 받게 되는 상을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천국에 갈 요소를 잃어버렸으니 그 봉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봉사보다 ‘예배’가 중요하다고, 봉사자보다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예배가 시작되면 밖에서 안내서는 자들 다 들어오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禮拜)란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대면 예배라고 다리 꼬고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예배 보는 자들, 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설교자 이전에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바빠서 기도 못한다고 하더니 지금 목사도 못하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예배 때 사회를 보던 어느 장로는 사회를 다 보고 내려가서는 예배는 참석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노닥거리고 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장로, 쫄딱 망해서 야반도주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까먹고 일만 하는 성도, 주의 종들이 있다면 당장 직분을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영성이 회복되어야 끝까지 구원을 놓치지 않게 됩니다.

노아가 두렵고 떨림으로 방주를 지었기에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고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히11:7).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의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렸을 때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시고, 그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듯이, 노아에게 그러셨듯이 오늘날도 주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복을 주십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시31:19~20).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말3:16~18).

우리, 허울만 좋은 크리스천이 아니라 속까지 꽉 찬 참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끝까지 주의 구원을 이룹시다. 할렐루야!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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