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절로 일하고 싶습니다
남들은 평범하게 하는 결혼을 저는 참 힘들게 했습니다. 그것도 남들보다 더 훨씬 늦은 나이인 33세에 두 살 많은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당시에는 결혼을 대개 20대에 했었습니다. 이유는 그저 지금의 미용사 생활이 싫어서였습니다. 현실도피 하는 마음으로 도망가듯이 결혼했는데, 행복은 결혼 문도 열기 전에 날아갔습니다. 남편은 결혼한 다음 날부터 출근도 안 하고 먹고 놀았습니다.
결혼 전 남편은 형님의 노여움을 사서 회사에서 잘린 상태였는데, 전 그것도 모르고 형님 회사에 다닌다니 그 말을 찰떡같이 믿고 확인도 없이 덥석 결혼한 겁니다. 신혼의 단꿈은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저는 무능한 남편에게 ‘헤어지자. 못살아. 이혼해.’ 밥 먹듯 말했습니다. 예전엔 먹고사는 걱정을 모르던 내가 ‘무얼 먹지? 무얼 입지? 어디서 잘까?’ 의식주를 고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남편은 입버릇처럼 “넌 돈 벌어. 내가 살림할게.” 했고,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처음엔 집에서 금식하다가 나중엔 남편하고 상의 없이 대한민국에서 유명하다는 기도원은 다 다니면서 일주일, 2주일, 길게는 3주일 집을 떠나 금식을 했습니다. 기도원을 가면 천국이지만 막상 집에 오면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을 돈을 벌게 해야겠다 싶어서 기도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그 응답은 참 오래 걸려서 오십을 넘기고서야 번듯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사이 아들 둘은 천국 가고, 홀로 남은 큰아들은 전기 전문가가 되어 삼성 계열사 회사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지옥을 지나니 천국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습니다. 사십에 신학하고, 이제 또 육십의 나이에 신학을 해서 벌써 이학년입니다.
제가 두 번째 신학 오기 전 한 꿈을 꾸었어요. 풍선 두 개가 하늘 높이 오르더니 한 풍선은 옆으로 날다 땅으로 떨어지고, 한 개 풍선은 계속 오르더니 예전에 목사님께서 보여주신 두바이 폭죽같이 온 하늘을 덮고 장엄하게 터지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두 번째 신학 원서를 접수했고 입학을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젊은 동료들 발맞추기가 힘에 부치지만 잘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봉사를 좋아해서 집회 때마다 카페서 커피도 내리고, 에이드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결실의 계절인 가을, 저의 인생도 가을에 접어들었습니다. 저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혼의 열매를 올리고 싶습니다. 부족하고 나이 많아 얼마든지 내치고 떨구어도 전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신학교에 입학시켜주신 총회장 목사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고마워서 은혜 갚으려 하지만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지요. 이제 성전도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하는 이 시점에 저도 신학 두 번 한 곱빼기로 쓰임 받고 싶습니다.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