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평가될까?
여보게!
강반석 목사님과 정광훈 장로님이 소천하신 후 많은 사람들이 그분들을 추억하면서 하는 말은 이것이었네.
“정말 주님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신 분이다.”
“정말 깨끗하게 살다 가셨다.”
“우리 성도들에게 본이 되셨다.” 등등….
우리 삶은 이렇게 죽은 다음에 정확하게 평가된다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남은 자들이 정확히 말해주지.
어느 사장이 살아 있을 때는 직원 모두가 그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도 깍듯했다네. 행여 사장 집에 애경사가 있으면 다들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했고, 생빚을 내서라도 분에 넘치게 충성했지. 그런데 막상 그 사장이 죽었을 때는 달랐네. 장례식장은 싸늘했고, 문상객도 밖에서는 혀를 찰 뿐이었다네. 왜 그랬을까? 그 사장이 잘못 살았기 때문이야. 살아 있을 때야 그 권력 앞에 위장했었지만, 그가 사라지니 진심대로 행한 것이지.
여보게!
누군가 그랬네. 장례식장에 가면 그 사람 인생이 보인다고. 자네는 어떻게 기억될 것 같은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후대가 ‘평생을 예수의 종, 예수의 노예로 충성되이 살다간 이초석 목사’로 기억해주기를 바란다네. 훗날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성공한 인생 아니겠나.
그러려면 지금 그렇게 살아야 하네. 훗날 기억되고 싶은 사람으로 지금 살아야 하네. 사도행전 9장에 다비다라는 사람이 나오지. 그가 죽자 사람들이 급히 베드로를 청하는데, 베드로가 도착하니 다수의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다비다)가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내어 보이며 그의 행실을 이야기 했다네(행9:39).
지금 잘 살아야 하네. 지금 본이 되게 살고, 지금 선하게 살고, 지금 베풀고, 지금 충성되이 일해야 하네.
누군가의 평가는 지금의 내가 결정하는 것이니까.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