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노예가 되지 말라, 마귀가 틈탄다(욥34:10~15)
지난주, 행정목사로부터 88체육관을 8월 말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정목사에게 ‘걱정하지 마라. 새 땅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사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이 사건은 새 땅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습니다. 올해는 제가 목회를 한 지 햇수로 딱 40년입니다. 40년 동안 우리는 올림픽공원의 여러 체육관을 돌며, 그리고 88체육관에서도 1체육관, 2체육관을 돌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40년 떠돈 것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40년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들이셨듯, 우리도 40년을 맞아 새 땅으로 들이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겁니다. 너무나 멋진 각본 아닙니까. 하나님 외에 누가 이런 각본을 쓰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빨리 성전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진 않지만,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기대합니다.
저는 행정목사의 보고를 받고 바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어디로 가야 하나요?” 묻는 저에게 하나님은 ‘40일 작정기도를 선포하라!’는 생각과 함께 ‘서로 다투지 말고, 분내지 말고, 서로 하나가 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40일 작정기도를 하라고 하심은, 하나님은 이미 계획하시고 예비하셨지만, 우리의 간구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소망의 열도를 체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걱정이나 근심이 아닙니다. 합심으로 40일 동안 작정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작정(作定)이 뭡니까? 어떤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비장함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 내 환경에 배수진을 치고 마침내 이루고야 말겠다고 작심
(作心)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0장에는 다니엘이 21일 작정기도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니엘이 전쟁에 관한 한 이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좀 더 구하고자 세 이레 동안 기도합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작정기도를 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다니엘이 작정기도를 시작한 첫날에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단10:12).
그 하나님은 우리가 40일 작정기도를 선포한 날, 이미 우리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제가 늘 말하지 않습니까? 전쟁은 이겨놓고 하는 것이고, 기도는 응답받고 하는 것이라고요.
그런데요, 첫날에 이미 기도를 들으셨지만, 응답은 21일째, 기도가 끝나는 날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14절).
첫날 이미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셨는데 왜 20일이라는 공백이 생겼을까요? 이는 13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바사 국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단10:13~14). 악한 영들이 응답을 가져오는 천사를 막았다는 겁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시면 마귀도 동시에 일을 시작하니까요.
지금도 마귀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40일 작정기도에 마귀는 놀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좋은 곳으로 들어가 더욱 열심히 예배하고, 더욱 전도하고, 더욱 선교할 것을 알고 있으니 필사적으로 막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분열되게, 분노하게 하여 일을 망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궤계에 놀아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느 때도 그래야 하지만, 특별히 40일 작정기도 동안에는 더욱 분을 내서는 안 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4:26~27).
분이 차면 기도가 안 됩니다. 경험 있으시죠? 부부가 싸우고 난 뒤에 기도하려고 앉으면 기도가 딱 목젖에 막혀 안 나오는 것을요(벧전3:7). 그거 풀고 나야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19~21).
분을 내는 것은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것과 같고, 아구까지 물이 찬 항아리를 들고 가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져 다 쏟는 것과 같습니다(갈5:17). 그러니 분을 내지 맙시다. 다투지 맙시다.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는 것이요(갈5:22), 사도의 표도 오래 참음에 있다고 하셨고(고후12:12),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도 하셨습니다(시37:11).
여러분, 새 역사를 이루려면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물고 뜯으면 교회가 황폐해지고, 바로 서지 못할 뿐 아니라(마12:25) 공멸하고 맙니다(갈5:15). 게를 한 마리 바구니에 넣어두면 바구니를 잘 넘어 도망가는데, 두 마리 이상만 두면 절대 도망가지 못한답니다. 왜냐면 한 마리가 바구니를 타고 올라가면 다른 게가 그 다리를 잡고 늘어져서 절대 도망을 못 친답니다. 둘이 서로 도와주면 도망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게처럼 물고 뜯어서야 되겠습니까?
이번 장마 피해가 아주 심각합니다. 산사태로 사람들이 죽고, 논이며 밭이며 온통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일궈놓은 재산이 한순간 다 사라졌습니다. 분노라는 것이 마치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것과 같습니다. 순간 다 잃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17:14).
모세가 혈기를 내다가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못 들어갔지요? 여러분이 그렇게 원하는 소원, 그토록 원하는 목적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툼을 멈추고, 혈기를 제어하여야 합니다. 그 정도도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요. 각성하시라고 욥기서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34:15).
여호수아 3장에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향하던 중 요단강 앞에 섰습니다. 이때는 물이 불어난 시기라 이들의 힘으로는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수3:5). 기사는 하나님이 행하시지만, 너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깨끗케 하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여호와의 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을 밟자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였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기사를 행하사 아름답고 좋은 성전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먼저는 40일 작정기도에 모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다음은 우리 스스로를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딴지 걸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도록 오래 참고, 분내지 말고, 세속적인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우리가 찬양한 대로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맘에 준비 다하여 힘써 일하세”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그리고 장차에도 인도하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육체의 일…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할렐루야!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