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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

1208호 · 2023-07-02
세상을 보는 창

은혜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모인 방 한 가운데에 나타나셨다. 그들을 위로하시고 못 자국 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성령을 받을 준비를 하게 하셨고, 주님의 증인으로 세상으로 보내시겠다는 사명도 주셨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 완전히 다시 살아났고, 기쁨과 평안으로 충만해졌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 없었던 제자가 한 명 있는데, 그가 바로 도마다.

아주 은혜로운 예배나 집회 참석할 때 보면, 꼭 그 자리에 앉아서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이 빠진 것을 볼 수 있다. ‘아, 그 사람이 와서 이 설교를 들었어야 하고, 은혜받았어야 하는데….’ 할 때가 있다. 가만 보면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항상 은혜받는 자리에 남보다 앞서와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연약한 사람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은혜의 현장에 자주 없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그 중요한 순간에 도마는 혼자 인간적인 근심하느라고, 현장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처럼 주님을 뵐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주님이 역사하실 때 여러분은 그 현장에 있는가. 옛날에 경건한 청교도들은 성도들의 예배와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누가 ‘왜 그렇게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주님이 언제 우리에게 오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 의심 많은 도마를 위해서 주님이 다시 한번 제자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없어서 의심했지만, 뒤늦게나마 두 번째 집회에는 참석했기에, 부활의 주님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은혜의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주님은 ‘두세 사람이 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도들의 모임은 성도들과의 교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거하시며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공동체로 모일 때 주님은 더 강렬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신다. 그래서 은혜의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이정금 전도사
생명의 말씀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2018년 12월 1일, 문산교회로 발령을 받았다. 미룰 것도 없이 즉시 순종하고 갔는데, 80평이 훨씬 넘는 건물에 성전이 넓게 잘 꾸며져 있었다. 교회 소유의 건물이라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전철역 인근에 주차도 가능하고 엘리베이터도 있는 건물이었다. 손댈 것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봐도 좋은 성전이었지만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이것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층고가 높고, LED 화면으로 총회장 목사님의 영상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전입니다.” 작정예물을 드리고 작정기도를 했다.

21일 작정기도회를 마친 바로 그 주 토요일에 한 건물을 보게 되었다. 형편과 처지에 맞는 건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찾고 원하던 성전이었다. 그다음 날 주일 저녁에 행정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다른 내용은 없었다. 층고가 6.5m인 성전이라는 설명만 드렸다. 총회장 목사님께 보고를 부탁드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바로 허락이 떨어졌다. 월요일, 성전을 계약하고, 화요일, 특공대 박인덕 목사님이 오셔서 회의를 했다. 그리고 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특공대 목사님들의 많은 관심과 수고, 총회장 목사님의 기도 속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발령받고 성전을 놓고 기도한 지 1년 3개월 만에 하나님은 층고가 6.5m인 지금의 문산교회 성전을 주셨다. 많은 성도들이 앉아도 시야를 전혀 가리지 않고, LED 화면으로 생생하게 총회장 목사님의 영상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전이다. 할렐루야!

사람들은 ‘형편과 처지에 맞는 삶을 살 것이냐,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

나는 깨달았다. 소경 바디매오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외친 것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하신 말씀을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소경 바디매오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진정으로 소원하고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도 물으신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그래서 나는 매년 전도 인원의 분명한 숫자를 놓고 오늘도 기도한다.

장순천 목사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오는 말이 곱지 않더라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하죠. 반대로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와집니다. 곱지 않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고운 말을 건네기 싫어지죠. 몇 주 전 토요일 오후에도 그랬습니다. 서울 시청에서 광화문을 지나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 기사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더라고요. 무전기로 동료와 하는 대화를 들어보니 그날 오후에 시작된 시위가 화근인 것 같았습니다. 시위 때문에 도로 한쪽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운수 회사로부터 사전에 공지 받지 못했기 때문에 대처할 준비를 못하셨던 거죠. 기사님은 계속해서 씩씩거리며 역정을 냈습니다.

잠시 후 기사님의 짜증은 어느 승객에게로 튀었습니다. 손잡이를 똑바로 잡으라고 불같이 화를 내시더라고요. 몇 분 뒤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고 하차할 승객이 내리고 막 출발하려던 찰나에 깜빡하고 내리지 못한 승객이 다급히 기사님께 문을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사님은 왜 미리미리 내릴 준비를 하지 않았느냐고 번개같이 호통쳤습니다.

저는 슬슬 화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그렇게까지 야단칠 일인가?’ 싶기도 하고,

‘왜 본인의 짜증을 승객에게 풀지?’ 싶기도 하고요. 기사님이 한 번만 더 애먼 승객에게 큰소리친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노라 다짐했어요. 똑같이 큰소리로 “기사님! 그만 좀 하세요!”라고 신경질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들 말은 안 해도 한마음일 거라 확신했어요. 그때, 기사님 또래의 중년 아저씨 두 명이 입을 열었습니다. 역시 버스 기사님의 흉을 보려나 보다 했는데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기사님이 오늘 기분이 많이 안 좋으시네~”, “그럴 만도 하시지~ 뭔가 회사랑 연락이 잘못됐었나 봐~”, “아무렴 이런 날 운전하는 거 너무 고생스럽지~”

이 얘기를 듣는 순간 기사님의 고된 하루가 헤아려지면서 제 마음속의 화도 사그라들더라고요. 버스에 내려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인데 왜 저분들처럼 상대방의 곱지 않은 말을 고운 말로 감싸주는 넉넉하고 선한 마음을 갖지 못했을까. 반성하고 후회했죠.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언니와 점심을 먹으러 코엑스 어느 식당에 갔습니다. 내부가 한산해 손님 둘이 4인석에 앉아 식사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짐이 있어서 언니와 4인석에 앉으려고 하는데 종업원이 퉁명스럽게 거기 말고 저기 앉으라며 2인석을 가리켰습니다. 무척 좁은 자리였어요. 순간 불쾌했습니다. “저 손님도 둘이서 넓은 데 앉았는데 왜 우린 못 앉게 하는 거야!”라고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내심 언니가 맞장구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이제 곧 붐빌 시간이라 그런 걸 거야~” 그 말에 저는 또다시 부끄러워졌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라고 상대방을 헤아리는 넉넉한 마음과 선한 말을 갖고 싶습니다. 말의 실수를 줄이고 싶습니다. 유순한 대답으로 분노를 쉬게 하고 싶습니다. 입술을 제어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젠 하루를 시작할 때 기도하려 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편 141편 3절).

신은혜

dopal0203@naver.com

GOOD NEWS

GOOD NEWS

빨리 달린다고 해서 선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지와 반대 방향을 향해 달린다면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목적지로부터 더 멀어질 것입니다. 자동차도 길이 있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길이 있으며, 들짐승들도 길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마땅히 행할 길이 있습니다. 옛 선친들이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서 방황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무작정 빨리 달리는 것보다 먼저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천국과 지옥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더디게 보이지만 정도를 걷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가야 할 정도(正道)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천국까지 넉넉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지금 바른길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고, 만일 길을 잘못 들었다면 유턴해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란 세상을 향해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예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입니다.

상화평 목사

나도 건강할 수 있다

여름철 배 아프고 설사하는 감기에는?

여름철 음식이 상하거나 위생상 좋지 않은 음식을 잘못 먹었을 때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는 장염감기에 걸리기 쉽습니다. 주된 증상으로는 춥고 열이 나기도 하고 입맛이 떨어지고 구토를 하거나 두통과 피로감이 있으며 명치부위가 꽉 차고 단단하며 복부에 통증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염감기에는 곽향정기산이라는 처방이 좋은데, 약국에서는 콜론정이라는 이름으로 판매 되고 있습니다.

곽향정기산에 들어있는 곽향, 소엽, 반하, 후박, 길경(도라지). 진피(귤껍질), 감초등으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요즘과 같이 에어컨을 많이 쐬고 찬음식을 많이 먹는 여름철에 배가 차가워지면서 설사하면서 감기기운이 들 때 사용하는 처방으로 꼭 갖춰 놓아야 할 가정 상비약으로 사용될 약중에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증상이 없는 몸살감기에는 갈근탕, 목이 아플때는 은교산, 기침감기 및 종합감기에는 형방패독산 등이 사용되는데 배가 차서 아플때는 위의 약들이 효과가 없습니다. 이때는 곽향정기산으로 뱃속에 냉기를 제거해야만 장이 따뜻해지면서 배도 아프지 않고 감기기운도 해결이 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 대장염 증상으로 설사를 자주 보일때도 효과가 좋으며 속이 차면서 만성적으로 소화가 안될 때도 소화제보다 효과가 좋습니다. 아이들 중에서는 잘 토하고 비위가 예민하여 밥도 잘 안먹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며, 체질적으로는 배가 조금은 선선하거나 차가운 체질의 사람들에게 잘 맞으나 속이 불편할 때는 체질에 관계없이 도움이 됩니다.

치매뿐만 아니라 암환자들 사이에서는 내장 체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정상체온이 36.5도인데 장기가 차가워서 35도가 되면 암이 걸리기 쉬운 환경에 노출된다고 합니다. 암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서 피부체온은 높으나 장기의 체온은 낮다고 합니다. 체온을 1도 높이는 것만으로도 우리 몸은 면역기능이 극대화되어 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들이 자연스럽게 치료가 된다고 합니다. 장기의 체온이 떨어질 때 운동을 통해서 몸에 열을 만들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장기속의 체온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약 중에 하나가 곽향정기산입니다.

Dr. 설재현 집사

kseolmed@hanmail.net

참된 깨달음

삶의 우선순위

아이들이 등교하는 아침이면 아내와 아이들과의 소소한 언쟁이 벌어진다. 일단 아이들은 늦잠을 자서 깨우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면 학교에 가기도 바쁘다. 이불, 옷, 쓰레기가 책상, 방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어 치우라고 말하면, 잔소리 듣기가 싫어 치운다고 대답만 하고 그냥 학교에 간다. 참다못해 하교한 아이에게 아내가 한마디 하면 어차피 밤에 잘 건데 왜 이불을 개야 하냐고 본심을 말한다. 원래 안 할 생각이었던 거다. 그러면 그렇게 말대답하는 게 괘씸하니 태도 문제로 넘어가서 2차전이 벌어진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혼나면서도 아이는 고칠 생각이 없다. 또 혼나면 듣는척하다가 다시 원래의 행동으로 돌아가는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다.

왜 이런 언쟁은 끝이 없을까? 그것은 아이들과 부모의 생각과 행동의 우선순위가 달라서 일 것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선 밤늦게까지 공부해서 아침에 늦잠 자는 것은 정당하고, 학교에 가기 전 멋 내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어 시간이 남으면 정리를 하고, 안되면 그냥 가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내 입장에서는 게으름과 부모에 대한 존중이 없는 아이를 훈육해서 태도를 바꾸는 것이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매일 힘들지만, 잔소리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조금 일찍 일어나서 엄마의 우선순위를 만족시켜 준다면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하며, 부모의 축복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할 텐데 말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같을 것이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뭐든 주신다고 했는데, 일어나서 출근하기 바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고, 눈앞의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 아등바등 바쁘게 살다 보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매일 똑같은 일로 야단만 맞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자녀들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만 하면 해결해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할 것을 다짐해 본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송명국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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