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 담대했다(사51:7~15)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구금상태로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판결에 따라서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도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되레 공회원들을 책망했습니다. 예수 이름을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그들의 명령에 두 사도는 담대하게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4:19).
그저 고기나 잡는 범인(凡人)인 줄 알았던 그들은 두 사도의 담대함에 몹시 당황하여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을 놓아줍니다.
베드로가 본시 담대했던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어린 계집아이 앞에서조차 스승을 모른다고 했던 겁쟁이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왜 이렇게 담대해졌을까요? 성령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외집회에 나가면 “오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요.”라고 먼저 선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에 오줌을 지릴 뻔했다고도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안 일어나면 어쩌려고 저러시나.’ 하며 두려웠던 겁니다. 그러나 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39년 세월, 늘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해외집회를 가면 온갖 협박, 위협, 비난이 쏟아집니다. 호텔을 폭파하겠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총으로 쏘겠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털끝 하나 상하지 않도록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알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인천교회에 깡패가 들어와 기물을 파손하고 협박했을 때도 저는, “너 같은 것을 무서워했다면 목사 안 했어.” 하고 책상의 화병을 집어던지며 그들에게 다가갔더니 그들이 무릎을 꿇었던 일도 있습니다.
대전 전도집회의 일도 생각나네요. 집회 장소로 기독교연합회관을 계약했는데, 갑자기 집회 장소를 빌려줄 수 없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이에 계약 파기에 따른 이의를 제기했더니 그들이, “집회 장소는 쓰쇼. 그러나 전기는 끊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은 베니스의 상인도 못 읽어봤는가? 전기를 끊는 건 좋다. 그러나 불은 들어오게 해라.”라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응수했더니 그들은 군소리 못하고 장소를 내주었습니다. 개가 짖을 때 두려워하면 물립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째려보면 꼬리를 내리는 법입니다.
9월에 있을 페루집회의 현 상황이 그런가 봅니다. 여기저기서 협박이 있나 봅니다. 집회를 준비하는 문갑선 선교사가 그 상황에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번 설교를 듣고는 달라졌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맞붙어 싸워 이기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두려울 것 없다는 것을 이번 집회를 통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29:25).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면 마귀도 동시에 일을 시작합니다. 그것을 알기에 하나님은 미리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51:7~8).
다니엘은 사람들의 모함으로 사자굴에 떨어졌으나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살아나와 더욱 명성이 높아졌고,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했지만 느헤미야는 보란 듯이 52일 만에 예루살렘성을 수축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
여러분, 하나님은 성령으로 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령은 예수 이름으로 온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이 임함은 하나님이 내 안에 함께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인들 두렵겠습니까? 예수님이 배 안에 계시는데, 풍랑이 인다고 두려워하는 제자 꼴이 돼서는 안 되죠.
하나님은 담대한 자를 쓰십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은 하나같이 다 담대한 자들이었습니다.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은 노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 하나님의 제물이 되기 직전까지 도망치지 않았던 이삭, 환도뼈가 부러져도 축복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자를 놓아줄 수 없다던 야곱, 후환이 있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득죄할 수 없다’고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요셉,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한 모세,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 히브리서 11장 32절 말씀처럼,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할 뿐입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대해야 성공합니다. 정주영 현대 회장이 어떻게 조선소를 건립했을까요? 영국 선박 컨설턴트 기업인 A&P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에게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새겨진 500원짜리 지폐를 내놓으며, “당신네 영국의 조선(造船) 역사가 180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는 그보다 300년 앞선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군을 물리쳤소. 단지 산업화가 늦어졌을 뿐, 우리는 조선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소.”라고 하니 롱바톰 회장은 그의 담대함에 탄복하여 은행에 추천서를 써주었던 것입니다.
1998년, LPGA US오픈 연장전에서 박세리 선수가 연못에 빠진 공을 쳐올리기 위해 맨발로 물에 들어가 우승까지 일궈냈던 장면을 기억하시죠. 그녀는 담대하게 양말을 벗고는 연못에 들어가 공을 쳐냈고, 마침내 우승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그때 대한민국은 물론이요, 세계는 그의 담대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인 김구 선생, 3.1만세운동을 전개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 에디슨을 비롯한 발명가들, 허영호 같은 에베레스트 등정가, 남극점 탐험가들…. 한 시대의 맥을 그은 사람들, 큰일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담대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당면한 현대인의 공통 문제입니다. 병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세상에 대한 두려움….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자가 두려우면 사업하지 말고, 이혼이 두려우면 결혼하지 말라. 외국어가 두렵다면 유학이나 이민 가지 말고, 물이 두려우면 수영할 생각 아예 말아라.” 두려워하면 보이던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담대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됩니다.” 하시는 분들, 빽이 있으면 안 두렵겠지요? 빽 중의 빽, 하나님이 늘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하나님은 성령을 받은 자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시고(고후1:21~22), 당신의 것을 책임지고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처럼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게 하시고,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서 옷자락 하나 그슬리지 않은 것처럼 불이 너를 태우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사43:2~3), 기드온의 군대 앞에서 대적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듯 하게 하실 것입니다(신28:7).
왜냐?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은 용을 찌르신 이이시며(사51:9), 바다를 말리시고 바다에 길을 내시는 분일 뿐 아니라(사51:10), 그 물결로 흉용케 하시는(사51:15), 즉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두렵습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할렐루야!
두려움은
내 삶과 신앙의 암이다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