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함께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 생각해보니 감사로 눈물만 흐릅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내 삶에 함께하셨구나’ 느껴집니다.
37년 전, 학교 선배가 금요철야예배에 가면 연예인처럼 잘 생기고 멋진 분이 찬양도 하고 피아노 친다며 한번 가자고 해서 따라다녔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근철 목사님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3주가 지난 어느 날, 선배가 갑자기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이제 그 교회에 다니지 않기로 했으니 저도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그 교회가 알고 보니 이단이라며….
그러나 제 마음은 이미 성령께서 오셔서 뜨거웠고, 우리 이초석 목사님께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직 예수만을 위해 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짧은 시간에 알았기에, 저는 울먹이면서 “괜찮아. 내가 만났고 보았으니 난 그대로 다닐 거야.”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다니면서 깨달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셨기에 목사님을 만날 수 있도록 그 선배를 통해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제 마음속에는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가족 구원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가장 귀한 것이 영혼 구원이요, 그중에서도 내 가족의 구원이 가장 시급한 것이라고 계속 말씀하시니, ‘안 믿는 우리 가족을 어쩌나, 이대로 두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건가, 다 지옥 가는 거네.’라는 마음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단 하나의 기도 제목, ‘우리 가족, 예수님 만나게 해주세요.
모두 천국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울면서 기도했고, 예배 도중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를 부를 때면 간절하게 ‘우리 가족도 구원받아 즐거운 우리 집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지방에 떨어져 살았기에 1년에 고작 세 번 정도 만났고, 더욱이 만나는 날이 명절이라 제사를 지내고 있기에 가족 구원은 막막하기만 했었습니다. 더욱이 제 성격이 워낙 말이 없고 소심해서 더욱 힘들었습니다. 오죽하면 오빠하고도 같은 밥상에서 밥을 못 먹을 정도였고, 주변 사람들이 ‘네 목소리 들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기도하면서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동생들을 서울로 데리고 와서 학교를 다니게 하자. 그리고 전도하자.’ 생각하고는 엄마를 설득해서 동생들 둘을 서울로 데리고 왔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악한 영들도 일하기 시작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맞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데 악한 것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죠. 글을 쓰다 보니 그때 순간이 떠올라 순간 마음이 떨리네요. 막냇동생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져서 아무 때나 발작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귀신인 줄 알았지만, 집에서는 동생을 데려가더니 미치게 만들었다고, 혼자 미치지 동생까지 미치게 했다고 핍박했고, 원흉인 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까지 했습니다.
저는 동생이 발작할 때마다 기도하고 귀신을 쫓고, 이초석 목사님 말씀 테이프를 틀었습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잠잠해졌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면서 지쳐가던 어느 날, 저 모르게 엄마하고 언니가 막냇동생을 시골로 데리고 가서 산중 절에서 굿을 하려고 눕혀 놓았습니다. 제 동생은 그때도 귀신에게 사로잡혀있어서 의지가 없이 그 절에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내가 여기서 누워있으면 안 돼. 일어나서 도망쳐야 해.’하는 심령의 외침이 들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방언 기도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산속을 헤매며 도망쳤다고 합니다. 엄마와 언니는 너무 놀라 동생을 찾으려고 산속을 헤매다 잃어버렸다는 심정으로 산을 내려왔는데 길가에 동생이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와 언니는 그 당시 너무 놀랐기에 ‘다시는 너 하는 일에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오빠 또한 동생이 한쪽 다리를 절고 술 냄새가 나는 등 돌아가신 아빠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영적 존재가 있구나. 귀신이 있구나’ 해서 이 일을 계기로 제사를 폐하고 동생 건강을 위해 가족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네 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막냇동생은 전혀 아빠에 대해 모르는데 아빠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오빠가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지금도 막냇동생은 그 당시 3년이란 세월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귀신하고 싸우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님은 메인스타디움집회 때 또 역사하셨습니다. 엄마가 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목사님께 배운 것은, ‘내가 하나님 일을 하면 하나님이 내 일을 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집회를 위해 기도했고, 그 당시 성가대와 율동팀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집회가 끝나고 오빠가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간이 깨끗해졌다며 의사마저 ‘오진이었나?’ 했답니다. 할렐루야!
태풍이 불어도 태풍의 눈 속에 있으면 편안한 것처럼 세상의 억센 풍파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 거했더니 하나님이 평강을 주셨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니 ‘정말 큰 산을 넘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힘이나 능력으로 넘은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아빠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마음속 한구석에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일까?’ 궁금했는데, 그 마음조차 헤아리신 하나님!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안수받으러 갔는데 그때마다 친딸처럼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아빠 사랑이 이렇게 따뜻하고 깊은 것이구나.’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 것 같았습니다.
저를 믿고 끝까지 용기를 주시고 기도해주시고 하나님의 딸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총회장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기도로 엄마를 천국으로 인도했고, 아팠던 막냇동생은 마포교구 전도사로 사역하고, 둘째 동생은 예수중심제자신학원 생도가 되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묵묵히 곁에서 기도해주며 믿어준 친구,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기도 동역자, 사랑하는 친구, 인생의 위기 때 안방을 내주면서 집처럼 편안하게 있으라며 싫다는 저를 설득하고 제 마음 작은 곳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준 친구 부부…. 어찌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한없는 사랑을 주시는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납니다.
제가 지금까지 받았던 기도와 사랑을 이제 나눠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의 ‘하나님께 무엇을 내놓을지 생각하면서 살라’는 말씀이 제 마음속에 꼭 박혀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정리할까 기도했었는데, 하나님은 뜻밖의 길을 저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강남교구를 맡겨주셨습니다. 정말 분에 넘친 선물입니다. 제 모든 것을 다해 주변을 돌아보면서 사랑을 나눠줄 시간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기도하면서 다시 한번 37년 이렇게 올바르게 성장시켜주신 총회장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목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