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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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속지 마세요

1204호 · 2023-06-04
책을 펴다

속지 마세요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던 사람이 밤이 되자 텐트를 쳤다. 사막은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몹시 추웠다. 밖에 있던 낙타가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님, 정말 추워서 그러는데 코만 텐트 안에 넣게 해주세요.”

주인이 흔쾌히 허락하자 코를 넣고 있던 낙타는 다시 말했다.

“주인님, 얼굴을 다 넣게 해주세요.”

주인의 허락을 받고 얼굴을 텐트 안에 넣고 있던 낙타는 다시 청했다.

“주인님, 텐트 안이 꽤 넓은데 앞발을 더 넣었으면 좋겠네요.”

이것도 주인이 허락하자 잠시 후에 낙타는 “뒷발만 들어오면 되는데….” 하며 간청했다. 주인은 거절할 수 없어 이것마저 허락했다. 낙타가 들어오자 텐트 안은 너무 비좁았다. 이리저리 몸을 틀던 낙타가 말했다.

“주인님, 텐트가 비좁으니 좀 나가 주셨으면 합니다.”

주객전도(主客顚倒)다. 악한 것들은 처음부터 크게 들이대지 않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점차 우리 안에서 영역을 확보하고 결국은 주인이 되어 우리를 좌지우지한다.

고로 죄와 악은 애초부터 작은 것이라도 용납해서는 안 되고, 작은 요소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물방울이라고 그냥 두면 결국 바위가 패는 것처럼 작은 것을 묵과하면 큰일을 초래할 수 있다. 낙타에게 텐트를 내주고 마는 우스운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악한 것들이 주인이 되지 않으려면 죄악의 작은 여지라도 처음부터 용납하지 말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생명의 말씀

내 마음의 운전사는 누구인가?

현대사회는 금전 만능주의, 외모 제일주의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람들 보면 안 예쁜 사람이 없다. 또한 도로 위 자동차들을 보면 고가 자동차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자동차는 고급인데 운전자가 비매너운전을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외모는 영화배우 뺨치는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폭언과 비방, 그리고 부정의 말뿐이다. 사람의 외모도 중요하고, 좋은 자동차도 중요하지만 누가 운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의 인생도 누가 운전하느냐에 따라 존경과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불행하게 살 수도 있다.

마태복음 12장 43~45절에는 ‘사람의 몸이 귀신의 집’이라 했고,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는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 하셨다.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귀신이 잡을 수도 있고, 성령께서 잡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여 아우를 죽였다고 했다(요일3:12). 귀신이 운전하니 살인을 했다는 것이다. 사울 왕도 평생에 다윗을 죽이려는 불행한 삶을 살다 전쟁터에서 자식들과 멸망하는데, 그 원인 역시 귀신이 운전한 결과이다. 그러나 성령님이 나의 인생을 운전하시니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온유와 절제함으로 하나님께 사랑받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야말로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다.

소형 자동차보다 고급 자동차를 타면 훨씬 편안하다. 그러나 고급 자동차를 타는 것이 평안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천국이다.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속담도 있으나, 필자는 사람이 반찬임을 깨달았다. 좋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김치, 깍두기 하나에 밥을 먹어도 기분 좋고, 밥맛도 좋고, 소화도 잘된다. 그러나 보기 싫은 사람과 밥을 먹으면 진수성찬임에도 맛이 없고 체할 거 같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가리켜 ‘밥맛 없는 사람’이라 한다.

이제 내 인생의 운전대를 성령님께 맡기자. 성령님이 운전하시면 항상 복된 길로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성령님이 내 인생을 운전하시니 내가 좋은 반찬이 되어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평안하고 행복할 것이다.

임택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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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악을 이겨라

이웃한 두 집이 있었습니다. 한 집은 넓은 초원에 많은 염소를 키우고 있었고, 그 옆집에는 사냥꾼이 사냥개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 사냥개는 종종 옆집 울타리를 넘어 염소를 공격했습니다. 그걸 본 염소 주인은 사냥꾼에게 개를 가둬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사냥꾼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며칠 후 사냥꾼의 개는 또 농장의 울타리를 뛰어넘었고, 염소 몇 마리를 물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염소 주인은 더는 참지 못하고 마을의 치안판사에게 달려갔습니다. 염소 주인의 사연을 들은 판사는 “사냥꾼을 처벌할 수도 있고, 또 사냥꾼에게 개를 가두도록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친구를 잃고 적을 한 명 얻게 될 겁니다. 적과 이웃이 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친구와 이웃이 되고 싶으신가요?” 염소 주인은 “당연히 친구와 이웃이 되고 싶죠.”라고 답하자 판사는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하며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가장 사랑스러운 새끼 염소 3마리를 골라 사냥꾼의 어린 세 아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사냥꾼의 아들들은 염소에 푹 빠졌습니다. 아들들이 염소를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사냥꾼의 마음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마당의 개가 어린 염소를 물어서 해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사냥꾼은 개를 큰 우리에 가뒀습니다.

염소 주인도 그제야 안심했습니다. 이후 사냥꾼은 사냥한 것들을 그와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염소 주인도 사냥꾼에게 염소 우유와 치즈로 보답하였고, 그 후 두 사람은 가장 좋은 이웃이자 친구로 지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글꾼의 주님

옷 중에 제일 좋은 옷

옷을 보면 그 사람의 품위와 인격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색깔과 어떤 디자인의 옷을 입느냐에 따라 사람이 돋보이기도 하고 품위가 저하되기도 한다. 남자들이 예비군복을 입으면 자동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사회적인 지위가 없어지는 동시에 동전놀이(짤짤이)로 천박해진다. 그런데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양복을 입으면 입담이 걸쭉하던 사람도 말을 점잖게 하는 신사가 된다. 이렇게 옷에 따라 사람이 변하는 것을 보면 옷의 역할과 비중이 참으로 크다고 생각된다.

성경에는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처음으로 옷을 입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지금도 이태리 모피로 만든 옷이 고가로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최상의 옷을 지어 입히신 것이다. 사람이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며 품질 좋고 값비싼 옷을 좋아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명품 새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고, 옷이 사람을 돋보이게 하므로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는다. 옷 중에 제일 좋은 옷은 물론 가죽옷이겠지만 가죽옷보다 더 좋은 옷이 있다. 그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이다. 이 옷은 하나님이 누구든지 입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옷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제일 좋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더니 이제는 가죽옷보다 더 좋은 그리스도로 옷 입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좋은 옷을 입으면 행동과 언행이 반듯해지듯이, 그리스도로 옷 입으면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고, 언행이 그리스도의 언행으로 바뀌게 된다. 예수님의 비유, 아들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으므로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기는 말씀이 있다. 비유 말씀에서 예복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롬13:14)라는 말씀으로 깨달아야 한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올 텐데 그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서야 한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하심같이 예수님이 공생애에 이루신 의를 힘입어 사는 것이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이승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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