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공경하면 복을 받는다(엡6:1~3)
“목사님, 어떡하면 복 받고 살 수 있나요?”
이 질문에 제 답은 이것입니다.
“복 받고 살기 원한다면 네 부모를 공경해라.”
모든 질문에는 답이 있기 마련인 법,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20:3)는 말씀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첫 계명이라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는 약속이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첫 계명입니다. 첫 계명이라 하심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부모를 공경한 사람들이 복을 받았을까요?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고, 하신 말씀에 후회가 없으신 분이시니까요.
이삭을 보십시오. 이삭은 아비 아브라함이 하나님 명령을 받잡고 모리아 산에서 자신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늙은 아버지를 밀어버리고 충분히 도망갈 힘과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아버지에게 순종하여 제물이 되기로 자원했습니다. 그가 믿음의 선친 중에 가장 편한 인생을 산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요셉도 효자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멀리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까지 심부름을 했습니다. 요셉은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던 터라 안 가겠다고 응석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순종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오히려 노예로 팔려 힘든 세월을 살았습니다만, 훗날 그는 형제들을 용서한 것뿐 아니라 잘 공궤하고 조카들까지 챙김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그런 요셉이 받은 복은 헤아릴 수 없지요.
룻은 어땠나요? 그는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했으나 남편이 죽자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와서 시어머니를 잘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보아스라는 재벌 남편을 주었고, 다윗의 선조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새는 말째인 다윗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적군과 싸우고 있는 형들에게 가서 먹을 것을 주고 안부를 살피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냥 동네 슈퍼마켓으로 심부름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전쟁터로 심부름을 보낸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군소리 없이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더니 골리앗을 죽여 영웅이 됩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자신의 뜻을 접고, ‘아버지의 뜻이거든 그리하옵소서’라고 고백하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에게 넘기셨습니다(빌2:6~10). 또한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여 마리아를 잘 모셨더니 사도 요한은 제자 중 가장 오래 살아 요한계시록까지 쓰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문제에 답까지 다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못 푸는 세대가 있으니 바로 지금의 세대입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거든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딤후3:1~2).
어느 가족이 이사 가는 날, 늙은 아버지가 개를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아들이 “아버지, 왜 개를 안고 계셔요? 개 더워요.” 하며 성질을 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민망한 얼굴로 말합니다. “너네들이 개는 챙기지만, 나는 안 챙기니까 나 안 데리고 갈까 봐….”
여러분,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어떻게 키웠습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이 받은 모욕을 아시죠? 물론 이는 예수님이 그의 믿음을 보시고자 일부러 던진 말씀이지만, 왜 그녀가 그런 모욕을 참아냈을까요? 자식 고치려고 그런 겁니다. 우리 아버지들도 우리를 먹이려고, 우리를 가르치려고 직장에서, 사업터에서 심한 모욕도 마다하지 않고 참으셨습니다. ‘내 자식들만 잘 된다면….’ 하며 견디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은요? 우리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요게벳이 생각납니다. 모세의 어머니 말입니다. 요게벳이 모세를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전전긍긍했을까요? 행여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행여 들킬까 안절부절못했을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어머니가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행여 자식이 아플까, 행여 기죽을까, 행여 자식이 잘못될까 걱정하며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개보다 못합니까? 하긴 부모를 내다 버리는 놈도 있고, 패는 놈도 있으니….
그런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신27:16).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보십시오. 그는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아비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결국이 어땠을까요? 그는 요압에게 살해된 후 수풀 큰 구멍에 던져졌습니다(삼하18:17).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여러분, 효도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부모는 큰 걸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겨자씨만 한 믿음을 요구하셨듯이,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부 전화로도 충분히 기뻐하고, 어쩌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십니다. 곁에 있어드리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하시고요, 아주 적은 용돈이라도 드리면 자식이 준 거라 아까워서 그걸 못 쓰고 장롱 밑에 모으시는 그런 분들입니다.
혹자는 “부모가 뭐 해준 게 있어야지요.”, “부모가 부모다워야 대접을 하지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 성경은 분명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6:2)고 하셨습니다. 잘해준 부모, 재산 남겨주는 부모, 건강한 부모, 많이 배운 부모에게 공경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효는 자식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효자동(孝子洞)의 유래에 대해 아시지요? 어느 할아버지가 낮술을 드시고 취해서 그만 당신 방이 아닌 며느리 방에 들어갔습니다. 얼큰하게 취하셨으니 잠이 쏟아졌고, 그만 갓 난 손주가 베개인 줄 알고는 머리를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집안일을 하던 며느리가 자기 방에 들어와보니 이런…. 아이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시아버지는 세상모르고 주무십니다.
바깥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아들은 부엌에서 슬피 우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아들은 자식 잃은 것보다 이 사실을 아시면 아버지가 얼마나 괴로워하실까 하는 생각에 어서 뒷동산에 묻기로 하고 가서는 아들의 엉덩이를 호되게 때리며, “이 자식아, 너는 왜 죽어서 할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 이 불효를 어쩌라고?” 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살아났답니다. 이 일이 동네에 퍼지고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가 그 동네 이름이 ‘효자동’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효는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본을 보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효도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효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효자 집안에 효자 나는 것이고, 그래서 가정이 최초의 교육기관이요, 최고의 교육기관이라 하는 겁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딤전5:4).
여러분, 효도할 시기가 있습디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입니다. 돌아가시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습디다. 돌아가시고 나니 부모님의 빈자리가 큽디다. 그때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지금 부모님을 찾아뵙고, 부모님과 대화하고, 부모님의 불편함을 해소해드리세요.
“목사님! 어떻게 해야 복 받고 살 수 있나요?”
부모님께 효도하면 됩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면 됩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할렐루야!
효도(孝道)는
백행(百行)의 기본이다
효도는 미루지 말고
지금 해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