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 첫 메시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라(요11:25~27)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
사두개인의 주장대로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진짜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헛것이요,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15:17).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를 믿는 우리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니까요
(롬6:8).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그리고 부활 후 첫 메시지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하셨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 같은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라’, 이 말씀입니다.
‘복음(福音)’은 복된 소식이요, 기쁜 소식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 복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자가 부유케 되는 것이, 병든 자가 병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 괴로운 자가 행복하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지옥에 갈 자가 천국에 간다는 소식이 복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내세의 부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도 가능하다는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세의 부활, 종말론적 부활만 믿습니다. 마르다처럼 말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야 그 집에 도착하십니다. 오매불망 예수님만 기다리던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 원망 섞인 말투로,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을 텐데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11:24)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현세의 부활을 의미하신 것을 몰랐습니다. 세상 끝 날에 있을 부활만을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보시고 통분히 여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요11:33). 부활을 내세의 것으로 한정 짓는 자들에게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부활이 내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여러분, 부활은 내세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 날의 부활도 예수님으로 말미암고, 현세의 부활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소경이 눈을 떴지요? 귀머거리가 들었고, 죽은 자가 살아났지요? 왜냐? 예수님이 부활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부활이 일어나야 마땅함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이요, 성령으로 부활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 초에 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용접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병들거나 좌절해 누워있는 사람들 머리에 대니 다 벌떡벌떡 일어나며 살아나는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안수하면 병든 자가 일어나고, 죽은 기업이 살아나고, 얽힌 것이 풀리는 것임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부활이신 예수가 성령으로 제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활이다’라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우리 삶이 부활해야 맞습니다.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하고, 당연히 병에서 나음을 입어야 하고, 당연히 망했던 것이 일어나야 하고, 당연히 묶였던 것이 풀려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지금도 통분히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부활이 없다면 완전한 복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당장 끼니도 없는 자에게 ‘죽음 다음에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한다면 그의 반응이 어떨까요? “당장 죽게 생겼는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믿는 자가 병들어 골골거리면서 누군가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면 ‘너나 잘 믿고 나아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현세의 부활이 이뤄지면 “나 봐라. 예수를 믿으면 이렇게 된다. 이걸 보고 내세의 부활이 있음도 믿어라.” 해서 주님의 부활 후 첫 메시지대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뜬 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겠습니까? 혈루증 걸린 여인이, 죽었다 살아난 다비다가가 목이 터져라 예수를 증거하지 않았겠습니까? 저도 사지가 마비되었다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자이기에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증거하러 세계를 누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받은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지 않는 자들이 이 땅에서의 부활을 보고 내세의 부활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 예수님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시고, 이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그에 앞서 병든 자를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줌으로 현세의 부활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제가 세계에 나가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성령의 역사가 기록된 영상을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가복음 16장 마지막 절,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막16:20)는 말씀대로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습니다.
보여주는 목회가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12제자를 내어 보내시며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7~8)고 당부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부활을 눈으로 보게 함으로 가능합니다. 병든 가정, 병든 기업이 다시 일어나고, 가난한 자가 부유케 되고, 귀신 들린 자가 자유케 될 때 이 복음을 막을 자가 없게 됩니다.
부활절에 우리는 성만찬을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이며, 아울러 예수님의 부활에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 부활은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 우리는 죽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신 부활의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육에 부활이 이뤄질 때 이를 통해 세계만방에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15:57~58). 할렐루야!
예수님은 길이요
생명이요 부활이시다
예수를 믿는 것은
받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